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s] Hakgojae Gallery
Another World
이진명 | 미술비평ㆍ미학ㆍ동양학
1. 범용(凡庸)의 세계(banal world)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차원
시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는 “철학은 본래 향수이며, 어디에서나 고향을 만들려는 충동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술 역시 향수에 대한 충동에서 태어난다. 고향만큼 인간에게 풍부한 사유를 제공하는 대상도 흔치 않다. 고향은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듯이, 인간의 사유와 인생은 고향에서 출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펼쳐지곤 한다. 우리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 반대로 고향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처지에서, 고향을 포기해야만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인간형도 있다. 전자의 모델을 우리는 호메로스(Hómēros, 928B.C.-?)의 오디세우스에서 찾을 수 있다. 후자의 모델은 성서에서 등장하는 아브라함(Abraham)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이티카로 돌아가려 한다. 그 과정에서 영원한 삶과 재물, 권력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유혹, 인간을 통째로 먹어 치우는 괴물 폴리펨의 위협, 로토스라는 환각제, 사람들이 돼지로 바뀌는 키르케의 섬, 아름다운 노래가 취하게 만드는 세이렌 섬 등의 모든 환란을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인을 구출하고 가정을 다시 꾸리게 된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을 따라서 고향과 가족들, 친구들을 떠났다. 고향은 자신을 지켜주는 공동체이다.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불이다. 익숙하며 편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을 따른다. 안전하지 못한 곳을 향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신을 완전히 신뢰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모든 결과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고독이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찢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향이라는 개념 자체에 인정(人情)과 베풂, 나눔, 공감 등 토대적 정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은 아브라함에게 외동아들 이삭(Isaac)을 희생시키라고 명령했을 때, 아브라함의 자아는 절대적 고독에서 존재의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절대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아의 이 절대적 죽음의 경험은 절대적 무(absolute nothing)를 확인한 순간이다.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삶은 절대적 무의 확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공(空, emptiness)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공(空)으로부터 오히려 가득 참(fullness)이 현현된다. 나와 모든 사물이 비교와 가치판단의 득실로부터 초월되기 때문이다. 이때 나와 세계는 하나가 되며, 그렇기 때문에 충만 속에 침잠될 수 있다.
정영주(鄭英胄, 1970-) 작가의 세계는 절대적 고독에서 절대적 무를 체험하면서 발현되었다. 작가의 세계는 절대적 무에서 가득 찬 충만을 완성했다는 면에서 아브라함의 역설과 비슷하며, 고향을 떠나서 고향의 고귀한 의미를 얻고 회귀했다는 면에서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닮았다. 따라서 우리는 정영주 작가의 작품에서 아브라함의 고독을 발견하게 되며, 동시에 오디세우스의 용기와 마주하게 된다.
정영주 작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부산에서 보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프랑스로 떠났다. 베르사유(Versailles)에서 수학했다. 프랑스에서 작품을 인정받았으며 작가생활은 안정되었지만, 1997년 뉴욕으로 이주해 새로운 환경에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국제화단의 생기를 주도하는 본거지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오랜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작가로서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시점에서 불운이 거듭되었다. 1998년 작가의 개인적 현실은 국가적 환란을 비껴가지 못했다. 당시 작가가 천착했던 구성주의적 추상회화도 아직 완결점에 이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곡절로 점철된 여정을 마무리하며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귀국은 진정한 귀향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절대적 죽음을 아직 맞이하지 않았거니와 오디세우스가 실현했던 페넬로페의 구출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영주 작가는 구성주의 회화, 추상표현주의, 숭고주의 계열의 회화를 두루 섭렵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진정한 자기를 찾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오디세우스에게 페넬로페의 구출이 지상의 과제였던 것처럼, 예술가에게 자기만의 회화형식과 이야기를 찾는 것이 절대적 목표가 된다. 이 목표를 성취한 작가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예술가는 자기정체성(self-identification)의 확립에서 존재 이유와 근원적 생명을 담보할 수 있다.
