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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사유, 다시 숲

한준호

도시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사람의 마음은 그보다 더 쉽게 닳아간다. 
 
도시정원 2507, 72.7×116.8cm(50M), Mixed media(Scratched) on canvas, 2025
 
그 회색빛 시간 속에 멈춰선 작가는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간다. 하나는 일상의 리듬을 따라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고, 다른 하나는 작가로서의 세계를 향해 천천히 박동한다. 한준호의 작업은 그 두 심장 사이, 현실과 내면의 경계에서 피어난다. 그의 화면은 덧칠이 아니라 긁어 냄의 행위로 완성된다. 오일파스텔로 색을 입히고, 블랙 락카로 덮은 뒤 그 어둠을 하나씩 긁어내며 빛을 찾아낸다. 이 행위는 단순한 회화의 기법이 아니라 반복되는 인내의 시간들을 통해 작가가 자신을 정화시키는 시간의 기록이다. 수만 번의 칼끝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가 아닌 생명이 피어나고, 그렇게 태어난 화면의 선들은 어둠을 찢고 나온 빛의 숨결처럼 진동하며, 생명의 리듬을 발산한다.
 
도시정원- 뉴비기닝 2510, 116.8x91cm(50F), Mixed media(Scratched) on canvas, 2025
 
한준호의 숲은 우리가 잃어버린 초록의 기억이다. 도시의 회색 빛 틈새에서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의 형상 Querencia, 그 Querencia시리즈 속 정원은 세상의 간섭 없이 오롯이 숨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로 작가는 그 안에 ‘쉼’의 미학을 심어 두고 있다. 밀집과 경쟁 속에 지친 도시의 나무들이 아니라, 충분한 거리를 두고 단정히 자라난 고요한 생명들이다. 그 나무들 사이를 산책하듯 시선을 거닐면 관객은 자신 안에 남아 있던 자연의 기억을 천천히 되찾게 된다. 그 빛은 자연을 찬미하는 오래된 기도의 잔향이며,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초록의 기억’을 부르는 노래다. 
 
뉴비기닝 2501, 116.8x91cm(50F), Mixed media(Scratched) on canvas, 2025
 
〈New Beginning〉, 〈Querencia〉,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일련의 여정은 한준호가 오랜 시간 이어온 자신의 궤적인 셈이다. 그에게 자연은 관계이며,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비추는 순환과 마주봄의 의미이다. 그의 화면 속에서 빛과 어둠, 고요와 진동은 공존하며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연결’의 의미를 일깨운다. 
 
모든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2504, 53.0×80.3cm(25M), Mixed media(Scratched) on canvas, 2025
 
이번 전시는 그가 걸어온 여정의 또 다른 변주이자 확장이다. 
 
뉴비기닝-정돈된 수풀 2508, 60.6×90.9cm(30M), Mixed media(Scratched) on canvas, 2025
 
그동안 이어온 〈정원 시리즈〉와 〈New Beginning〉 시리즈를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신작들이 이번 전시의 중심에 놓인다. 작가는 회화를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던졌던 세 가지 질문 ‘무엇을, 어떻게, 왜 그리는가’ 가운데, 이번에는 특히 ‘어떻게’라는 물음에 집중했다. 이는 단순히 표현의 기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다시 사유하는 시도이다. 빛을 입히는 대신, 어둠을 벗겨내며 드러나는 이미지들 속에서 한준호는 ‘그리는 행위’ 그 자체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즉 그가 지나온 시간의 응결체이자, 인간과 자연, 존재와 존재를 잇는 보이지 않는 빛의 실을 다시 직조하는 자리다.  도시의 어둠 속에서도 그는 오늘도 칼끝으로 빛을 긋는다. 
 
한걸음더높이 No.3, 130.3×130.3cm(100M), Mixed media(Scratched) on canvas, 2022
 
오늘, 우리는 한준호의 숲 앞에 선다. 그 숲은 침묵으로 말한다. “모든 생명은 서로를 닮아 있다.” 라고, 그 조용한 진실이, 이번 신작들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안의 초록을 깨운다.
 
 
 – 갤러리나우 대표 이순심
 
갤러리나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52길 16
02-725-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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