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2 – 12. 21 | [GALLERIES] JARILAGER Gallery
자비에 박스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화가 자비에 박스터는 여러 상반된 성향이 강렬하게 공존하는 인물이다.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회화가 지닌 원초적 힘을 굳게 믿고, 몸의 움직임이 그대로 실린 거침없는 붓질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왔다. 성인이 된 뒤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이름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자신의 삶과 작업을 주체적으로 이어가겠다는 분명한 선언이기도 하다. 박스터는 소셜 플랫폼을 통해 먼저 자신을 드러냈고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시를 거치며 점차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인체를 다루는 방법에서 고전적 표현을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방식과 결합하는 독창적인 접근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NEW PAINTINGS> 전시 전경 (1)
NEW PAINTINGS는 자비에 박스터의 첫 서울 개인전으로,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의 변화를 보여준다. 쾰른에서의 전시 Show me your soul이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내세웠다면, 이번 작업들은 좀 더 둔중한 무게감을 깊이 있게 표현하였다. 여기서 빛은 심리적 층위를 탐색하는 도구에 가깝다. 더욱 깊어진 명암 대비는 유럽 회화 전통, 특히 박스터가 유럽 초상화의 정점으로 여기는 바로크 거장들과의 의도적인 대화를 드러낸다. 더욱 짙어진 그림자와 차분한 색조는 단순한 분위기 연출이 아니라 강한 감정과 긴장, 비극적 정서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바로크 기법에 대한 인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계보를 통하여 박스터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안쪽에서 빛이 스며 나오는 듯한 영적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Xavier Baxter, Bright Out, 2025, Mixed media on canvas, 183 x 152.5 cm
각 작품은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치열한 제작 과정의 결과이다. 그는 여러 날에 걸쳐 캔버스 표면을 준비한 뒤, 짧고 강렬한 시간 동안 원하는 선을 얻기 위해 온몸으로 맞선다. 두꺼운 물감 자국 옆에 날카롭게 긁어낸 흔적이 놓이고, 강한 타격 같은 붓질 뒤에는 색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이어진다.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붓질 때문에 잠시라도 망설이면 화면의 생기가 빠져나간다고 그는 말한다. 젖은 표면은 우연이 개입하는 전장과도 같고, 얼굴이 지나치게 평온해 보이거나 동작이 너무 선명하면 과감히 지워버린다. 목표는 그림을 살아 있게 두는 것. 흐르게, 움직이게, 계속 숨 쉬게 하는 것이다.
이런 폭풍 같은 흔적 속에서 몸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퇴적층 속에 묻힌, 오래된 존재를 발굴하듯 찾아내야 한다. 어린 시절 화석을 찾던 경험은 여전히 박스터의 시각적 본능을 이끌고 또 형성한다. 처음에는 추상처럼 보이는 표면에서 고개가 기우는 방향, 어깨에 실린 힘, 긴장으로 휘어진 등줄기 같은 인체의 형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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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PAINTINGS> 전시 전경 (2)
박스터 작품의 인물들은 캔버스 전체를 장악하며 마치 밖으로 성큼 걸어 나올 듯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팔, 머리, 다리는 서로를 끌어당기며 캔버스의 경계를 허물며 넘나든다. 그의 누적된 붓질은 화면에 깊이를 더해 구도의 안정성을 주어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또한 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박스터의 작품은 폭발적인 힘이 느껴지는 동시에 섬세하고 부드럽다. 그림 속 인물들은 외부로부터 받은 수많은 공격을 견디고 회복하며, 그 과정을 이겨낸 결의들로 가득하다.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요소와 흔적, 색의 조합이 드러난다. 관객은 박스터가 쏟아낸 강렬한 감정의 표면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는 멀리서 강하게 밀어붙이고, 동시에 자신의 내적 고통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회화는 나에게 스스로의 신념을 확인하는 가장 근본적인 시험입니다.” 박스터는 말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마주하게 되고, 결국 영혼을 드러내게 되죠. 작품은 당신에게 다가와서 부딪혀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무언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