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LTURAL ISSUE] PUBLIC ART
치명적인 테크놀로지의 유혹
: 탄소 발자국에서 우주 쓰레기까지
· 기획 정일주 편집장
· 글 이대형 콘텐츠 큐레이터·Hzone 디렉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에게 가르쳐준 첫 번째 교훈은 놀랄만하다. 최근 인류는 불과 몇 주 만에 전 세계의 경제 시스템이 동시에 멈춰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절대로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꿔서는 안 된다던 시스템이 실제로 멈췄다.” 프랑스 철학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1)의 도발적인 메시지가 전 세계 12개 언어로 번역돼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메시지를 통해 인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 지구적 가속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멈춰버린 지구는 우리 모두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지난 반세기 인류는 ‘과학’과 ‘테크놀로지’라는 부품으로 만든 폭주 기관차를 타고 ‘글로벌리즘’이라는 신자본주의 지도를 따라 경쟁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환경학자, 철학가가 논하던 ‘인류세’의 문제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닌 문만 열고 나가면 코끝을 자극하는 현실이 되었다. 해마다 쏟아지고 있는 수천만 톤의 전자 폐 쓰레기(이하 E-waste)가 선진국에서 출발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며 재활용되고 폐기처분 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환경과 건강 문제는 신경 손상, DNA 손상, 심혈관 손상, 호흡기 손상, 면역계 손상, 피부질환, 청력 상실, 암 발생 등 언제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UN이 발표한 「글로벌 E-waste 모니터 2020(Global E-waste Monitor 2020)」2)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전자 쓰레기가 5,630만 톤에 달한다. 이는 유럽에 사는 성인 전체의 몸무게보다 더 무겁고, 길이 340m의 슈퍼 크루즈 350여 대가 쓰레기를 가득 채우고 일렬로 나열한 규모이다. 해당 보고에 따르면 2030년에는 7,400만 톤의 전자 쓰레기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E-waste 문제는 지구 밖에서도 발생한다.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의 배경이 된 우주 쓰레기 문제가 더는 공상과학영화 속 허구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우리 모두의 머리 위를 물리적으로 떠돌고 있는 골칫거리이다. 2018년 10월 5일 유럽 스페이스 에이전시(European Space Agency)와 스튜디오 로세하르데(Studio Roosegaarde)가 협업해 만든 스페이스 웨이스트 랩(Space Waste Lab)3)이 공식 출범했다.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이 협업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2만 9,000여 개의 우주 쓰레기 파편을 채집해 업사이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재활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프로젝트를 발의한 단 로세하르데(Daan Roosegaarde)는 인공위성의 파편을 ‘우주의 스모그’라고 정의하며 미래세대를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이 되었고, 그에 따라 더 빠른 컴퓨팅 시스템 구축과 새로운 디지털 장비에 대한 수요도 대거 늘었다. 오프라인 전시는 온라인 뷰잉룸으로 대체되었고, VR·AR 테크놀로지가 동원된 디지털 실감형 전시는 사운드와 이미지가 결합된 3차원 경험을 실제처럼 재현하기 시작했다. 더 생생하고 더 빠른 실시간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해마다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컴퓨터, 디스플레이, 모바일, 통신 디바이스는 관람객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이중 20%도 안 되는 부품만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지구 곳곳에 스며들며 유해한 쓰레기로 폐기처분 될 운명임을 지난 5년간의 통계(Global E-waste Monito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원은 유한하고 지구가 버틸 수 있는 쓰레기의 양도 한계가 있는데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어 이 같은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서로 협업할 수 있게 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모든 사람이 언제든 작품에 접속할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축복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내가 어떤 사람이든,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입장벽이 낮고, 그만큼 확장성이 높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이 가져온 커뮤니케이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물리적인 갤러리와 미술관의 엘리트주의는 컴퓨터와 모바일 디바이스의 인터페이스 앞에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힘을 쓰지 못한다. 디지털 아트는 무료 혹은 아주 낮은 비용으로 누구든 접근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상적이고, 민주적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미술 작품 소장은 작품에 대한 공공의 접근이 상당한 수준으로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공공의 접근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고서도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이율배반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공유하면 할수록 작품의 부가가치가 높아진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작품에 대한 접근에 대한 혁명이라면,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작품의 소장과 판매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 줄 혁신이다. 미술시장 진입이라는 디지털 기반 미디어 작가들의 오랜 꿈을 실현시켜줄 꿈의 기술 블록체인 기반 NFT(Non Fungible Token) 아트에 미술계 전체가 흥분하고 있다.
