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 Gana Art
단순한 선과 원초적인 색으로 화면을 채우는 생명의 화가, 노은님(1946~), 그는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의 정교수로 임용되어 20여 년간 독일 미술 교육에 기여한 한편, 바우하우스,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도큐멘타, 국제 평화 비엔날레, 제5회 국제 종이 비엔날레 등 유수의 전시에 초대된 바 있는 독일 미술계에 확실한 족적을 남긴 작가이다. 또한 한국 작가로서는 드물게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었으며, 2019년 11월에는 독일 미헬슈타트의 시립미술관에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을 개관한 유일한 비독일 출생의 작가임에도 그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상반된다. 노은님은 여전히 ‘파독 간호사 출신의 작가’ 또는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물고기를 그리는 화가’와 같은 이름으로 국내에 이름이 알려졌으며, 그에 대한 국내의 미술사적 연구 또한 미비하다. 특히 파독 간호사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작가에게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여성이 외국에서 유학을 하는 것이 드물었던 1970년대 함부르크 국립 미술대학에서 정규 미술교육을 받고, 독일 유명 국립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는 사실은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작가로서의 50여 년의 시간보다도 간호사로서의 채 몇 년이 되지 않는 기간이 주목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전업 화가로서 살아온 나날들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길지라도, 대중은 여전히 여성 작가에 어머니, 간호사 등 돌봄의 역할을 투영시키곤 한다. 이제 그들을 ‘여성’ 작가가 아닌 한 명의 작가로서 평가해야 할 때라는 인식에서 본고는 시작되었다.
자연(Natur)
길가에 모아둔 낙엽 더미 안에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마치 나뭇잎과 어우러져 하나의 생명체라도 된 듯 그 안에서 숨을 내뱉고 들이쉰다. 노은님의 예술에 대한 생각과 작업 과정을 기록한 바바라 쿠젠베르그(Barbara Kusenberg)의 다큐멘터리 영화,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1989)는 이와 같은 퍼포먼스로 시작된다. 그 후 작가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태초에 이 땅에 한 인간이 언덕에 앉아 있다가 심심해졌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사람 한 명을 빚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사람을 한 명 더 빚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완성해 놓고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왜 사람을 만들었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고, 또,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많이 울어 강이 생겨났고 이 강이 바다가 되었습니다. 하늘, 말해 보세요, 당신이 만물의 창조자입니까?” 그리고 갯벌에서 흙으로 남자와 여자, 두 명의 사람 형상을 빚는 작가의 모습이 비친다.
노은님은 한지에 그린 아크릴화, 설치미술, 퍼포먼스, 테라코타 조각, 심지어는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기까지 매체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여 왔는데, 그중에서도 197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에 그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자연을 구성하는 힘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담고 있다. 쿠젠베르그의 영화 속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인디언의 창조설화를 닮은 내레이션을 배경으로 흙으로써 형상을 빚어내는 창조주로서, 그리고 자연의 신비를 밝히고자 하는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와 같은 위치 설정은 그림을 그려 생계를 잇는 것이 가능하냐며 의구심을 던진 그의 언니에게 했던 말에서도 자명하다. “그림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팔아 사는 것…독일 사람들이 워낙 동물들을 좋아해 내가 그린 새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사 가는 것” 조은정, 「노은님과 장욱진: 숭고를 넘는 ‘단순’의 회화적 언어」, 『SIMPLE 2018 장욱진·노은님』 전시도록,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2018, 18쪽
