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 GALLERY WOONG
2021. 1. 18 – 12. 8
남기호
‘남기호의 회화조각: 단순과 보편 안에 녹아든 삶과 예술의 사유’
남기호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오브제를 그리거나 만들고 다듬어 붙여 꼴라주한 조형작업을 주로 해 왔다. 이번 개인전은 두꺼운 종이에 이미지를 음각으로 처리한 유기적인 형태를 나무판에 덧댄 평면-입체(회화-조각)의 최근 작품들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들은 단순한 형태와 색채,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많은 의미와 상징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남기호는 오랜 해외생활을 통해 경험하고 추구해 왔던 갖가지 예술의 방식과 삶의 태도를 담아내며 수려한 테크닉으로 표현해온 이전 작업들과는 달리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에서는 시각예술의 원초적이며 본질적인 조형적 관계를 더욱 부각시킨다.
전통회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인물, 정물, 풍경 이미지들은 입체의 두께감과 함께 실루엣으로 표현되고 대신 배경의 공간은 격자무늬와 평면만으로 회화의 환영을 그려내어 하나의 작업은 조각과 회화의 영역을 아우르며 새로운 시지각의 감각을 제공한다. 격자무늬는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의 사각 터치를 어긋나게 칠하여 반복하여 그린 것으로 음과 양, 0과 1의 디지털 세계, 또는 몰아 부치는 사회적 환경에서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중독되어가는 우리 일상의 놀이판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격자무늬는 포토샵(Photoshop)의 배경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단위를 이루는 사각형태가 조금씩 비틀리면서 변형되고 유기적인 형태의 화면 가장자리와 함께 현실에서 어긋난 수많은 다른 공간을 암시한다. 인류는 현재 코로나19의 환경으로 디지털의 기술 세계가 생각보다 빠르게 생활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공현실(artificial reality), 메타버스(Metaverse), NFT(Non-Fongible Token) 등 가상세계의 새로운 용어들이 현실의 언어를 대체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공위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가는 막대기 도구에 한 팔에 기대어 서있는 보라색의 인물과 한발을 공위에 올리고 머리, 손, 어깨에 3개의 공으로 곡예를 하는 인물은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다른 공간으로 미끄러져 버리는 환경 안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인물은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인의 실루엣 형상을 하고 있다. 특별한 대상이 아닌 현대인의 보편성과 익명성을 상징하는 기호와 같은 인물은 화면 전체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실루엣 인물은 인간의 희, 노, 애, 락, 두려움, 공포 등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불확실하고 비가시적인 공간에서도 여전히 균형을 잡고 적응하려는 긴장감만 도출시킨다.
남기호의 또 다른 작업에서는 바깥, 중독이 반복된 현실이 향하는 미래, 가상공간의 의미를 담은 배경을 가진 실루엣 인물 안에 풍경을 담아내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격자무늬 배경의 위태로운 여정 안에서 혼자 혹은 둘이 타고 있는 조각배의 기호들에 둘러싸여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다와 수평선을 이루는 하늘이 그려진 인물은 자신을 손으로 가리킨다. 자연, 인간, 사회, 기술은 이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 쪽 만으로는 살수가 없고 환경과 인간은 서로 더욱 밀착되고 있다는 것을 현재 우리의 팬더믹 상황으로 깨닫는다. 돌봄과 희생이 그 어느 시대보다 필요하며 서로를 향해 위하는 마음과 더불어 열리고 개방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의 색채가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 그려진 생각하며 걷는 인물 역시 주위의 문을 통해 계단을 오르거나 내리는 모습과 빈 계단이란 상징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여도 여전히 소소한 일상부터 이상, 신념, 꿈을 향해 매 순간의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 본연의 고민을 보게 한다.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남기호는 보편성과 익명성의 친숙한 이미지와 사유로서의 인간 일상과 삶에 대해 표현했다면 여전히 일관된 세계관으로 정물시리즈도 미술 안에서 매체의 보편성안에서 미학적 특수성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그의 정물시리즈는 서양미술사에서 본 듯한 정물의 형태를 격자무늬 배경 안에서 음각하고 색의 실루엣만으로 표현했다. 묘사 없이 비어 있는 이미지이지만 화면을 꽉 채운 과일바구니, 화병, 술병의 실루엣은 서로 간의 관계 안에서 긴장감과 조화를 이룬다. 이미 미술사에서 위치를 인정받은 회화의 정물, 인물, 풍경은 권위의 기호로 작동되고 대상의 상징적 가치만으로 위상을 드러내는 오늘의 미술에서 그는 색, 구성, 일루젼 등의 근원적 조형성만으로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의 장면을 연상시키는 푸른색의 실루엣 인물은 자유의 상징으로 새겨져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가 사용하는 색채는 자연의 색이 아니라 인공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이미 기호로 사용되고 있어 그 상징성만으로 회화와 조각의 역사성안에서 이 시대의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고찰을 공감하게 한다.
그의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정면에서 보면 회화성을 획득하고 조금만 움직이면 조각성을 보여주는 결과를 얻기 위해 두꺼운 종이를 선택해 자르고, 두드리고, 깎고, 갈아내어 레진(Resin)으로 단단하게 굳힌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여 평평하게 만들어 아크릴 채색으로 마무리한다. 지난작업에 대해 오광수는 일정하게 끝난 시간의 박제, 유물의 기념화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콜라주를 사용하였다고 하고 김영호는 새김, 각인, 채움, 진열의 의미들을 발산하는 시각적 장치들이 기억의 파편들을 효과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작업을 했다고 평한다. 그러나 이런 수십 년 간의 표현방식은 이제 단순하게 절제된 기법과 보편적 형태로서 은유된다. 그의 수행성과 성찰은 그의 작업 안에 스며들어가 단순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많은 역사의 층위를 안고 있는 현대인들의 풍경, 인물, 정물화를 그린다. 그 어느 시대보다 정보와 경험이 많은 오늘의 보편성 안에는 실패, 좌절, 지혜, 성찰이 뒤섞여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계에서의 가능성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남기호의 작업은 인류의 공통적 공감대, 인간이라는 주체에 대한 그의 삶과 예술의 경험이 모두 녹아들어간 근본적인 사유에 대해 걸 맞는 시대의 단순한 조형언어를 구조화하여 성찰해 보는 예술이다.
김미진(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기획&비평)
웅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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