자기정체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위기(crisis)로부터 찾아온다. 위기는 나를 극단으로 내몰며, 극단 속에서 나는 타자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위기(crisis), 구별(discrimination), 비판(criticism), 기준(criterion), 죄과(罪過, crimen)는 모두 한 뿌리에서 비롯된다. 이 단어들은 모두 구분 짓는다(to differentiate)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영주 작가는 2000년대 초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림은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운신할 수 있는 돈마저 없었다. 지인은 하나둘 떠나갔으며, 남은 것은 힘없는 시선 하나밖에 없었다. 작가는 이때 스스로 물었다. “살아서 뭐하나?”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는 절박한 질문 속에서 실존의 의미가 펼쳐진다. 이때 나는 범용한 사람과 구분된다. 자기비판(self-criticism)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승격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모든 기준(criteria)을 찾아 헤매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게 된다. 어떠한 기준에 자기를 투사해도 대답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급기야 나 이외의 모든 타자를 비난하게 되며, 나는 타자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범용한 세계(a banal world)에서 이러한 행위와 질문의 과정은 죄과(crimen)에 해당한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another world), 즉 예술세계(art world)에서 이러한 행위와 질문은 죄과가 아니라 반대로 신화(myth)가 된다.
정영주 작가는,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았던 심정 속에서 보내던 어느 날, 도심을 배회하다 거대한 고층건물들 속에 에워싸여 있는 몇 개의 조그맣고 퇴락한 집들을 발견했다. 낡은 슬레이트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기와지붕에 부식된 대문, 금 간 벽이며 침울하게 가라앉는 듯이 하는 축대와 이끼 낀 지반이 작가의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한 빌딩과 대조되어 더욱 초라하게 보이는 집들이 작가 자신과 동일시되었다. 유년기에 부산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풍경이기도 했다. 작가는 “너희들은 어찌 그렇게도 나 같은 거니?”라며 몇 번이고 되뇌었다. 2008년 무렵이었다. 그리고 「도시풍경」 연작을 그렸다. 위용 있게 상승하는 수직적 이미지의 고층건물과는 대조적으로 수평으로 서로를 기대며 겨우 버티고 있는 집들의 그림이다. 위용 있는 빌딩에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사람들의 활력의 의미를 불어넣었고, 초라한 집에는 작가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 동시에 전자에 미술사에서 빛나는 작품들의 이야기를 위탁했고, 후자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예술의 기미(機微)를 예견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빌딩을 서서히 삭제해서 갔고 퇴락해가는 집들로 가득 찬, 너무 새로워서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계(異界)로서의 풍경회화의 세계를 개진했다.
예술의 길은, 그리고 인간의 사유와 인생은 고향에서 출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펼쳐지곤 한다. 정영주 작가는 고향에 대한 두 가지 모델 중에 아브라함의 모델을 택하며 고향을 떠났다. 프랑스에서 서구 사조와 사상을 익혔다. 그리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을 에돌아서 한발씩 겨우 내디디며 어렵게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은 결론을 말해주었다. 자신의 근원을 속이면서 얻는 것은 허무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작가는 생각했다. “내게 가장 익숙한 그것이 진리이리라.”
작가에게 아브라함의 신은 서구의 미술 사조와 사상이었다. 이제 그 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떠안으며 용기를 내어 신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 대신 오디세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과 고국으로 돌아왔다.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게 약속했던 것은 재물과 영원한 삶이었다. 작가에게 빗대자면 명성일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약속을 거절했던 것처럼 정영주 작가도 이를 물리쳤다. 사람을 잡아먹는 폴리펨은 야만의 시대를 상징한다. 정영주 작가는 야만의 시대를 경험했고 지극히 어렵게 극복했다. 국가의 환란과 언어장벽, 정보 불균형, 후기자본주의의 경쟁주의, 글로벌리즘, 병든 철학의 치세(治世)라는 야만을 모두 겪고 극복했다. 로토파고스 섬의 환각제는 가상 세계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디지털 가상과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회화의 힘은 쇠락하는 것 같았다. 정영주 작가는 이 가상의 세계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과 휴먼 터치, 정서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키케르 섬의 돼지로 변하는 선원의 모습은 자아 해체를 의미한다. 정영주의 자아는 언제나 명징(明澄)했다. 세이렌 섬의 노래의 유혹은 이성(理性)의 상실을 뜻했다. 정영주 작가는 광기로 치닫는 세태에서 끝까지 진실한 회화의 힘을 신뢰했다. 타인들이 광기(狂氣)와 센세이셔널리즘, 스펙터큘러리즘, 리모더니즘(re-modernism)으로 회화를 팔아넘겼을 때 작가는 소박한 포에틱(poetic) 순간의 정서를 회화에 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반려자인 페넬로페(회화)를 구출했다. 서구의 모든 사조를 자기의 것으로 포장하지 않았거니와 들키고 싶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를 형식으로 승화시켰다. 초라해 보이는 집을 전면(全面)에 고르게 배치했으며, 근경에서 질료의 생생한 물질성이 두드러질수록 원경에서 불빛과 하늘은 영원한 공간성을 암시하여 회화의 복권에 힘을 불어넣었다. 한지 콜라주는 실재(實在)로서의 물질성을 극화시켰으며, 빛은 정서의 생동을 배가시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했다.
