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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페이퍼

2022. 12. 7 – 2023. 1. 7
강이연, 구정아, 구현모, 권진규, 김지원, 백현진, 서승원, 신민주, 윤형근, 이상남, 이원우+Trojan X, 정영도, 조덕현, 코디 최, 홍영인

PKM 갤러리는 2022년을 마무리하는 전시로 «on paper»를 개최한다. 본 전시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에서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 미술 작가에 이르는 15인의 종이 작업 40여 점이 소개되며, 종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들의 예술적 지향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장을 보여준다.

종이는 가볍고 휴대하기 편리한 재료이자 흑연, 색연필, 수채, 유채 등 각종의 안료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중립적인 지지체로, 미술가들은 이처럼 열린 매체인 종이를 작업에 다양하게 적용해왔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순간과 생각이 진화하는 과정들을 붙잡아 두는 수단으로 종이를 손쉽게 사용하면서도, 종이 작업 그 자체가 완결성을 가질 수 있도록 화면 내부의 형상과 구성을 부단히 고민해온 것이다.

«on paper»는 종이 작업을 주 작품을 위한 전편 prequel이나 파생된 형태의 속편sequel으로 여기는 시각에서 나아가,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독립체로 주목한다. 동시에 그 다종다양한 아름다움의 스펙트럼이 각 미술가의 종이 작업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살펴보고자 본 전시는 기획되었다.

故 권진규가 1950년대 일본 유학 시절 제작한 펜화와 故 윤형근이 1960-1980년대 스케치북, 모눈종이, 책의 낱장 등 일상의 소재에 그린 습작들은 이들의 조형 언어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이상남은 그를 대표하는 도시 문명의 리드미컬하면서도 섬세한 조형 기호들을 펜과 종이가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며, 김지원은 작업의 주된 모티프인 ‘맨드라미’와 ‘레몬’을 캔버스 회화보다 경쾌하고 생생한 터치로 종이 위에 담아냈다. 서승원은 햇볕이 창호지에 어슴푸레 투과되듯 색과 빛이 은근하게 진동하는 ‹동시성› 종이 연작을, 신민주는 물감을 과감히 도포하고 이를 스퀴지로 빠르게 밀어내며 붓질의 여러 결을 드러낸 ‹ PD ›, ‹ DW › 연작을, 조덕현은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속 종교적, 인간적인 비극의 이미지를 인용한 ‹ descending › 장지 연작을 선보인다. 이상의 종이 작업은 각 작가가 작품세계에서 끈질기게 탐구해온 주요 화두를 가볍지만 깊이 있게 내던진다.

한편, 가까이서 볼 때 새로운 부분들이 발견되는 구정아의 섬세한 펜 드로잉과 그날그날의 몸짓에 따른 백현진의 페인팅은 특정 주제를 함축하기보다 제스처적이고 직관적인 작업에 가까우며,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는 이들의 유연한 태도를 반영한다. 홍영인은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탈위계적 연습› 퍼포먼스의 안무가와 음악가의 동선을 구상하며 만든 벽지 콜라주 작업을, 구현모는 작업실 마당의 고욤나무 외피에서 얻은 프로타주와 포장 판지의 패턴을 내용물로 삼은 조각을, 정영도는 칠하고 접고 자르고 이어 붙여 추상과 구상,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게 한 페이퍼 워크를 선보이며, 종이 작업의 영역을 더욱 다채롭게 확장한다.

디지털 베이스의 강이연과 코디최는 디지털 드로잉이 물리적인 형태 physical drawing로 변환한 작업을 보여준다. 강이연은 코엑스 K팝 스퀘어에서 전시 중인 대형 LED 월 작업 ‹ Vanishing ›의 기초가 된 일부 이미지를, 코디최는1999년부터 축적한 디지털 이미지 데이터를 작가만의 알고리즘으로 조정하여 최근 NFT 작업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의 프린트 버전을 선보인다. 이원우는 작가가 직접 그린 ‹너는 나의 불타는 빛› 드로잉과 그가 발명한 인공지능 아티스트 Trojan X가 그린 채색화를 함께 출품했다. 인간 신체와 기계 기술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이들의 종이 작업은 21세기의 풍경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종이가 B.C. 2세기에 발명된 이래 지식과 문화를 교류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듯이, «on paper»는 참여 작가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언어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그릇이면서 자유로운 실험 과정과 그들 주변 세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매체 장르로서의 종이 작업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다 폭 넓고 신선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PKM & PKM+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7길 40
02 734 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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