이라는 발언은 작품은 그가 창조한 하나의 생명이라는 작가의 인식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작가는 함부르크의 한 공원에서 나뭇가지와 종이로 만든 나뭇잎을 실제의 나무에 매단다든가, 합판으로 만든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가는 등의 퍼포먼스를 했다. 실제의 개들이 모여 있는 공원에서 했던 퍼포먼스 도중, 개들은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합판으로 만들어진 개의 냄새를 맡고는 동족이 아님을 확인하고 뒤돌아섰다. 예술과 자연의 경계를 보여준 이 퍼포먼스에서 그는 그 사이를 넘나드는 예술가로서 자리한다. 또한 쿠젠베르그의 영화 속에서 노은님은 퍼포머들에게 비늘, 나뭇잎, 날개 등을 붙여 물고기-인간, 나무-인간, 새-인간으로 변모시켰다. 인간과 자연의 결합을 시도한 이 퍼포먼스를 통해 그는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을 내비친다. 이와 같은 퍼포먼스들은 노은님의 작업의 근간이 ‘자연’에 있으며 이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 그가 고뇌해왔음을 보여주는 예다. 초기 드로잉 작품에서도 자연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 Winter Erode >에는 겨울이 되면 나뭇잎들이 추위를 피해 땅 밑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발상이, <3마리의 새들의 대화>(1978)에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기호로써 단순화시킨 기발함이 담겨있다. 이와 같이 자연을 탐구하고 이를 시각화한 그의 작품은 내용에 있어 크게 두 가지의 특징, 힘(Kraft)과 시(Poesie)로 설명할 수 있다.
힘(Kraft)
노은님은 함부르크 항구 근처의 시립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큰 배를 항구에 정박시키기 위해 작은 배가 밧줄로 이를 끌어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놀라운 광경은 큰 배를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작은 배에서 나오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그리고 그러한 힘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작가의 일화는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우주를 구성하는 힘,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의문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의 대작 회화들에 여실히 드러난다. <생명의 시초>(1984)는 우주의 시작, 즉 태초란 이러했을 것이라는 그의 상상력이 담긴 작품으로, 200호의 대형 화면을 가득 채운 화살표들은 각각의 방향으로 흐르는 힘의 양상을 표현한 것이다. 여러 갈래로 제각기 흩어져 있는 힘의 흐름은 서로 부딪히고 교류한다. 그리고 그러한 충돌 속에서 우주의 만물, 그가 그려내는 생명체들이 발생했을 것이다. “점을 찍으면 그 점이 선이 되고 선이 원이 됩니다. 이것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자연은 내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순환합니다”라는 작가의 발언은 이 그림에 대한 해설과도 같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연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를 구성하는 힘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화두로 삼아 그만의 작업 방식을 찾아나갔다.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점은 그의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형요소이다. 작가는 특유의 과감한 필획과 원색에 가까운 총천연색들로 고양이, 물고기, 새와 꽃 등의 자연물을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이들에는 모두 점이 찍혀 있다. 이는 생명의 기운을 시각화한 것으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점은 곧 눈(目)이다. 그는 어느 날 수족관에서 장님 물고기를 보고, 자신의 그림 속 생명체들에 눈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후 작가는 눈을 그려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했고, 이러한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노은님이 사랑해 마지않는 자연물들로 재탄생했다. 작가가 자신의 옷과 신발에 점을 찍고 이를 입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의 행동으로, 삶을 미술에 가까이, 그리고 생명력이 충만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치 화룡점정의 순간과 같이 점을 찍어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는데, 이를 이용해 그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자연의 형상을 환원시킨다. 단 한 번의 붓질로 완성된 <뛰는 동물>(1984), 어둠 속 동물들의 연회를 그린 듯한 <밤중에>(1990)와 같은 회화 속의 생명체들은 단순하고 거친 선들로 그려졌지만, 일필휘지의 붓놀림이 만들어 낸 원시적인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노은님은 이러한 형태의 단순화에 대하여 원시 미술과의 유사성을 언급한 바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오래된 미술관을 다니며 고대인들이 남긴 벽화와 토기를 보면 깜짝 놀라요. 살아남은 흔적들이 어찌 그리 똑같은지…그래서 제 그림의 형상은 점점 단순해지고 원시적으로 돼요” 김지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동물원 같던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평생 자산 됐다”, 조선일보, 2018년 7월 28일 자 기사
이외에도 동굴벽화 명소들의 엽서를 모아 만든 책, Art on the Rocks: Postcard Book (1993)이 노은님의 서가에 꽂혀있다는 사실과 그 책의 표지에 나오는 동굴 벽화 속 손도장과 같이 작가 역시 작품에 손자국을 찍고는 한다는 사실은 원시 미술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방증한다. 원시인들이 바라본 모습과 같이 가장 직접적이면서 근원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해석함으로써 노은님은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을 작품으로 옮기는 것이다.
