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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OCI 어게인 : 귀한인연 나광호 개인전 《강원도감》

나광호

매일 마주하고 나를 감싸고 있는 자연이 작업의 검은 이미지이다. 밀도 있는 자연의 모습을 목판화로 제작하여 흔하디흔한 식물을 새로 발견하거나 걸음을 멈추고 보게 된다. 색채를 배제하면 형태의 구체성이 부각되는 검은 도감[圖鑑]이 된다. 구체적으로 재현하면 실물 대신 주목한다. 소소한 일상이어서 지나치던 하찮은 풀잎, 무심히 밟고 지나치던 질경이가 프레임에 박제되고 각인되어 프레스의 압[壓]을 통해 촉감이 된다.

나광호_맨드라미_silkscreen, acrylic on arches paper_91×116.7㎝_2023

무엇이든 검색하면 세세하게 자연과 식물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나열되는 오늘 날 발품을 팔아 도감을 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탈출할 작은 배에 자신들의 탈 자리가 없자 생존을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연주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쓸데없음’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어쩌면 예술의 역할이자 위치할 곳, 예술의 태도라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쓸데없어 보이는 소재와 역행하는 태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작품을 제작한다.

나광호_질경이_silkscreen, acrylic on arches paper_80.7×121㎝_2023

내 작업에 있어서 본질, 근원, 오리지널리티, 나의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나의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의 것은 나의 실제 경험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내가 풍경을 마주하며 느낀 분위기, 뉘앙스, 달아오름, 닭살, 쭈뼛쭈뼛 스는 털, 땀, 시원함, 진짜 풍경을 마주한 감탄사. 이 직관적 느낌과 감각적인 신체적 경험은 바로 고유함이며 오리지널이라는 증거를 뒷받침한다.

나광호_천인국_woodcut, offset ink on arches paper_90×106㎝_2023

작품의 소재가 된 것은 풀, 꽃, 나물, 잡초, 시든 식물, 나무들이다. 이 자연의 소재들이 한데 뒤엉켜 ‘평화’로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질긴 생명력으로 해와 비를 견디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이 무척이나 내 눈길을 끌었다. 이 익숙하면서도 흔하고 평범한 도감의 소재들이 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에 각인되고 프레이밍 되고 편집되며 화면에 기록이 된다. 이 익숙하고도 동시에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 단순하고 강렬하게 새로운 감각의 층위로 이동하고 위치하길 원한다.

나광호_맨드라미_woodcut, offset ink on arches paper_106×77㎝_2023

내 작업의 최종목표는 그림을 모아 도감[圖鑑]을 제작하는 것이다. 전시와 출판은 미술을 낮은 문턱으로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전문가 혹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목판화, 실크스크린, 에칭으로 제작된 작품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나광호 (작가)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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