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아

전시 전경 (1)
동시대 추상회화는 더 이상 세계를 재현하는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회화는 신체의 움직임과 기억의 흔적, 언어 이전의 감각, 그리고 물질의 작용이 교차하는 생성의 장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지아의 작업은 추상을 형식적 실험이나 비재현의 방식으로 한정하지 않고, 감각이 형성되고 축적되는 과정을 하나의 회화적 언어로 조직한다. 그녀의 화면은 무엇인가를 묘사하기보다 색채와 물질, 신체적 행위가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감각의 질서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전시 전경 (2)
이번 전시 Inner Landscape에서 ‘풍경’은 자연이나 외부 세계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과 시간, 그리고 정동(Affect)이 축적된 내면의 지형이며, 신체를 통과한 경험이 남긴 감각의 흔적이다. 작가는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미세한 감정과 순간적인 감응을 색채와 선, 제스처의 리듬으로 화면 위에 축적하며,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인 감각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따라서 그녀의 풍경은 특정한 장소를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관람자의 기억과 감각을 불러들이는 열린 회화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신지아, Unconscious_36, acrylic, oil stick, oil pastel, and gold paper on canvas, 227.3×181.8cm, 2026
그 내면의 풍경을 조직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색채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핑크와 블루, 옐로, 골드는 자연을 모사하거나 감정을 상징하는 색이 아니다. 그것은 화면의 구조를 조직하고 시선의 흐름을 이끌며 감각의 리듬을 생성하는 조형적 힘이다. 서로 다른 색층은 중첩과 대비를 반복하며 화면에 호흡과 리듬을 부여하고, 빛의 변화에 따라 미세하게 반응하며 고정된 색면에 시간성과 공간감을 더한다. 이처럼 색채는 화면의 깊이를 형성하는 동시에 관람자의 지각을 활성화하며, 회화를 시각적 대상이 아닌 신체적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그녀의 색은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가 아니라 화면 안에서 서로 충돌하고 공명하며 감각의 밀도를 형성하는 능동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신지아, Unconscious_31, acrylic, oil pastel, and oil stick on canvas, 91.0×116.8cm, 2026
색채가 화면의 리듬을 조직한다면, 물질은 그 리듬에 시간성과 밀도를 부여한다. 아크릴, 오일스틱, 오일파스텔, 스프레이, 금박 등 서로 다른 물성을 지닌 재료들은 화면 위에서 중첩과 충돌을 반복하며 다층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반복되는 덧입힘과 지움, 겹침의 흔적은 제작 과정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화면의 일부로 드러난다. 물질은 표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회화의 의미를 생성하는 적극적인 요소이며, 화면은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축적된 과정의 기록으로 존재한다.
신지아, Blow Your Feelings_11, acrylic, oil pastel, and oil stick on canvas, 130.3×162.2cm, 2026
물질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신체적 행위와 연결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유기적인 선과 즉흥적인 제스처는 작가의 몸이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며, 반복적인 움직임이 남긴 리듬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추상표현주의가 강조했던 주체의 감정 표출과는 거리를 둔다. 오히려 신체와 물질이 서로 반응하며 생성하는 관계를 드러내고, 회화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적 구조로 조직한다. 이러한 과정성(Processuality)은 작품의 의미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생성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지아, Happy Meal, acrylic and oil stick on canvas, 130.3×162.2cm, 2026
이처럼 반복되는 생성의 과정은 화면 안에 잠재된 감각의 층위를 형성한다. 신지아의 회화는 무의식을 직접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 이전의 감각과 신체에 축적된 기억이 머무는 잠재적 공간을 구축한다. 이러한 잠재성(Potentiality)은 하나의 해석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관람자의 기억과 경험이 개입하는 순간마다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작품은 작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관람자의 감각과 만나면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관계적 구조이다. 따라서 회화의 의미는 화면 안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 행위 속에서 비로소 형성된다.
신지아, Champagne Weather, acrylic, colored pencil, and oil stick on canvas, 112.1×112.1cm, 2025
결국 Inner Landscape는 내면을 묘사하는 전시가 아니라 색채와 물질, 신체와 시간이 교차하는 회화적 장(場) 속에서 감각이 생성되는 방식을 탐구하는 전시이다. 신지아는 색채와 물질, 신체적 행위를 하나의 유기적인 조형 언어로 통합하면서 추상을 단순한 형식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녀의 회화에서 화면은 더 이상 완결된 이미지가 아니라 감각과 물질, 행위가 서로를 규정하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관계의 장이 된다.
신지아, Mingling, acrylic, oil stick, and oil pastel on canvas, 91.0×91.0cm, 2026
관람자는 작품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화면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물질의 밀도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각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신지아의 작업은 색채와 물질, 신체적 행위가 생성하는 감각의 관계망을 탐구하며, 동시대 추상회화가 회화의 물질성과 신체성, 그리고 감응의 가능성을 어떻게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설득력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안나연 Curatorial Director, Gallery 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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