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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 망간 그리고 귀 Sea Cucumber, Manganese and Ear

2021. 6. 3 – 7. 11
정소영

정소영, 〈어부의 섬〉, 2018. 한-중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부표, 구리, 가변설치. Courtesy of Delfina Foundation, Korean Cultural Centre UK, and SongEun ArtSpace. Photo by Tim Bowditch

원앤제이 갤러리에서는 오는 6월 3일(목)부터 7월 11일(일)까지 정소영 개인전 <해삼, 망간 그리고 귀 (Sea Cucumber, Manganese and Ear)>를 개최한다. 2016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정소영의 개인전 <해삼, 망간 그리고 귀>에서는 작가가 천착해온 지질학, 지정학 그리고 해양학 연구에서 직조된 여러 이야기를 담은 아홉 점의 작품들을 원앤제이 갤러리의 세 전시공간에 재구성하여 선보인다. 정소영의 조각들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무수한 물질이 지나온 시간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작가는 어느날 발견한 작은 돌멩이에서 지구의 시간을 상상하게 되었고, 자신의 발이 딛고 서있는 땅속으로(지질학), 그리고 땅 위로(지정학) 시선을 이동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작가에게 지각(地殼)의 침식과 퇴적작용이 인간사의 생성과 소멸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로 작동한 것이다. 여기에서 시작된 작가의 상상력은 땅에서 대륙으로, 지평선에서 국경으로, 도시에서 섬으로 이동하면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자연적 그리고 개인적 기억을 직조한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그의 조각이 되고, 그 조각들은 다시 경계를 이동시키고다른 시간을 불러내어 매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위한 공간으로 무수히 변형된다. 최근 작가는 어쩌면 인류가 영원히 생존의 공간으로 영위할 수 없을 바다의 시공간(해양학) 속으로 상상의 지평을 옮겨 지질과 해양의 존재와 흐름을 사유한다. 인간의 시점에서 거대한 우주의 이동을 발견하고 사유하는 것은 불가능과 마주한다는 것이며, 동시에 오롯이 나의 시간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사유의 시간을 갖는 일이기도 하다.

정소영, 〈굴러온 길〉, 2020-2021. 철, 분체도장, 가변크기. Photo by Uno Yi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아홉작품은 배은아 기획자의 짧은 글을 동반한다. 작가의 조각이 지각과 해양의 시간, 즉 거대한 물질이 지나온 시간과 교차하는 인간(작가)의 삶이 마주침으로써 빚어진 것이라면, 그 글들은 그 순간들을 상상하며 다시 ‘조각’이라는 물질로 탄생한 것들의 시간과 인간(관객)의 삶이 마주하도록 안내한다. 배은아 기획자는 작가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양극으로 분리되는 물리 작용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만들어내는 순간들과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삶이 ‘어떤 찰나’의 경험과 축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리고 작품 <섬 그리기 (2018)>에서 부표를 끌어 내리는 중력과 수면 위로 떠 오르려는 부력의 긴장감이 그려내는 곡선, <굴러온 길(2020)>에서 보이는 철의 견고함이 허락하는 유연한 탄력, 그리고 <29.5일 (2021)>의 지구와 달의 인력이 만들어내는 만조와 간조의 시간 등은 우리에게 ‘잡기와 솟기’, ‘접기와 펼치기’, ‘밀기와 당기기’ 등의 전혀 다른 힘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사건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정소영, 〈섬 그리기〉, 2020. 단채널 영상, 5분 33초

전시 <해삼, 망간 그리고 귀>는 물질의 변곡과 시선의 변수들이 일으키는 아홉가지 사건을 위한 서식지라고도 볼 수 있다. 바다도 땅도 아닌 (차라리 진공에 가까운)인간의 인지 밖의 시공 속에서 아홉가지 사건은 각각의 물성에 따라 ‘어떤 자리’로 무한히 이동한다. 어쩌면 이 사건들은 또 다른 사건을 예고하는 잠재된 사건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인간의 시선 안에 물질을 담는 대신 물질이 담긴 시선 속으로 다가가보기를, 그리고 지층의 선과 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사의 궤적에 귀기울여보기를 제안한다.

정소영, 〈이미륵의 거울〉, 2021. 질산은, 수산화나트륨, 글루코스, 암모니아수, 정제수, 강화백유리, 스테인레스스틸, 각 80 x 120 x 6 cm

<해삼, 망간 그리고 귀>에 대하여.
해삼과 망간은 끊임없이 분화하는 잠재성을 지닌 유기체와 비유기체에 대한 비유이다. 해삼은 바다 깊은 곳에 살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장을 토해내거나 몸을 분절시키기도 한다. 분절된 몸은 각각 개체로 되살아나며, 언제 죽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재생능력이 뛰어나다. 자유자재로 몸을 단단하거나 부드럽게 변화시킬 수 있고, 몸의 안과 밖의 분리가 불가능한 극피동물이다. 망간 단괴(망간)는 바다의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는 코발트, 니켈, 구리와 같은 다중의 광물 덩어리이다. 이는 심해에서 긴 시간의 축적을 통해 생성되며, 인류의 정유시설, 항공기 엔진, 철강산업 등을 위해 사용될 뿐만 아니라, 곡물의 성장을 돕고 인간의 몸속에 필요한 영양소가 된다. 그 스스로 재생하여 영생하는 해삼과 다른 생명의 필수 에너지 요소로 끝없이 순환하는 망간은 심원한 우주의 시간을 담은 유기체와 비유기체이다.

신체의 한 부분인 귀는 외부의 소리를 듣는 청각 기관이자 신체의 중력과 속도를 인지하는 평형감각 기관이다. 이번 전시에서 귀는 외부 환경에 대한 열림과 상응을 위한 접촉 기관으로서 기능하며, ’다가가기’ 혹은 ‘가까이하기’와 같은 태도를 은유한다.

기획/글. 배은아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31-14
02 74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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