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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흔적, 시간의 흐름을 화폭에 담고 싶다

ARTIST INSIDE 2022 | 장광범

시간의 흔적, 시간의 흐름을 화폭에 담고 싶다

장광범 작가는 캔버스에 시간을 축적한다.
색을 쌓고 또 벗긴 물감층은 산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물과 불로도 보인다.
자연을 닮은 시간의 결이다.
그 풍경은 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의 단면일 수도 있다.
반들반들한 화면은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문고리, 발길이 닿아 매끄러워진 돌조각을 닮았다.
작가는 “일상의 삶에서 천천히 연마된 시간의 질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찰나가 주목되는 요즘이지만, 작가는 반복 행위를 통해 흘러가는 시간을 환기시킨다.

 

2007년부터 프랑스에서 작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 언뜻 산수화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중첩된 물감 층이 선으로 드러나니 산수화가 연상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등산을 좋아했어요. 한국엔 워낙 산이 많잖아요.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 순간 산과 하나 되는 느낌을 받아요. 산도 나와 같이 숨을 쉬는구나. 그런 경험이 산의 형상을 닮은 작품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고 해서 굳이 한국적 정서를 의도하지는 않았어요. 흔히 동양과 서양, 이분법으로 생각하지만 유럽의 현대 미술에도 명상적인 작품이 많아요. 동서양의 구분이 점점 더 무의미해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켜켜이 쌓인 물감 층이 나무의 나이테 같기도 한데요.

유학 초기에 미술학교 아틀리에를 구경 다니곤 했어요. 그러다 구멍 난 벽 귀퉁이를 발견했는데, 파인 부분이 나이테 형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친구가 설명하기를, 매년 두 번씩 학생들의 작품전이 열리는 공간인데 100년이나 됐다는 거죠. 평상시엔 작업실로 쓰이며 온갖 페인트가 묻어 있다가 전시회가 열리면 벽 전체가 깨끗하게 흰색으로 칠해져요. 그렇게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페인트가 쌓고 쌓인 겁니다. 그때 알았죠. 자연뿐만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도 시각적으로 측정 가능한 시간성이 있다는 걸요. 당시 영감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결을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캔버스를 눕혀 천의 올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크릴 물감을 10회 이상 바르죠. 그 위에 여러 색을 올리는데, 한 색이 완전히 자연 건조된 다음에 새로운 색을 올려요. 건조와 채색을 100회 정도 반복합니다. 그렇게 쌓아놓은 물감 층을 그라인더로 걷어냅니다. 기법에 따라 형태가 달리 나타나게 되죠.

작업실에 쌓인 물감층은 마치 퇴적층 같습니다만, 캔버스에서는 반들반들한 평면으로 연출하는 의도가 있을까요?

프랑스에는 파베(pavé)라 불리는 블록이 도로에 깔려 있어요. 기원전 갈로·로만(Gallo-Roman) 시대부터 깔린 큐브 형태의 돌인데,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는 아스팔트로 덮여있죠. 가끔 아스팔트가 떨어져 나간 부분에서 밑에 깔린 파베를 볼 수 있어요. 더 이상 거칠고 네모진 돌이 아니라 마모돼 둥그스름하고 부드럽게 닳아 있죠. 일상 삶에서 연마된 표면의 질감, 그 시간의 질감을 제 작품에서도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강혜승 인터뷰, Kiaf 2022 카탈로그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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