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KUKJE GALLERY
2022. 4. 5 – 5. 15
우고 론디노네
“나는 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물리적인 현상인지 혹은 형이상학적인 현상인지에 대한 조각을 만든다.” – 우고 론디노네
국제갤러리는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개인전 《nuns and monks by the sea》를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선보인다. 본 전시는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개최하는 작가의 세 번째 전시이자, 부산점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이와 같이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작품을 선보이는 전략은 우고 론디노네가 자주 취하는 방법으로, 작가가 둘 이상의 시공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작품이 자리하는 스펙트럼의 범주를 넓히는 효과가 있다. 관람자는 론디노네의 작품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물리적, 형이상학적으로 움직이고, 보는 것만큼이나 귀를 기울이며, 머리로 이해하는 것 못지않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개방성은 우고 론디노네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로, 다양한 물질과 상징성을 아우르는 작가의 많은 작품을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맥락 하에 본 전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공간에서 각기 다른 두 개의 고유한 작품군을 선보이는 이례적인 형식을 띤다.
전시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번 개인전은 국제갤러리 서울점 K3 공간에 설치된 우고 론디노네의 대규모 청동 조각 연작 〈nuns + monks〉를 주축으로 내세운다. 성인(聖人)의 신비로움과 엄숙함을 불러일으키는 다섯 점의 〈nuns + monks〉 조각들은 공간을 사로잡고 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하나의 거대한 돌 위에 다른 색상의 작은 머리를 올린 이 의인형 조각들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발산한다. 관람객들의 키를 훌쩍 넘어 우뚝 솟은 신화적 존재들은 우상적 상징성으로 짓누르기보다는 열린 상태로 그들을 환영하며, 거칠게 깎인 작품 표면은 불안정한 독단성보다는 치유자의 풍성한 옷자락을 연상시킨다. 본래 작은 크기의 석회암 모형으로 제작되었던 작품을 작가가 스캔하고 확대하여 청동 주물로 재탄생 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습작의 내밀한 특징들을 포착해 섬세한 질감을 지닌 형태와 거대한 비율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냈다. 무아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이 조각들은 바로크 미술가들이 작품에 담곤 했던 바람(wind)으로 고요히 마음을 움직인다.
지난 10여 년간 우고 론디노네는 돌이라는 재료가 지닌 힘에 집중해왔다. 2013년 뉴욕 록펠러 센터 광장에서 〈human nature〉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된 기념비적 청석 조각 작업은 2016년 네바다 사막에서 돌탑 형상의 작품 〈seven magic mountains〉로 다시 전시된 바 있다. 〈nuns + monks〉를 위시한 이 야심한 규모의 작업들은 론디노네가 “돌에 내재한 아름다움과 에너지, 구조적 특징, 표면의 질감, 그리고 시간을 모으고 응축하는 능력”에 부여한 신뢰를 대변한다.
시간을 품고, 또 시간을 발산하는 돌의 잠재력에 대한 인식은 갤러리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개입에서도 나타난다. 관람자는 작가가 공간 전체에 시멘트를 발라 바닥과 벽이 단일한 콘크리트처럼 보이도록 공간을 변형했다는 것을 이내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갤러리 공간의 표면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밑작업은 작가가 종종 사용하던 제스처로, 바닥과 벽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그 지평을 재정의할 뿐 아니라 돌에 내재한 고요한 변신의 상태를 은유한다. 끊임없이 변모하는 공간은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의 상태를 암시하고, 이로써 3관 안의 조각들이 발하는 에너지는 관람객과 작품 모두를 창발(創發)의 단계에 함께 위치시킨다.
감각적으로 시간을 기록하는 작가 특유의 태도는 부산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작가는 전시장의 전면 유리창을 회색 자외선 차단 필터로 감싸 절묘한 공간 개입을 이루어 낸다. 전시장의 빛 스펙트럼을 살짝 조율함으로써 마치 구름에 그늘이 진 듯 전시공간을 시원하게 느끼도록 하는 효과를 도출한다. 이러한 날씨에의 암시는 부산 공간에 전시되는 17개의 작은 〈mattituck〉 작품과 함께 볼 때 더욱 적절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집이 위치한 뉴욕 롱아일랜드의 매티턱에서 본 노을을 묘사한 이 작품군은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수채화 작품들이다. 〈mattituck〉은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색을 담고 있지만, 각각의 작품은 오로지 3개의 색으로만 이루어진다. 단 3개의 색으로만 구성해서, 론디노네는 해가 수평선 아래로 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노을의 섬세함을 화폭에 담아낸다. 작품들의 색채 활용 범위를 보색으로 좁힘으로써, 작가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지만 시각적으로도 충만한, 하루 중 가장 특별한 시간의 마법을 온전히 담은 작품을 창작해낸다. 〈mattituck〉 연작은 론디노네의 다른 연작인 〈cloud〉나 〈sun〉과도 결을 같이 하는데, 이 연작들의 공통점은 모두 작품이 완성된 날짜 및 연도를 제목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우고 론디노네는 지난 40여 년 가까이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하고, 그들을 둘러싼 자연의 공명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이끄는 강렬한 시각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의 작품은 사물의 비영구성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증거이자 위로로 작용한다. 빛을 한층 여과하도록 조율된 부산 전시장의 입구, 그 문턱을 넘어서면 관람객은 길게 늘어선 석양들을 마주하며 마치 시간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가 “살아있는 우주”라 부르는 모든 것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품은 이 공간에서 그의 작품들은 “이 계절, 이 하루, 이 시간, 이러한 풀의 소리, 이렇게 부서지는 파도, 이 노을, 이러한 하루의 끝, 이 침묵” 등 자연의 요소들을 기록한다.
인용된 모든 문구는 2020년 11월 무스 매거진(Mousse Magazine)에 실린 우고 론디노네의 인터뷰 “Organic Accord: Ugo Rondinone”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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