2. 정영주 회화에 내재한 두 개의 층위
정영주 회화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동서양 회화의 두 개의 신화에 대하여 이해해야만 한다. 하나의 이야기는 15세기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에서 시작한다. 화가 캉탱 마시(Quentin Matsys, 1466-1530)는 원래 쇠붙이를 잘 다루는 대장장이였다. 캉탱 마시는 어느 날 한 화가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 대장장이는 화가를 찾아가 사랑하는 딸과의 결혼을 허락받고자 했다. 그러나 화가는 결코 대장장이와 같은 하찮은 지위의 사나이를 사위로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캉탱 마시는 화가의 화실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화가(장인어른)가 진행 중이었던 그림에 슬그머니 파리를 그렸다. 다음 날, 화가(장인어른)는 그림을 그리려다 무심결에 파리를 쫓아냈다. 몇 번을 휘둘러도 파리는 피하지 않았다. 화가(장인어른)는 파리가 그림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이 파리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수소문했으며, 그 주인공이 대장장이(사위)라는 사실을 알았다. 캉탱 마시는 화가의 도제로 입문하는 것을 허락받았고, 마침내 화가의 딸과 결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캉탱 마시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15세기 최고의 플랑드르파(派) 화가가 되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8세기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펼쳐진다. 동아시아의 전설의 화가 오도현(吳道玄, 680-740), 즉 오도자(吳道子)의 이야기이다. 오도자가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그림은 황제 현종(玄宗, 685-762)으로부터 의뢰받은 것이다. 현종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오도자가 궁중의 벽화를 완성하길 바랐다. 오도자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황제 이외에는 아무도 그림을 볼 수 없도록 장막으로 가렸다. 황제는 그림 속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감탄했다. 그림 속에서 폭포가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으며,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산은 치솟듯 높았으며, 구름은 광활한 하늘에서 뭉게뭉게 유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좁은 오솔길을 오르고 있었으며, 반대로 새들은 자유로움을 과시하며 날고 있었다. 그리고 산기슭에 동굴이 보였다. 오도자는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보십시오. 동굴 속에 정령(精靈)이 머물고 있습니다.” 오도자가 손뼉을 치니 동굴 입구가 열렸다. 이어서 “동굴 속은 빛이 가득합니다.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황제 폐하께 길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오도자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지만, 황제를 뒤로하고 입구는 닫혀버렸다. 황제는 놀라서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림은 궁중 벽으로부터 사라졌다. 오도자의 붓 자국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그로부터 오도자를 세상에서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캉탱 마시의 신화는 재현에 관한 것이다. 서구 회화사는 실재(實在)의 정확한 재현을 목표로 발전했다. 동아시아의 회화는 정확한 재현이 목표가 아니다. 그림에 들어가서 살며 느낄 수 있는 정서의 공유를 목표로 발전했다. 물리적 표면을 넘어서 화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으로 인도하는 것이 그림의 도리였다. 동아시아의 화가들은 감상자에게 화가의 눈과 기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화가의 정신 속으로 진입하기를 원했다. 오도자에게 풍경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내면적 공간이며 정신적 공간이다. 황제는 강토를 지배할 수 있을지언정 오도자의 정신을 지배할 수는 없다. 오로지 고귀한 정신으로써 하나 될 수 있는 회화의 강토만이 영원한 것이며 만대를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이다. 우리는 힘으로 지배될 수 없는 정신적 강토를 가리켜 산수(山水)라고 부른다.
