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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ge of Untact- The Art you can meet through the book Which is still reaching out to you in this time of pandemics

언택트시대 – 책으로 만나는 예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닿을 수 있는 >

미술 전공 학생들은 학창 시절 꽤 많은 예술 서적을 접한다. 커다란 판형의 책은 작가의 작품들은 물론 그의 작업실 전경,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혹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를 보고 나오는 출구에 위치한 아트숍이나 안내 데스크에서도 작가의 작품이 그득히 담긴 도록을 만날 수 있다. 일반 소설책보다 크기나 종이의 질감 등 많은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나기에 당연히 책의 가격은 비싸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대학생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도록을 사 모으곤 했다. 책들은 대부분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의 대형 예술 서적 전문 출판사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어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삶을 회고하거나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정리한 책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가뭄에 콩 나듯 발견되는 도록들 대부분은 종이의 선택이나 제본 방식 등이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기 보다는 전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보조 역할이 전부일 뿐이었다.

2020년, 코로나-19는 우리가 그토록 장담하던 많은 사업들을 휘청이게 했고 인간을 위한 다양한 오락거리와 문화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했다. 미술관, 특히 갤러리 운영까지도 불확실해지자 가뜩이나 수동적인 국내 예술 시장과 작가들의 설 자리도 불투명해지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박탈감을 느끼는 존재는 누가 뭐래도 이제 막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젊은 작가들일 것이다. 그렇게 온 인류의 운명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필연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나와 가족, 친구, 이웃, 나아가 사회 전체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사람 간의 물리적 단절은 이성적으로 수용 가능하지만 심리적 고립감과 우울감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를 극복하려는 듯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소통과 연결을 도모하고 단절의 와중에도 다양한 오락과 문화, 여가 생활을 추구해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상에서라도 유대의 끈을 더 조였고, 미술관과 박물관은 물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공연들이 온라인 공간 안으로 옮겨와 우리에게 최대한 예전처럼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것이 괜찮을까? 온라인 전시를 통해 미술작품을 감상하지만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 재생되는 전시가 갖는 한계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품을 만든 작가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영상이 내뿜는 작품의 소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관객은 작품이 담은 미세한 질감이나 작가의 손길을 느끼기도 어려우며 오랫동안 느리게 작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가 또한 머릿속에 담았던 많은 생각들을 기껏 작품에 담아 놓았더니 한 꺼풀 더 씌워 카메라 뒤의 세상에 그 무수한 서사를 담은 작품을 밀어 넣어야 한다. 충분한 이야기와 시간을 관객이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면 미술시장 또한 주춤하게 된다. 디지털의 공간은 작가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기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리고 이제는 전시장을 있는 그대로 디지털의 공간으로 옮기는 발상이 그리 새로울 것도 없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언제나 새로움을 찾으려는 현 예술의 추세와는 반대로 작품을 전시하는 방법이 왜 그토록 작품의 독특함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따르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활동하고 있는 ‘책’의 영역을 살펴보자.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겁도 없이 잡지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 나는 잡지가 얼마나 문화와 예술 활동과 큰 연관을 가지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책’이 지닌 내레이션 방식이 ‘전시’의 그것 과도 매우 흡사해 깊은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프랑스 파리의 프랑소와 미테랑 국립 도서관에서 전시 ‘유토피아’가 열렸었다. 인간은 언제나 이상향을 꿈꾸며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실현하고자 했고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만든 문서와 그림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전시는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와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수많은 아티스트와 철학자가 외치던 유토피아를 소개했다. 재미있는 것은 고대 철학자들이 그린 그림 중에 하늘을 나는 기계,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기계,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 등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그들의 모습이 현 우리의 시점이 비추는 지금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사람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의 한 부분을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시는 시대의 흐름대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1970년대 존 레논의 이매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이상향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전시장에는 이러한 문구가 보였다. “지금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무엇일까?” 그러게. 수많은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제약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 이상향을 꿈꾸고 있을까?

도서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면 이런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와 에디터가 책장을 통해 차례대로 이야기를 구성해가며 글을, 또 필요에 따르면 이미지를 함께 종이 위에 배치한다. 큐레이터 또한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 가는 지가 관건인 것이다. 하얀 종이는 마치 하얀 전시 공간과도 같다. 심지어 종이 속 공간은 더욱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공간의 역할과 더불어 독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작가는 관객이 어떤 순서와 리듬으로 작품을 감상해 주었으면 하는지를 책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습작과 비교하거나 작가노트가 함께 첨가되어도 좋다. 책이 가진 기존의 틀을 뛰어넘을 수도 있으며 종이의 질감과 커버의 재료 등 수많은 가능성을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더구나 책이 좋은 것은 전시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책을 통해 모종의 작품을 소유하는 것과 흡사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간접적인 방식의 작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와 중세 같은 머나먼 과거, 당시로서는 상상으로만 그치던 획기적인 발상을 오늘날의 우리는 일상으로 살아간다. 그저 전시 작품을 직접 볼 수 없으니 그 앞에 선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는 고리타분한 노력보다 이러한 제약의 상황에서 조금만 각도를 바꾼다면, 작품을 보다 친밀하고 독특하게 소개하고 또 관람자와 소통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새롭게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난 그 실험 중 하나가 책이라는 매개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성인의 70%가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마주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30%가 책을 1년에 적어도 한권은 읽는다는 뜻인데 나는 이 조차도 부풀려진 수치는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자칭 문화인이라는 사람들도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물론 책을 읽지 않음의 위기감 또한 갖지 않은 경우를 매일 목격한다. 책을 읽지 않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뭐 딱히 반박할 말도 없긴 하다. 그러니 내가 6년간 극심한 경영난에 휩싸여 온 삶을 산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심지어는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잡지에 뛰어들어 책에 관한 잡지가 웬 말이냐는 농담 섞인 핀잔도 적잖게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제작하는 잡지 판매량은 소폭이긴 하지만 매월 증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각 주제별로 나뉘어진 매거진을 낱개로 구독하거나 1~2년 정기구독을 신청하는 독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펼쳐진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 곁에 두고 손이 닿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갈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언택트 시대를 대비한 가상 공간 안에서의 무수한 활동을 위한 기술은 앞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것이 분명하다. 진짜보다도 더 진짜같고, 가상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 삶에 침투해 우리를 점점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함께 호흡하는 삶을 포기할 수 없듯 가장 단순하고도 실존하는 존재이자 매개체인 책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볼 필요는 있다. 책이 가진 가장 사적이고 가장 깊숙하게 독자 혹은 관객의 리듬으로 흐름을 주도하는 방식, 그리고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본래의 예술이 가진 의미를 구체적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은경 월간 Chaeg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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