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10 – 10. 15 | [GALLERIES] SONG ART GALLERY
엄태정

전시 전경 (1)
엄태정의 작품 세계는 금속이라는 물질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 침묵, 상처, 치유, 초월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조각적 사유의 여정이다. 조각은 물질과 작가의 몸이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보이지 않던 존재의 층위가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조각은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이고,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며, 침묵이면서 깊은 울림이다.

전시 전경 (2)
작가에게 평면 작업은 조각과 분리된 독립 장르라기보다, 조각적 사유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평면 작업 역시 조각과 동일한 존재론적 질문 위에서 전개된다. 즉 “형태란 무엇인가”, “공간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물질은 어떻게 정신성을 획득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평면 안에서도 반복된다. 따라서 그의 평면 작업은 단순한 이미지 생산이나 색채 구성의 차원을 넘어, 조각에서 다루어 온 공간적·철학적 사유를 평면의 언어로 다시 탐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엄태정, Heaven is Round, Earth is Round, and Man is Round, 2018, Acrylic, ink on paper, 145x145cm each, 3 pieces
평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의 구조이다. 반복은 단순한 패턴이나 장식적 리듬이 아니다. 그것은 수행적 시간의 축적이며, 하나의 형상이 자기 자신을 끝없이 되묻는 과정이다. 화면 속에서 선들은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점과 면은 미세한 차이를 유지한 채 반복된다. 그러나 이 반복은 기계적 복제가 아니다. 오히려 반복될수록 미세한 차이와 흔들림, 호흡의 리듬이 드러난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동양적 수행성과 깊이 연결된다. 마치 선승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내면의 집중에 도달하듯, 그의 화면 역시 반복을 통해 형식 너머의 정신성에 접근한다.

엄태정, Endless Column 무한주, 2018, Acrylic, ink on kraft paper, 145x145cm
그의 반복은 차가운 기하학적 질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리듬과 존재의 흐름에 가깝다.

엄태정, Untitled 2003-5, 2003, Ink on paper, 145x145cm
조각이 금속의 절단과 용접, 비어 있는 공간과 수직적 구조를 통해 존재의 긴장감을 드러냈다면, 평면은 선과 면, 여백과 반복을 통해 동일한 긴장감을 평면 안에서 구축한다. 조각에서 ‘비어 있음’이 중요한 것처럼, 평면에서도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형상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잠재적 공간이며, 침묵과 호흡의 공간이다. 화면 속 여백은 형태를 지탱하는 배경이 아니라, 오히려 형태와 동등한 존재론적 무게를 지닌다.

엄태정, Drawing-Silence, 2003, Ink on paper, 100x70cm
또한 평면은 빛과 깊이에 대한 조각적 감각을 유지한다. 화면의 선과 면은 단순히 2차원적 도상이 아니라, 마치 부조(relief)처럼 공간적 깊이를 가진다. 반복된 구조들은 시각적 진동을 만들어내며, 감상자의 시선은 화면 위를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침잠하게 된다. 이때의 평면은 세계로 열려 있는 창문이나 외부 세계를 반영하는 재현의 매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장(field)이자 에너지의 구조이다.

엄태정, Drawing-Silence, 2002, Ink on paper, 100x70cm
평면과 조각은 결국 동일한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다. 그것은 형태를 통해 비형태적인 것에 접근하려는 시도이며, 물질을 통해 비물질적인 깊이에 도달하려는 탐구이다. 조각이 공간 속에서 존재의 무게를 세운다면, 평면은 화면 속에서 그 존재의 울림과 호흡을 끝없이 반복하며 확장시킨다.

엄태정, Drawing-Silence-Sound, 2000, Ink on paper, 40x27cm
엄태정에게 조각은 세계를 향해 하나의 존재를 세우는 일이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전시 전경 (3)
「”조각 작품은 하나의 세계를 건립함을 뜻한다.” – 엄태정의 추상조각과 예술철학」 중에서
김석모 (철학박사, 전 솔올미술관장)
전시 장소:
엠앤송아트
서울시 서초구 도산대로 27길 23 1층
82 2 543 0543
송아트갤러리
서울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 아크로비스타 아케이드 B133
82 2 3482 7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