정영주 회화에 내재한 두 개의 층위는 바로 캉탱 마시와 오도자의 정신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도시풍경」 연작은 캉탱 마시의 정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고층건물의 위용과 쇠락한 집의 초라한 물리적 표면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가는 고층건물과 쇠락한 집 사이에서 드러나는 이분법적 존재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만나고 느꼈던 골목과 골목으로 펼쳐졌던 만상(萬狀)과 그 형상에서 마음으로 기재되었던 만감(萬感)을 그리고 싶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 골목으로 이어진 후미진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어린 우리에게 그 골목과 산동네의 생활은 절대 비루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밥 짓는 냄새가 좋았고, 퇴근해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정겨웠다. 옆집 친구의 목소리가 비단이불처럼 포근했다. 존재론적 안정(ontological rest)이 마치 이불처럼 모든 사물과 일들을 에워싸서 보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존재론적 안정은 존재적 시각(ontic view)으로 탈바꿈했다. 존재론적인 것과 존재적인 것은 천양(天壤)의 차이가 난다. 존재론은 시의 세계이며 존재적 세계는 과학의 세계이다. 전자는 정서의 충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후자는 정확한 계산을 목표로 삼는다. 모든 것을 계측적, 수량적 관점으로 본다. 따라서 인류사는 시적 시선(poetic view)으로 바라보는 가치에서 인과적 선후와 수단의 관점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관점으로 이동한 역사이다. 이에 반해 정영주의 회화는 21세기인 지금 우리가 유년기에 총체적으로 체험했던 시적 시간(poetic time)을 완벽하게 극화시키고 있다.
작품 「Another World」는 시적 시간의 마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작품의 오른쪽 아래와 왼쪽 위에 산이 마을을 감싼다. 정영주 작가는 캔버스에 종이를 붙여 산의 형상을 완성한다. 그리고 캔버스 하단에 종이를 붙이고 오려서 집의 형상을 완성한 후 아크릴 물감을 수십 차례 올려서 집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종이와 종이는 서로를 뿌리 삼아 기대며 일어선다. 집과 집은 서로의 존재를 온기 삼아 생명력을 발산한다. 집과 집은 서로 의지해서 화면을 가득 채우며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이 연못 가장자리 끝까지 퍼지듯이, 불빛은 동심원처럼 우리의 마음속까지 울려 퍼진다. 정영주 작가는 산과 집을 종이로 하나씩 붙이고 무수히 거듭되는 붓질의 퇴적 속에서 전체 풍경을 완성한 후 최종적으로 불빛을 살린다. 어렴풋한 분위기는 마침내 총체적 생기를 얻어 끝없이 생동하는 우주적 풍경을 연출한다. 정영주 회화 속 불빛은 풍경의 눈(the eye of the landscape)이다. 정신의 주재자(主宰者)이다. 우리는 그 불빛(눈)의 안내를 따라 마을 속을 거닐며 벽을 짚고 소리를 들으며 황혼이 지나 밤으로 진입하는 풍경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정영주 회화는 정확한 재현의 목표를 시작으로 내적 진리(시적 진리)라는 최종적 관문에 도달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영주의 작품 속에 진입하여 수량적, 계측적, 인과적 사유의 습관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된다.
3. 고향에 대한 두 관점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뿌리를 중시한다. 이를 지본의식(知本意識)이라 부른다. 모든 사물과 일에 대해서 본말(本末)을 따져서 판단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에 대한 뿌리를 묻곤 한다. 그러므로 보학(譜學, genealogy)이 발달하게 되었다. 글씨에 관해서 서보(書譜)가 있고 그림에 화보(畵譜)가 형성되었다.
