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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PES OF THINGS

2021. 12. 15.- 2022. 1. 30
니콜라스 샤르동

갤러리 신라는 2021년 12월 15일부터 2022년 1월 30일까지 니콜라 샤르동 (Nicolas Chardon, b.1974~)의 개인전 을 개최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대구에서 개최 후 2022년 서울에서도 개최될 예정입니다. 그는 15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게 되는 이 두 번의 전시회를 위해서 2003년부터 현재까지 작업한 작품들을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두 전시를 위해 각각의 작품을 각각의 공간(대구, 서울)을 생각하면서 연속체로서 준비했다.

샤르동의 작업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우리가 이전에 본 적이 있을 수 있는 왜곡된 기하학적인 형태를 그린다는 것이다. 그로인하여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예술 작업은 전통, 역사적 근대성의 아카데미즘, 가부장제, 아방가르드에 의해 축성된 엄격한 영역으로 작동하는 여러 활동(특히 경치, 편집, 교육)들과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이들은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이미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이중적인 질문을 던졌다. 작가가 회화를 옹호하는가, 아니면 회화가 스스로를 옹호하는 실험을 활성화하는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회화, 무용, 조각, 무대, 건축, 내부 또는 외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들의 대부분 활동이 대립, 교차, 도전 및 저항 영역에서 발생한다고 간주하는 것을 선호한다 : 그것은 각각의 예술적 실천이 서로의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극하며, 스스로를 재정의하도록 강요하는 지점들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르동이 비시 천에서 <무용수(faune)>의 타이즈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영구적인 변장을 보장하고 심지어 패러디할 수 있도록 하는 의상은 무엇이며, 무엇이 예술가나 예술가의 신성한 추상화, 몸짓, 스타일, 조건들을 차례로 전복시키는가? 그리고 신체의 한계, 캔버스와 전시공간의 상징적 공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다른 질문을 해본다.

가장 먼저, 사용자의 의상을 입는다는 것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샤르동의 작업은 원, 선, 사각형이라는 단순한 형태에 기반한 새로운 예술 세계 질서의 창시자이자 절대주의의 역사적 인물인 카시미르 말레비치가 남긴 유산의 일부이다.

우리는 그것을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연구는 낭독, 공연, 무대 또는 회화 작업에서 주로 나타나는 요소들로서, 리듬이나 반 리듬적으로 공간에 속한 많은 건축 요소들로 간주되어져 장소의 용도와 기능을 테스트한다. 먼저 움직임과 재료에 의해 제약된 그의 제스처(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아트 센터, 갤러리 또는 박물관의 삶과 일상을 구성한다. 여기에서 내가 원근법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샤르동은 그의 회화에서 공간과 시간을 상황, 개념과 현실에 따라 가변적이고 조정 가능한 크기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전시 공간을 변형 가능하고 조정할 수 있으며, 거주가 가능한 4차원의 공간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림과 공간이 하나가 되는 것은 관람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 완성된다. 작가가 생각하는 열정과 욕망이 휘몰아치는 <절대적 간극>은 불안정하고 영구적인 평형 상태에 있다는 점과 그것이 그 무엇보다도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한다는 의미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니콜라 샤르동과 함께 협업을 하기 이전부터 나는, 이미 그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후에 그를 더 알게 되었고 그와 내 삶의 많은 순간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 텍스트를 활용하여 그와 공유하는 순간마다 적용이 되는, 이러한 멋진 만남과 관련된 상호적인 우정의 개념인 “샤르도나드 가족(family Chardonnade)”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나는 그의 삶의 한 측면을 공유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성격과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는 뮤즈의 의식과도 연관시킨다. 거의 30년 째 샤르동은 그의 아내인 예술가 카리나 비쉬에 대한 진지한 사랑의 열렬한 불을 지펴 오고 있다.
그들 사이의 “사랑의 이야기”는 거의 주술적인 가치를 지닌 영감과 소멸의 영구적인 원천이다 : (무작위적인 생산의 흔적에서) 현실과 일상 생활의 긴장을 표현하는 것은 그들의 삶이다. 그의 야심찬 연구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 구성된 담론 너머의 영웅적인 예술적 여정을 통하여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원시적 가치를 느끼고, 죽어가고 조소하는 기하학의 무생물 속에서 생명의 숨결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샤르동은 대가들의 성취를 자연스럽게 차용한다. 그는 회화 작업을 통해 회화의 가능성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왜일까? 나는 샤르동이 그의 회화를 무한한 생산 현장(현실 세계보다 잠재적으로 더 나은 세계의 물리적 재구성을 위한 이유, 시스템, 공간 및 시간이 있는 곳)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회화의 기술성은 언제 어디서나 친밀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언제나 영원히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느리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영원히 작용한다.
예술가가 급진적인 활력을 이끌어 내는 것은 회화의 모든 가능성 사이의 영구적인 투쟁 과정을 예견하고 이를 연결하는데 있다. 이런 규범들은 파열, 침입 및 영구적인 움직임의 통과들을 생성한다. 다시 말해, 삶에서 예술로 또다시 삶으로.

By 티파니 드라고트 루페스쿠 (Tiphanie Dragaut-Lupescu)

*티파니 드라고트 루페스쿠는 프랑스 낭트 고등미술학교에서 학사, 파리 소르본 팡테옹 대학교에서 석사 졸업한 후에 프랑스 라 본(La Borne)의 현대 도예 센터의 미술 감독직을 맡고 있다.

갤러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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