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 - 12. 20 | [VISIT] OCI Museum of Art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은 오는 11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박그림(Grim Park,1987- )과 조현익(Hyunik Cho, 1978- )의 초대 이인전 《잘 살고 있는 나를 죄인으로 만들기도 하며》展을 개최한다.
박그림, 심호도_춘수 (尋虎圖_春秀), 비단에 담채, 250×340㎝, 2022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회가 정립한 제도와 이분법적 사고는 결코 복잡한 인생의 모든 타선을 아우르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세상이 만들어낸 기준과 타인의 잣대에 의해 우리는 누구나 무해한 죄인이 될 때를 경험한다.
조현익, 빛, 나를 베다 (Flash-S-101988), 철판에 흑연, 아크릴 및 유채, 스크래치, 전사기법, 자동차용 페인트, 나무패널, 305×405㎝, 2010
이번 이인전에서는 개인적인 서사를 종교화의 형식에 담아 풀어내는 박그림, 조현익의 작품을 동시에 조망하며 창작 행위를 통해 생의 방향을 확인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실현하는 두 작가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들여다본다.
박그림, 심호도_월광, 일광 (尋虎圖_月光, 日光), 비단에 담채, 각 250×122㎝, 2022
전시의 제목인 《잘 살고 있는 나를 죄인으로 만들기도 하며》는 조현익 작가의 2016년 작가노트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어느 날 ‘믿음의 도리’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포교용 전단을 받은 그는 ‘믿음’과 ‘도리’라는 단어가 갖는 ‘책임과 강제’, ‘포용과 폭력’의 상반된 개념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특정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믿음이 없는 자, 혹은 도리를 다 하지 못한 자, 결국 ‘죄인’이 되어버리는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믿음과 도리를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번 전시의 출품작에서 그 해답을 엿본다. 겉보기에는 다른 위치와 방향으로 보이는 박그림, 조현익의 삶과 작품도 같이 보니 분명 통하는 면이 있다.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나와 내 인생을 섬긴다.
박그림, 심호도_간택, 회(尋虎圖_柬擇, 回), 비단에 담채, 170×230㎝, 2023
박그림은 불화의 형식을 차용하여 퀴어 문화를 드러낸다. 그의 〈심호도(尋虎圖)〉연작은 불교에서 소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내용의 종교화 ‘심우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소 대신 자신을 대입한 호랑이가 등장한다. 단군신화 속 미완의 존재인 호랑이를 성소수자인 본인의 정체성과 연계하여, 인간관계로부터 얻은 상처와 극복을 담아내었다.
반면 조현익은 성화 형태를 빌린다. 그의 〈이콘〉, 〈네오 이콘〉프로젝트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화면 중앙에 위치한 성상과 머리 뒤 금빛 광배가 특징인 기독교의 이콘을 본 떠 제작한 연작으로, 일상 속의 순간들을 화폭에 담아내어 비종교적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가족과 육아의 풍경, 즉 평범한 하루의 기념비적 측면과 숭고함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현익, 믿음의 도리_가족사진, 캔버스에 유채, 인테리어용 벽지 콜라주, 130.3×193.9㎝, 2017
티 한 점 없이 수려하고 매끈한 필선과 잔잔한 호수에 비친 달빛을 연상시키는 곱고 나지막한 색채를 사용하는 박그림, 유화 물감 냄새 짙게 배어 있는 정통 캔버스 회화부터 4m가 넘는 대형 철판 작업까지 재료와 크기와 구애받지 않는 과감하고 터프한 작업을 선보이는 조현익 작품의 공통분모 속 보이는 형태의 차이 또한 흥미롭다. 그러나 결국 두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큰 핵심은, 그들에게 창작은 각자의 삶에 대한 신념과 믿음을 선명하게 하는 수행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넓은 세상의 수많은 인생 중 하나뿐인 나의 삶. 결국 ‘나답게 사는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 아닐까.
《잘 살고 있는 나를 죄인으로 만들기도 하며》전시 전경
다양성에 대한 용인의 역치를 넓혀주는 것이 미술의 주요한 역할임을 상기해 볼 때, 두 작가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의 삶과 자유, 선택의 권리, 사회의 다원화를 인정하는 태도를 일깨운다. 생의 스펙트럼을 존중하는 두 작가의 작품이 나의 하루를, 삶 전체를 회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OCI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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