이에 반해 서구사회에서 뿌리를 중시하는 의식에 반발하는 사유가 동아시아 사회보다 발달하였다. 서구의 근대는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왔기 때문이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1920-1991)는 이를 ‘뿌리 없음(rootless)’이라 불렀다. 계보를 중시하는 인간의 의식은 식물의 형상으로부터 영향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뿌리가 없고 유동하는 존재라는 것이 플루서의 설명이다. 정착하지 않고 자기결정으로써 자유를 획득해간다는 노마드(nomad) 개념은 디아스포라로서의 유대인 사회의 역사가 형성해낸 개념이다. 가령, 빌렘 플루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향은 영원한 가치가 아니다. 특정 기술의 기능인 것이다. 여전히 고향을 잃고 고통을 겪는 이도 있다. 고통을 겪는 것은 고향에 달라붙어 있는 많은 유대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유대는 대부분 숨겨져 있고 의식으로 접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유대관계의 고착이 찢어지거나 분리될 때 개인은 고통을 경험한다. 마치 친지가 외과의의 집도를 받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 내가 프라하를 떠나게 되었을 때 우주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꼈다. 자아와 외부세계가 혼동되는 착각을 경험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자유의 현기증과 도처에서 자유정신이라 부를만한 자유로움이 극심한 분리 증세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빌렘 플루서는 디아스포라로서 고향이 안겨주는 뿌리 깊은 유대관계보다 노마드의 자유정신을 중시하고 있다. 자유정신이란 공동체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분위기에 다름 아니다. 공동체의 가치란 인정(人情)과 베풂, 나눔, 공감을 중시하는 정서를 말한다. 또한, 아름다움, 취미, 도덕의지를 공감하고 서로에게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이며, 이러한 공감을 존중하는 토대를 가리킨다. 이에 반해 개인의 특수한 시각이나 관점, 삶의 형식을 중시하는 태도를 자유정신이라 하며, 유동하며 격변하는 시대에 호응될 수 있는 정신이라 해서 개인의 가치를 중시했다. 이를 우리는 개인주의라고 배웠다. 개인주의는 산업사회 이후 고향을 떠나서 도회지로 몰려든 도시근로자와 도시근로자를 규제하는 지배계급이 공동으로 개발한 윤리이다. 따라서 20세기의 사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산업사회 이전의 전통적 공동체 의식 지형과 산업사회 이후에 생긴 새로운 지형이 서로 충돌과 화해를 거듭하면서 그려낸 지형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뿌리 있는 나무처럼 대대로 내려온 지형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뿌리 없는 유목의 가축처럼 신선한 풀을 향해 이동하느냐의 이미지로 사상의 지형도가 양분되었다.
서구에서 빌렘 플루서는 뿌리 없는 인간본질을 설파한 대표적 사상가인 반면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고향을 숭상한 대표적 사상가이다.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실존적 인간존재에 이르지 못하고 퇴락존재로 전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은 인간과 세계를 수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존재론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하이데거는 고향상실(Heimatlosigkeit)이라 규정했으며, 철학의 본래 과제는 진리가 훤히 드러나는 곳으로 귀향하려는 노력에 있으며, 예술 역시 망각된 진리를 다시 드러나게 해주는 매체적 현현이라고 정의했다.
현대미술 역시 고향의 개념에 상응하여 크게 두 기지로 구별할 수 있다. 하나는 공동체의 가치(고향, 대지)를 중시하는 미술이며, 또 하나는 공동체의 가치를 벗어나는 미술이다. 전자의 대표적 인물로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가 있고, 후자의 대표로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를 손꼽을 수 있다. 전자의 심연에 반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와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가 자리한다면, 후자의 뇌리를 지배하는 것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일 것이다. 정영주 작가는 당연히 전자에 속한다. 그렇다고 안젤름 키퍼나 정영주가 완전히 고향을 회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넓은 의미에서의 모더니티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고향상실은 필연적 사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대라는 시점에서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고 있다. 현대라는 시점과 도시, 더욱이 메트로폴리탄의 개념은 뿌리와 유대관계라는 정서 개념과 상궤를 달리한다.
현대와 도시는 노마드(nomad)와 관련되어 있다. 노마드는 그리스어 노모스(nomos)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경계지역(bounded area)이라는 뜻이다. 접미사 ‘–nomy’는 노모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천문학(astronomy)은 행성의 경계지역을 가리키며, 자율성(autonomy)은 개인의 자기결정의 경계지역을 뜻한다. 이에 반해 고향을 뜻하는 하이마트(heimat)는 고대 독일어 하이모티(heimōti)에서 유래되었으며 어떠한 상태나 조건을 뜻한다. 노마드는 물리적 경계를 뜻하는 반면, 하이마트는 심리적, 정신적 상태나 조건을 뜻한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단어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고향을 뜻하는 그리스어 노스토스(nostos)와 고통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고스(algos)의 합성어이다. 역시 심리적, 정신적 상태와 연관되어 있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유대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은 심리적, 정신적 상태와 조건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철학과 예술의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정영주 작가는 영원히 끝날 수 없는 중대한 과제를 수행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정서의 회복과 회화의 복권을 위해서 오늘도 종이를 오리고 선과 면의 세계에 침잠하다 그 세계에 빛을 밝히고 있다. 나는 대지(Erde)와 세계(Welt)가 둘이 아니라고 믿지만, 때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본연은 대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대지를 어루만지는 작가를 사랑한다. 밀레가 그렇고 고흐가 그러하며 안젤름 키퍼와 정영주가 그렇다.
학고재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0
02 720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