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6 - 10. 26 | [GALLERIES] Gallery Sein
갤러리세인은 고령토(백토)의 질감을 살려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의 인체를 조각하는 윤정선 작가의 열 네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윤 작가는 흙을 다듬고 매만져 인물을 표현한다. 흙으로 다양한 형태의 인물을 빚어 여러 번 구워낸 후 추상적인 표현을 더하고 감정까지 깃들이게 해 새로운 형태의 도자조각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빚어내는 인물들은 주로 소녀·여인들이며, 더 깊게 내재하는 인물은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지금까지의 작품에서는 이렇게 만들어낸 인물에 작가 자신 혹은 타인을 투영하여 표현하였고, 과일‧꽃‧동물의 조각을 함께 구현하여 정원이라는 초현실적인 공간을 가꾸어 냈다.
하지만 이번전시는 작가의 작업에서 조금 변화가 엿보인다. 꾸준히 등장하던 Gardener(정원사)는 빠지고 전체적으로 ‘Floating(부유하는 상태)’에 조금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작품 속에서 인물에 덧입혀진 색채나 덧붙여진 추상적 형상들은 거대한 행성들이 저마다의 궤도를 돌고, 이들 행성은 서로 끌어당기거나 홀로 부유하는 듯하다. 인물과 두상에 얹혀져 있는 크리스탈‧금‧원석들은 떠돌다 서로 당기는 힘에 의해 붙어버린 듯 별들의 모습을 닮아 있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성찰을 작품으로 표현하며, 사유와 질문을 한다. 작가 자신의 희로애락이 담긴 서사를 자아욕구의 분출과 억제를 동반한 고뇌를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따라서 작품은 제작과정에서 스스로 하나의 세계를 드러내며, 그 작품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유토피아적인 정원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소우주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순백인 듯 보이는 백자 항아리에도 결이 남아 있다면, 작가의 작품에는 중력의 힘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흘러내린 유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섬세하게 빚어 수없이 다듬는 작가의 손길에 쓸린 부유하는 듯한 유약의 흐름은 작품 속 인물을 사랑스럽고 예쁜 소녀나 여인이 아닌, 생각에 잠긴 인물로 변화시켜 숙연함 속에서 침묵하게 한다. 이와 같은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으로,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타자이기도 한 여인상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처럼 신성함으로 구현된다.
특히 이번 갤러리세인에서의 전시에서 작가는 이제까지의 작품들과 달리 특별한 인물상을 선보인다. BTS 멤버들의 흉상이다. 작가는 작업을 하다 힘들고 생각이 많아지면 BTS의 노래를 들으며 버텨왔다고 한다. 공감이란 그런 것이다. 작가에게 BTS라는 존재는 그러했다. 어려운 과정을 버텨내며 성장한 그 과정을 가사에 녹여내 음악을 만들고, 대중들에게 노래와 퍼포먼스로 전달하는 BTS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작가에게 힘이 되었다.
이 같은 공감은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조각상으로 형상화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빚은 BTS의 흉상들에서는 독창적인 작가만의 표현 방식과 인물들의 넘치는 카리스마가 만나 강렬한 에너지를 자아낸다. 작가는 숨겨왔던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 듯 이번 개인전에서 이들 작품을 선보인다.
도자조각의 풍부한 표현은 회화로 확장되기도 한다. 작가는 캔버스에 자기조각을 덧붙이는 부조작업을 하기도 하고, 단독적인 회화 작업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자기 조각이 뭉쳐져 응축된 느낌이라면 회화에서는 확장되는 자유로움이 전해진다. 한 점 한 점 각각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실패와 만족의 반복 속에서 진화를 꿈꾸는 작가, 여리지만 강인한 흙이라는 소재와 그 흙의 속성을 닮은 여성, 같은 아티스트로서 애정과 공감을 담은 BTS, 탈매체를 위한 회화작업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합일점에서 작가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윤정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정원이라는 가상세계를 창조해 자아와 감상자들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했던 이전의 작업에서 벗어나 감성적으로 더욱 풍부해진 소우주 같은 공간으로 감상자들을 초대한다. 작가가 탄생시킨 소녀들, 여성들, 그리고 BTS까지 촉각적이고 감각적이며 존재 이면의 의미를 바라보게 하는 인물들은 하나의 원석들이 되어 부유하는 시지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갤러리세인 김연혜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