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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

노현우, 문호

노현우 ROH Hyeun Woo, No.108 AM0552 22° 11.AUG.2019, 2022, oil on canvas, 95×55

회화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생각과 감성이 묻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경험과 기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레 감각이 되어 돌아오는 작용이며 작가가 마주치는 어떠한 순간은 끊임없는 창작열의 무대를 향한 출발점이 된다. 평면 안에 모든 현실들을 담아낼 수 없는 창작인의 생각이 형상으로 표현되는 압축된 시간성은 회화가 갖는 매력이다. 갤러리도올은 자신의 눈앞 대상을 작업 활동으로 이어온 노현우와 문호 작가의 작업을 통해 회화가 만들어지는 순간, 작가가 작품으로 옮겨야겠다는 ‘그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노현우 ROH Hyeun Woo, No.127 PM0913_12° 25.AUG.2019, 2023, oil on canvas, 93×162

노현우에게 자연은 중요한 테마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인물과 건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빛은 풍경 안에 자연스레 흡수된다. 풍경은 낯익지만 낯설고 설렘이 주는 공간이며 신비함을 포함한다. 단순한 외형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형상을 얻어 전달되는 심리적 발현이 작가가 풍경을 통해 얻는 바람일 것이다. 형상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섬세함, 생략과 묘사, 때로는 거친 붓터치로 나타나는 자연의 모습이다. 오랜 시간 현장을 관찰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물로서 그의 풍경은 조용한 분위기 안에 시간의 흐름을 유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들은 물질로만 가득한 공간이 아니다. 작품을 보며 떠올려 볼 수 있는 공기와 바람, 온도, 습도 등과 같은 비물질적 조건이 형상과 어울린다.

노현우 ROH Hyeun Woo, No.133_AM0210 13° 08.JUL.2019, 2023, oil on canvas, 145×55

수평적 구도를 중심으로 하늘에 구름이 있거나 물이 보이는, 가끔은 안개가 자욱해지는 공간을 드러내며 이러한 다양한 성격이 만나 어울리고 형성되는 공간이다. 자연 속에 있을 때 얻는 위안은 몸소 체험하는 경험이며 작가의 자유로운 사고와 만나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진지함이 묻어있는 생명의 유한함과 무한함, 시공간을 넘어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구별도 사라져 하나가 되는 장면에 집중될 수 있는 전환의 계기를 만든다. 어떠한 것을 바란다기 보다 작가로서 자연으로부터 얻어내는 결과인 작품이 되어 주는 풍경이 소중하다. 우연히 발견되는 장소를 기록하듯, 자연과의 내적 교감을 통해 얻어진 기운이 풍경으로 전달된다.

문호 MOON Ho, The Moment, 2023, Oil on canvas, 49.9 x 149.7cm

여행의 경험, 일상의 해석이 풍경으로 이어진 문호의 작업은 관찰한 형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사실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생각이 더해져 유화로서, 아날로그적인 행위의 감성이 뒷받침된다. 작업은 사진을 촬영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픽셀 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본연의 형상과 색이 해체되며 색조각들처럼 두드러지는 이미지가 캔버스에서 유화로 마무리된다. 장소와 인물들을 각각 픽셀처럼 파편화하는 작업으로 촬영 시 처음 가지고 있던 관계의 성격이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 안에서 서로 유기적 관계를 형성한다. 재현은 디지털 안에서 해석되는 장면 연출로서 얻는 풍경이다. 풍경 작품을 그리는 것이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창작인의 감성에 따라 달라지는 추상적 성격도 있으니 문호의 작업은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문호 MOON Ho, The Moment, 2023, Oil on canvas, 49.9 x 149.8cm

관찰이 생각으로 이어지고 재현으로 완성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함께한다. 사진을 찍고 픽셀 화하는 작업은 디지털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보고 캔버스에 그림을 완성시키는 행위는 아날로그적이다.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동시에 화면 안에 드러나며 화면 안 물감층이 환영의 공간임을 알게 한다. 근접할수록 색의 파편이지만 멀리 갈수록 형상이 포착되는 매력은 대형 화면에서 원근법이 강조된 3차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각선의 방향에서 바라볼 때 분명 해지는 형상이 흥미롭다.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는 이중적 성격은 작품을 볼 때 효과적이면서, 인물에 대한 형상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작가의 풍경은 일상을 포착하는데서 출발했다. 현대인의 상징으로 익명을 전제로 한다면 내용은 깊어진다. 풍경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을 읽으려 한다.

문호 MOON Ho, The Moment, 2023, Oil on canvas, 50.1 x 100.0cm

갤러리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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