시(Poesie)
“이 손님은 이 공간에 떠다니면서 내가 나 자신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내가 모든 생각을 잊어버리고 완전히 작업에만 몰두해 있다가,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을 때, 뭔가 살아있는 것이 불쑥 나타납니다. 내가 아무런 생각도 갖지 않는 순간에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 손님은 금방 사라집니다. 이는 임신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손님은 그때까지 나와 함께 있는 겁니다”
쿠젠베르그와의 인터뷰 중, 노은님은 작품을 그리는 순간 “영적인 손님”이 찾아와 마치 잉태의 과정과도 같이 작품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그 흔한 밑그림조차 없이, 그의 작품은 직관적인 자아가 지배하는 순간에 그려진다. 그는 바닥에 커다란 한지, 또는 여러 개의 캔버스 천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붓, 빗자루, 때로는 걸레 등 손에 잡히는 도구를 즉흥적으로 집어 들고 “영적인 손님”의 손을 빌려 긋고, 칠하고, 던지고, 찍어 누르는 격정적인 과정으로 작품을 출산한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함부르크 국립 미술대학에서 그가 사사한 한스 티만(Hans Thiemann, 1910~), 카이 수덱(Kai Sudeck, 1928~1995)으로부터 받은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은 물론 수묵화의 갈필에 가까운 붓질과 과감한 여백으로 인해 동양의 정신을 연상시킨다. 이를 일컬어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인 아넬리 폴렌(Annelie Pohlen, 1944~)은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 극찬했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인 그의 작품은 퍼포먼스에 가까운 신체의 움직임이 그대로 담긴, 몸으로 쓴 한 편의 시다. 때로는 종이 위를 밟고 다니고, 붉은 물감에 손을 담가 화면에 찍는가 하면, 흙을 주물러 손자국을 그대로 남기는, 즉흥적이고도 원초적인 행위의 집적이다. 이로써 그려진 새이면서 물고기와도 같은 불가사의한 암시들이 압축된 반추상의 형상과 자유롭게 남겨진 화면의 여백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구와도 같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담아 즉흥적으로 화폭에 써 내려간 노은님의 ‘그림으로 그려진 시’는 그만의 소우주에 다름없는 것이다.
“참다운 예술은 진정한 순수함을 원한다. 모든 복잡함이나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아 있을 때 예술은 살아난다” 이영란, “노은님, 그 끝없는 절망감에..붉은 새를 끌어안은 나”, 헤럴드경제, 2011년 1월 6일 자 기사
는 작가의 말처럼, 노은님의 작품은 단순하고 천진하며 소박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진실되다. 커다란 한지 위에 위아래 구분도 없이 자유롭게 그려낸 그의 그림 속 단순한 선으로 그려낸 자연의 형태에는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고, 자유로운 붓질이 남긴 여백에는 시적 함유가 가득하다. 이처럼 자연을 화두로 삼아 지난 50년간 많은 족적을 남겨온 노은님에 대한 국내의 연구가 미비함은 ‘파독 간호사’라는 눈에 띄게 독특한 이력과 뒤늦게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 그리고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당대 유럽과 한국의 주류 미술에 편입하지 않고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확장시켜온 그에 대한 후속의 연구들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국 현대미술사의 비워진 페이지를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박민혜(1988∼),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가나아트갤러리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