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f.org는 Internet Explorer 브라우저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습니다. Edge, Chrome 등의 최신 브라우저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는 시선의 끝에서

배하윤

전시 전경 (1)

세월의 흔적이 남은 도심의 한 모퉁이는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낡고 조용하다. 개발과 개발 사이, 그 경계에 놓인 이 풍경은 한국 사회가 남겨둔 ‘빈 공간’이자, 곧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유동성을 품은 장소다. 작가는 이러한 사라져가는 도시의 장면들을 응시하며, 시간과 생명의 온도가 스며든 흔적을 회화로 기록한다. 그의 시선은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부의 풍경에 닿는다. 녹슨 철, 깨진 유리, 벽의 얼룩과 같은 불완전한 질감 속에서 그는 ‘자연화된 인공물’을 발견한다.

작은 초록, 162.2 x 130.3cm, oil on canvas, 2025, 가여운 벽, 162.2 x 130.3cm, oil on canvas, 2025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사물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본래의 기능과 형태를 잃고, 점차 자연물처럼 변화하는 과정은 도시의 상처이자 회복의 서사로 읽힌다. 벽의 균열 사이에 피어난 넝쿨, 콘크리트 틈새를 뚫고 자라나는 작은 초록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생명’의 은유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 속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자연의 순환,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고요한 생명력을 포착한다. 화면은 정지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움직임과 호흡이 깃들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제시되는 ‘이동하는 풍경’은 사라짐과 생성이 교차하는 장소, 공터와 폐허 사이를 부유하는 풍경의 초상이다.

자라는 이름,193.9 x 130.3cm, oil on canvas, 2025, (each)

그것은 단순한 공간의 묘사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남는 마음의 흔적에 대한 기록이다. 낡고 허물어진 도시의 한 켠에서, 작가는 불완전한 자아와 존재의 불안을 마주하며,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색을 찾아낸다. 폐허 속에서도 생명은 자라난다. 그리고 그 미약한 생명력은 우리 내면의 또 다른 풍경을 비춘다.

눈 속에 묻혀 있던 것, 97.0 x 162.2cm, oil on canvas, 2025

 

갤러리 이마주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20길 12, B1
+82 02 557 1950

WEBSITE  INSTAGRAM

Share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