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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ple

2021. 8. 5 – 8. 29
박철호

Reflection 2020 Acrylic on canvas 259 x 193 cm 102 x 76 in.

가나아트는 자연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박철호(b. 1965-)의 개인전, 《 Ripple 》을 가나아트센터 제3관에서 개최한다.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인간의 삶 역시도 자연의 일부로서 순환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경북 의성 출생의 그는 유년 시절에 경험한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작가 특유의 감성적 시선으로 자연을 추상적인 형태로 구현한다. 1990년대에 제작된 <절망과 희망 Despair & Hope > 연작에서는 새의 날갯짓이 추상 이미지로 형상화되었으며, 2000년대의 <새(New)>, <잎(Leaf)>, <꽃(Flower)> 연작에서는 식물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이처럼 자연에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는 자연에서 손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생명의 생성과 소멸, 순환관계를 탐구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감과 예술적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본 전시에서도 작가는 수면 위의 물결과 물결 사이의 빛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순환함을 드러내는 < Ripple(파문) > 연작을 선보인다.

박철호의 회화에서 새, 꽃, 구름, 하늘, 바다 등의 자연 요소들은 얇은 선으로 묘사되는데 작가는 이를 ‘결’이라고 표현한다. 결이란 구름의 흐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나 풀의 움직임, 물결의 파문, 새의 날갯짓, 빛의 파장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으로, 그는 모든 자연에 이러한 결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자연의 움직임을 이차원의 평면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판화의 실크스크린(Silkscreen) 기법을 활용한다. 이 기법은 다른 판화에 비해 잉크가 많이 묻어나기 때문에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 명확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박철호는 이 기법의 특징을 활용하여 자연의 결을 드러내고 그 위에 회화의 기법을 접목한다. 예컨대 선명한 색상으로 흔적이 남는 실크스크린 기법과 화면에 물감을 더하는 회화 기법의 경우, 각 매체 간의 명도 차이가 생긴다. 이러한 차이는 화면 안에서 서로 경계를 지으며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작가는 린넨 천을 이용하여 염료가 흡수되는 효과를 부각시켰는데, 이로써 잉크와 물감 사이의 공간적 깊이감을 만들어 유기적인 시간의 흐름까지도 구현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삶과 세월을 읽어 내고, 또 그 갈피마다 품고 있는 시공(時空)을 온몸으로 느껴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Ripple 2023 2021 Acrylic on canvas 162 x 130 cm 63.8 x 51.2 in.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신작 < Ripple >은 ‘수면(水面)’을 주제로 한 것으로, 이는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밤바다를 보았던 기억이 뇌리에 각인되어 무의식 상태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작가는 자연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자연의 결을 표현하는 방식에서의 차이를 두었는데, 이는 두 가지 형상으로 작품에 구현된다. 먼저 수면 위의 물결을 표현한 작품은 주로 푸른색을 사용하여 흐릿한 색과 짙은 색상의 농담이 서로 겹치며 리듬감이 느껴지는 일렁이는 형태로 표현된다. 그리고 다른 형상은 자연을 보는 시야를 넓혀, 보다 먼 곳에 있는 수면 위에 미세하게 반짝이는 빛을 시각화한 것이다. 즉, 첫 번째 작품은 물결을 보는 시야를 줌-인(Zoom in)하여 파장 자체를 확대해서 집중하였다면, 수면 위에서 빛나는 결을 표현한 작품은 시야가 상대적으로 줌-아웃(Zoom out) 되어 있다. 아울러, 두 작품을 가까이에서 면밀히 살펴보면 결의 표현에서도 다르게 드러난다. 첫 번째 작품은 색감의 농도 차이와 길동그란 형태로 물결을 나타내고, 수면의 빛을 표현한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짧은 붓 터치로 더욱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그는 빛살을 더욱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물감의 용제(溶劑)인 미디엄(Medium) 재료를 사용했다. 미디엄이란 물감의 보조제로, 마르면 불투명해지거나 반짝이는 역할을 하는 매체다. 작가는 이 재료를 활용하여 빛살의 반짝임을 구현하고, 층층이 쌓아 여러 개의 층을 형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공간감이 더해져 은은하게 빛나는 자연 풍경 또는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호수 등을 연상시키고, 박철호만의 독특한 화면으로 재탄생된다.

Ripple 2041 2020 Acrylic on canvas 162 x 130 cm 63.8 x 51.2 in.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이목을 끄는 작품은 < Ripple 2041 >(2020)과 < Reflection >(2020), < Ripple >(2021)이다. 이 세 작품은 즉흥적으로 자른 린넨을 자유롭게 이어 붙인 것으로, 작품의 크기의 한계를 넘고자 한 작가의 시도이다. 작가는 작업의 크기를 확대함으로써 캔버스나 종이와 같이 규격화된 화면에서 벗어나 표현의 영역까지도 확장하고자 했다. 그 중에서도 본 전시의 백미는 너비가 약 10미터에 달하는 설치 작품인 < Ripple >(2021)로, 이 작품은 압도적인 스케일에서 관람자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광활한 자연이라는 작가의 일생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이번 전시는 작가가 무의식에 깊이 지녀온 물결과 빛에 대한 인식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한 < Ripple > 연작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워 보는 이들을 푸른 대자연 속으로 인도할 것이다.

가나아트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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