지난 3월 11일, 255년 역사를 자랑하는 크리스티(Christie’s) 옥션 하우스의 장내가 술렁였다. 미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 실명: Mike Winkelman)의 디지털 콜라주 NFT 작품 <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를 둘러싼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1분이었다. 가상화폐 플랫폼 트론(Tron)의 설립자 저스틴 선(Justin Sun)이 제시한 2,500만 달러(한화 약 279억 3,750만 원) 입찰가에 NFT 펀드 메타퍼스(Metapurse)의 창립자 비네쉬 순다레산(Vignesh Sundaresan)이 “200만 달러 더”, “800만 달러 더”, “1,500만 달러 더”를 외치며 비딩에 뛰어들었다. 불과 8초를 남겨두고 순다레산은 가격을 6,000만 달러(한화 약 671억 1,600만 원)까지 끌어 올렸다. 선이 황급하게 7,000만 달러(한화 약 782억 2,500만 원)를 비딩했으나 시스템 오류로 거부되어 결국 최종 낙찰자는 인도 출신의 순다레산으로 확정됐다. 정통 미술계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비플이 제프 쿤스(Jeff Koon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에 이어 경매에서 판매된 세 번째로 비싼 살아있는 예술가로 등극한 순간이다. 순다레산은 인터뷰를 통해 “다른 작품이 이 작품을 이기기는 꽤 어려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13년이란 시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복제가 가능하고 기교는 극복이 가능하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해킹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이 바로 시간이다. 충분히 1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며 작품 구매 이유를 밝혔다. 암호 화폐 기반 예술이 주류 미술시장에 당당히 입성하는 6,900만 달러 신호탄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그러나 NFT 예술작품의 거래를 위해 얼마나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생태환경까지 파괴할 수 있을지 논하는 자리는 많지 않다. 비트코인(Bitcoin), 이더리움(Ethereum) 등 암호 화폐는 PoW(Proof of Work)로 알려진 합의 알고리즘을 사용하는데, 이 증명방식이 엄청난 컴퓨터 연산과 그에 따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실례로 이더리움 누적 환경 영향을 살펴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4) 2017년 5월 20일부터 2021년 4월 21일까지 이더리움 누적 환경 영향을 수치로 살펴보면, 전력 소모 37.17TWh(불가리아 연간 전력 소모량), 탄소 배출 17.64Mt CO2(과테말라 연간 탄소 배출량)를 기록하고 있다. 조금 더 쉽게 이더리움 단일 거래가 야기하는 평균 환경 영향으로 쪼개서 들여다보면, 전력 소모 77.02kWh(미국 일반 가정에서 이틀 반나절 사용하는 전력량), 탄소 배출 36.58kg CO2(유튜브 6,097시간 시청하는 탄소 배출)를 야기한다.
NFT 작가 한 명의 6개월간의 작품 거래가 야기한 탄소 배출이 160톤을 훌쩍 넘기는 일이 빈번하다. 그렇기에 이 같은 NFT 아트의 불편한 진실을 ryptoArt.wtf를 통해 공론화하며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던 디지털 아티스트 메모 악튼(Memo Akten)의 용기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에게 전례 없는 판로를 만들었고 그들의 작품을 모방과 카피에서 보호해줄 막강한 기술적 대안이자, 지속 가능한 수익을 가져다줄 매우 훌륭한 테크놀로지이지만 아직 보안해야 할 부분이 많다.
