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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과 오른손, 세계를 감싸는 환영들

2022. 7. 26 – 8. 20
윤상윤

Darn That Dream, 112x162cm, oil on canvas, 2022-min

다자원의 비밀

다양한 세계관과 스타일이 상호 중첩하는 그물망 속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또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한 작가를 둘 러싸고 시공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세계에 깊은 영감을 주고받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베드민턴 매니아인 윤상윤 작가의 이력은 흥미롭다. 난지창작스튜디오 이후 오랫동안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어느새 10년이 넘었지만 실제 전시 활동은 미술관 보다는 주로 갤러리였다. 많은 갤러리에서 작가를 초대하였고 미술시장에서는 왼손 오른손 작가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치르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는 화가로서 현재와 미래의 모습과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항상 토로해왔다. 작가에게는 왼손 오른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냥 하나의 제스처일 뿐이다. 왼손 드로잉과 오른손 회화의 차이란 미학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작가의 창작의 주제와 방향이 무엇이며 어디까지 나아가고 있으며 자기 고유의 견고한 세계를 구축했느냐이지 않은가.

Fly me, 80x65cm, acrylic on canvas. 2022-min

윤상윤 작가에게 영감을 준 작가들은 많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 터너 (William Turner)와 현대작가인 피터 도익(Peter Doig)이 있다. 특히 윤상윤 작가의 왼손 드로잉은 피터 도익의 스타일과 오버랩된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작가 장 지로(Jean Giraud)가 있다. 장 지로는 뫼비우스(Moebius)라는 작가명으로 유명한 만화가다. 뫼비우스는 1970년 영화감독 알레한드로 조도 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가 SF소설 듄(Dune)을 영화한 듄의 미술 감독을 맡았었다. 이 프로젝트는 중간에 좌초했지만 뫼비우스가 듄을 위해 만들었던 머나먼 우주의 풍경과 외계의 세계관은 이후 스타워즈나 에얼리언과 같은 고전이 된 SF 장르의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소위 메타버스로 불리는 다중우주나 다차원의 이미지를 일찍이 제시한 뫼비우스의 독특한 세계는 윤상윤 작가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들에게 인간은 전통적인 지구인이 아니다. 수억의 외계 종족들 가운데 우주의 변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종족일 뿐이다. 이들의 세계관에서 인간 존재란 얼마나 사소한가. 이러한 세계관의 설정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사유의 바탕을 만든다. 20세기 이후 인간 존재에 대해 가장 진지한 질문을 던진 장르가 SF라는데 이견이 없다.

터너, 피터 도익, 뫼비우스 등은 공통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닮은 듯하지만 실제 현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소의 풍경, 시대와 인간 군상을 표현하고 있 다. 윤상윤 작가의 세계 또한 이들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현실의 거울상, 거울 세계와 같은 기이한 공 간을 만들어왔다.

Oleo, 65x80cm, acrylic on canvas, 2022-min

왼손과 오른손으로 감싼 세계

작가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선취하는 데 일조한 것은 작가가 타고난 왼손잡이였으나 부모님과 제도교육을 통해 오랜 시간 훈육된 후천적 오른손잡이라는데 있다. 또한 작가가 이를 창작의 생산적 방법론으로 만들어버린 점이 작용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융합하거나 조화를 이루지 않고 마치 별개의 존재인 것처럼 따로따로 각각의 세계를 추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왼손은 야생과 본능을 상징한다면 오른손은 문명과 문화를 상징한다. 왼손은 훈육되지 않은 손이고 오른손은 사회와 문명이 약속한 규약을 따른다. 왼손은 그러므로 야생의 자유로운 상태를 오른손은 학습된 제도를 은유한다. 윤상윤 작가는 왼손 그림과 오른손 그림을 통해 자기 자신 안에 이중의 힘, 이중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구조화를 향하는 오른손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왼손. 자유분방하고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왼손 드로잉과 정교하고 세밀한 표현으로 새로운 세계와 현실을 표현한 오른손 회화가 서로 대비되며 한 작가 안에 두 세계가 공존하고 충돌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기이한 공존의 상태 또는 평형의 상태는 오랜 시간 억압되어온 긴장과 갈등을 함축하고 있다.

Like you 2, 112x145cm, oil on canvas, 2022-min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마주하며 만들어내는 상이한 이미지들 사이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환영들이 감싸 안고 있는 이 세계는 윤상윤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삶의 조건을 창작의 세계로 독특하게 전화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마치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일상의 시간이 왜곡되는 특이점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겪게 되는 혼란과 놀라움처럼 왼손의 윤상윤과 오른손의 윤상윤이 기묘하게 공존하며 마치 마술사의 트릭처럼 두 세계의 환영을 번갈아 가며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것 같다. 당신의 진짜 세계는 어디에 있는지 골라보라는 듯.

지난 시기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작가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세계의 질서와 무질서의 힘이 회화 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공통의 세계관 을 공유한다는 것은 많은 예술가들의 공공연한 비밀이고 노하우일지 모른다. 작가의 이미지는 무수한 차원을 연결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횡단한다. 윤상윤 의 회화에서는 다차원의 현실과 판타지아가 뒤엉키고 혼재된 독특한 풍경이 연출되고 작가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김노암 미술평론가

Summertime, 145x112cm, oil on canvas, 2022-min

갤러리 조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3, 골든너겟 빌딩 1층
02-790-5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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