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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알지 못했던 시간

임민성

Installation view at Gallery Doll

임민성의 회화는 있는 그대로의 형상을 지키면서 보이지 않는 어떠한 느낌을 함께 선사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러한 예술적 기질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총체적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만들어진 이야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형상이 구체적이어도 은유의 의미가 창작인에 따라 달리 되기에 의미는 계속 달라지며 지금의 작가에게도 그러한 성격이 드러난다. 분명한 형태로 자연을 그려 왔지만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에 갈망을 느껴 작가의 작업은 윤슬을 조금 더 담아낸다.

Where the Light is 빛이 닿는 곳, 194×97cm, oil on linen, 2023

빛에 의해 반짝거리는 모습에 매료되어 관찰이 거듭된 장면은 그림이 된다. 형태를 통해 조금씩 물결을 달리 해보고 색을 변화시켜 반복과 변화의 차이를 알고 풍경의 범주 내에서 추상으로 다가선다. 고정될 수 없는 창작인의 시점을 현실성 있게 그려본다. 자연이라는 거대함 앞에서 물의 표면을 끄집어 내보고 색을 달리 하며 빛의 덩어리도 더해지고 조화로움은 어느 곳에 집중되기보다 자연스레 흐르는 방향을 선택한다.

Water Reflection [윤슬], 25.8×17.9cm, oil on linen, 2023

물결이 등장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사물의 변화를 인지하기 위한 경험적 조건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불가역적인 속성을 안고 공간과 결합함으로써 시간은 우리의 존재 방식을 결정한다. 싫든 좋든 간에 인간은 시간과 함께 한다. 새로움과 오래된 관습이 포함된 인간의 정서는 저마다의 시간으로 흐른다. 매 순간 달리 느끼는 인간의 마음을 예술적 대상 안으로 끌어들여 각인되고 물결이 만들어진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 계절의 변화를 새삼 느끼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서 보이지 않지만 맞물려 돌아가는 현상들을 믿는다. 삶의 진정성을 반성하도록 만드는 힘인 자연은 작가의 작품속에서 늘 관찰된다. 그 거대함 앞에서 인간이 쌓아온 가치 체계와 물리적 체계를 새삼 확인하며 생각에 잠긴다. 조용하게 엄숙한 분위기로 우리를 이끈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려놓은 상황 안에 머물도록 깨달음은 성찰로 이어진다. 경이로움과 진실한 삶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Water Reflection [윤슬], 91×60.6cm, oil on linen, 2023

시간은 애초에 시작과 목적도 없던 것이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갈수록 세분화되고 어느 순간 자리 잡아 측정되고 기록되어 주기가 되어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작가의 최근 회화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할 것이다. 잘 보이지 않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마음을 표현하려 한다. 잡을 수 없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형태로서 드러낸다. 현실에서 잊고 싶었던 것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망각되다가도 다시 떠오르는 기억을 감정으로 느끼며 생각하기는 끊임이 없다. 떠나보내야  할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 사이에서 고뇌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空’ 사상은 비워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 아주 작은 초미립자 세계에서 또는 우주만큼 커다란 세계에서 과학이 진공을 발견하고 전자와 양성자의 움직임은 알 수 없는 상태만을 말해 준다. 노자의 ‘道’가 해답을 주려 하지만 아득히 먼 사상은 질문으로 계속 돌아온다. 오늘날의 풍경은 한순간을 반영하며 사실과 추상의 경계를 묘하게 무너트린다. 시간의 증명처럼 형태로 나타난다.

갤러리도올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87
02 739 140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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