최근 건축가 크리스 프레히트(Chris Precht)는 NFT 기반 예술작품 판매를 포기했다.5) NFT 작품 3점을 거래하기 위해 자신이 20년 동안 쓸 전기를 소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NFT 아트를 두고 카지노 캐피탈리즘(Casino Capitalism)6)의 유혹에 빠질 것인지, 아니면 환경운동가의 험로를 걸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작가적 딜레마가 시작되었다. 착시를 일으키는 라이트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조니 르메르시(Joanie Lemercier) 역시 2년 전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석탄 채굴기와 정부 기관 건물에 프로젝션 레이저를 쏘며 화석연료 반대 시위에 힘을 더해 온 르메르시는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자기 자신의 에너지 사용은 얼마나 되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의 난방, 컴퓨터 작품 렌더링, 해외 출장 항공기 이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에너지 소비를 와트(watt)로 환산한 뒤 그는 매년 10%씩 절감하기로 결심했다.7) 그리고 최근까지 꽤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해오고 있었는데, 불과 몇 초 만에 오랜 에너지 절약과 탄소 배출 저감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의 2년간의 노력을 허망하게 무너뜨린 범인은 다름 아닌 르메르시 본인의 첫 번째 블록체인 작품이었다. 온라인 플랫폼 Nifty Gateway에서 실시한 옥션을 통해 불과 10초 만에 작품이 판매되었는데, NFT 아트의 탄소 배출 정보를 공유하는 Cryptoart.WTF8)에 따르면 르메르시의 해당 블록체인 작품은 8.7MW의 에너지를 소비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르메르시 스튜디오의 2년간의 전기사용량에 해당하며, 더 놀라운 것은 해당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재판매가 되면 추가로 1년 치, 2년 치 전기사용량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났음에도 지속적으로 원작자인 작가들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NFT의 달콤한 유혹의 이면에는 그만큼 많은 탄소 발자국이 남겨진다는 씁쓸한 현실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환경에 역기능하는 NFT 아트는 나쁜 것인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아내로 더 유명해진 캐나다 뮤지션 그라임즈(Grimes) 또한 그의 오빠인 디지털 아티스트 맥 부셰(Mac Boucher)와 협업한 NFT 콜렉션 ‘WarNymph’ 시리즈로 데뷔해 Nifty Gateway에서 580만 달러(한화 약 64억 8,150만 원) 상당의 작품을 판매를 기록했다.9) 흥미롭게도 작가가 수익금 일부를 탄소 배출 감축에 전념하는 NGO 단체 Carbon 180에 기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렇다고 이런 기부가 문제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본질은 얼토당토않은 탄소 배출량을 야기하는 알고리즘을 혁신하는 데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이더리움은 작업증명(Proof-of-Work, PoW) 알고리즘을 ‘Casper’라는 보다 에너지 효율적인 지분증명(Proof-of-Stake, PoS)으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한다.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 같은 알고리즘 변환은 환영할 만하다. 현재 이더리움은 대부분, 아니 여전히 거의 100%가 PoW 기반으로 거래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체 이더리움의 전력 소비량은 여러 국가의 한 해 에너지 소비량보다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이론은 가상화폐가 예술이 거주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을 확장했다는 사실엔 박수를 보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야기하는 환경에 대한 역기능은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본질은 특정 기업이나 국가 권력의 통제로부터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공익적 가치와 기준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새로운 거래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달라진 거래 환경에 최적화하기 위해 미학까지 수정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하루가 멀게 전해오는 가상화폐와 NFT 광풍 앞에 기존의 예술철학이 흔들리거나 침해받지 않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NFT 아트가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가치, 문화적 가치, 환경적 가치를 실천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줄 수 있는 생각과 실천을 반영할 수 있도록 미술계가 더 섬세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탄소 발자국에서 우주 쓰레기까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사회적 책임이 너무 버거운 현실이다.
글쓴이 이대형은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 CONNECT, BTS’(2020), ‘코리아 리서치 팰로우 10×10’(2018-2021),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한국관(2017)의 예술 감독을 역임했고,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로 글로벌 아트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총괄 기획했다. 2018년과 2019년 유럽연합 ‘STARTS Prize’ 심사위원을 맡은 바 있고 과학, 테크놀로지, 예술, 비즈니스의 융·복합 실험 프로젝트를 발굴하며 21세기 예술이 어디에서 어떻게 거주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각주]
1) 2020년 3월 29일 AOC에 실린 브뤼노 라투르의 원고 중 발췌: https://aoc.media/opinion/2020/03/29/imaginerles-gestes-barrieres-contre-le-retour-a-la-production-davant-crise ▶
2) http://ewastemonitor.info ▶
3) https://www.studioroosegaarde.net/project/space-waste-lab ▶
4) https://digiconomist.net/ethereum-energy-consumption ▶
5) https://youtu.be/9yopQq2DmwU ▶
6) 영국의 경제학자 수잔 스트레인지(Susan Strange)가 1986년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사용
7) https://www.wired.com/story/nfts-hot-effect-earth-climate ▶
8) CryptoArt.wtf은 가상화폐와 NFT 아트에서 사용하는 PoW(Proof-of-Work)의 에너지 소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 메모 악튼(Memo Akten)이 만든 플랫폼으로 NFT 기반 작품 거래 이면에 숨겨진 탄소 배출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지난 3월 악성 댓글에 시달리며 현재는 폐쇄되었다. http://cryptoart.wtf/#contract=0x3e4c19ea950f054618dc658e374a694a10548d11 ▶
9) https://cointelegraph.com/news/musician-grimes-debut-nft-auction-generates-5-8m-in-20-minutes ▶
이 컨텐츠는 퍼블릭아트 2021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사)한국화랑협회와 퍼블릭아트가 협약을 맺고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