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S] ARTIST INSIDE 2022 | Seobo Park
ARTIST INSIDE 2022 | 박서보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한국 단색화계의 거장 박서보는 올해 나이 아흔 하나라는 세월을 거스르기라도 하겠다는 듯 열정과 힘에 넘쳤다.
그에게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온 몸과 정신을 불사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인생도 작업도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라며 “여든 넘어 뜬 나를 보며 젊은 작가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을 때 인스타그램에 “받고 싶은 상이었는데 진작 주셨어야죠, 오래 자랑하고 싶은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쓴 게 인상적이었다.
안타깝다. 2009년에 뇌경색이 와서 지금도 한쪽을 잘 못 쓴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지 모른다. 내가 80까지 그림이 전혀 안 팔렸다. 2019년에 독일 화랑에서 전시하고 나오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박서보 아니냐’ 아는 체를 하면서 사진들을 찍고 사인을 해 달라 하는데 태어나 처음 받은 대접이었다. 너무 신기하고 기뻤다. 내 팔자가 갑자기 변한 것 같아 나도 신기했다. (웃음)
당대의 영광을 누리고 계신데.
나는 서글픈 세월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다. 후배들이 잘 나갈 때 빛을 보지 못하는 선배 심정이 어떨지 짐작도 못할 거다. 1980년에 현대화랑서 전람회 할 때 내 그림이 100호 하나에 300만 원인데도 안 팔렸다. ‘저것도 그림이냐’ 소리 숱하게 들었다. 지금 내 그림은 땀과 그리움과 원한의 뒤범벅이다.
작가들이 “너무 힘들어요. 저는 언제나 뜰까요” 하면 뭐라고 답해주시겠나.
열심히 하라고, 극복하라고 그것밖에 할 말이 없다. 내 인생도 누구에게 한 번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투쟁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단색화라는 것도 내가 이론 체계를 만들어가면서 세운 거다. 그림은 수신을 위한 표현의 도구다. 평생 변함이 없는 내 생각이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나.
노(No). 누구에게나 반드시 올 거고 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묻힐 곳도 정했다.
묘비명도?
예스(Yes).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국문과 영문으로 미리 새겼다.
요즘 사람들은 마지막에 병든 기간이 오래될까 봐 두려워한다.
난 이미 병들어 있다.
지난 삶에서 제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 일찍 세상에 알려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종교는?
불교.
윤회를 믿나.
만약 그럴 수 있으면 또 화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운명을 믿나.
있는 거 같다. 내가 여든이 넘어 뜰 줄 누가 알았겠나. (웃음)
열심히 투쟁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타고난 기질이 크지 않을까.
허무하지 않은가.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
나는 사라져도 남은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고 싶다. 나처럼 힘들게 어렵게 산 사람도 있다는 것, 그래도 열심히 하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걸 보고 사람들이 힘과 즐거움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단색화가 엄청 주목받으면서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이 알려졌다. 나를 딛고 한국 화가들이 세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올해 키아프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계가 대한민국, 그리고 서울을 주목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행사가 되고 있다. 아시아 미술의 중심이 서울로 이동하고 있다는 건 나도 많이 실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힘이고 화랑들의 헌신적인 열정과 노력의 결실이다.
강혜승 인터뷰, Kiaf 2022 카탈로그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