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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일한 새벽과 밤을 지닌다

서신욱

Installation view of ‘We have the same dawn and night’ at GALLERY2

서신욱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산업화를 겪으며 개인을 변별하는 구분점이 사라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키네틱 방식을 적용한 입체물을 통해 구현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강철을 사용한 과거 작업에서 나아가 스테인리스를 주요 소재로 삼은 작업을 통해 한국의 산업과 사회 지형에 대한 이야기로 넓힌 서신욱의 탐구를 살핀다.

반영적 신체 #2는 실재를 비출 수 있을지 모른다 The reflective body may project reality #2, stainless steel, printed mirror, 215x64x3.1cm, 2024

서신욱은 인간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공장의 ‘생산 라인’과 기계의 메커니즘을 조명한다. 1800년대 이후, 멈추지 않고 가동되는 기계를 보유한 공장의 모습은 동시대를 단적으로 빗대는 이미지로 여겨져 왔다. 그 이미지 속에는 분명 손, 발, 허리 등 신체를 움직여 동력을 내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생산 라인이라는 건조한 이름으로 점철된 공장의 메커니즘은 우리에게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드러낼 뿐, 인간의 업은 대체로 숨겨 버리고 만다. 이러한 논의는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가 이데올로기 개념을 토대로 전개한 바 있는데, 그는 사회라는 시스템이 모든 개인에게 같은 것을 공유하도록 하여 자신이 구조에 일조하는 듯 상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모두가 “동일한 새벽과 밤”을 지님으로써, 역설적이게도 현실에서는 개인보다 시스템의 구조가 강조되는 것이다. 서신욱의 작업은 이처럼 우리 앞에 적극적으로 전시되는 공장식 메커니즘, 그리고 이에 적용되며, 혹은 적응하며 달라지는 인간의 메커니즘이 대비되는 장면을 들춘다.

반영적 신체 #3은 실재를 비출 수 있을지 모른다 The reflective body may project reality #3, stainless steel, printed mirror, 215x64x3.1cm, 2024

전시장에는 두 개의 컨트롤 박스로 연결되어 하나의 개체로 통합된 ‘유니바디(Unibody; Unified Body)’ 기계가 자리한다. 원형운동을 하는 다섯 개의 모터가 각각 짝을 이룬 입체물에 달려 있다. 세 개의 둥근 판에 체결된 모터는 판 위에 놓인 봉을 움직이고, 봉은 시계방향으로 돌며 여러 개의 구슬을 걸러내듯 이동시킨다. 그 아래 바닥에 놓인 아크릴은 인체를 형상화한다. 모양도 곡률도 다른 세 개의 인체는 움직임에 반응하는 상징적인 형태로, 판을 받치고, 쓰러져 가고, 쓰러지다 못해 완전히 꺾여버린 모습이다. 둥근 판으로 구성된 구역 한편에서는 모터가 달린 봉이 원형으로 돌며 프레임 위를 반복해서 지나간다. 반대편에 교차된 두 개의 프레임 중앙에는 실리콘으로 캐스팅한 손 모양의 입체물을 움직이는 모터가 결합되어 있는데, 모터를 통해 동력을 얻은 손은 네 개의 인체 형상을 계속해서 스친다. 여기에 설치된 인체 형상들은 하프집업과 청바지처럼 실제 의복에 활용되는 천, 피부를 닮은 표면을 지닌 가죽, 세밀하게 형태를 달리 만든 아크릴로 구현되어 현실 속 인간이 가진 면면을 상기시킨다.

반영적 신체 #4는 실재를 비출 수 있을지 모른다 The reflective body may project reality #4, stainless steel, printed mirror, 215x64x3.1cm, 2024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서신욱의 작업은 3D 프로그램의 ‘지오메트리 노드(Geometry Node)’ 기능, 나체 형상, 스테인리스 소재를 활용한 새로운 실험에 기반한다. 과거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두고 뇌파의 움직임을 형상화했던 그는 신작에서 3D 프로그램 블렌더(Blender)의 기능 중 하나인 지오메트리 노드를 활용했다. 지오메트리 노드에서는 점, 선, 면을 모아 하나의 오브젝트를 구성한 지오메트리의 점을 조작해 선과 면을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이는 X, Y, Z 세 개 축을 중심으로 이동, 회전, 크기에 변화를 주며, 최소한의 입력값으로도 큰 변형을 일으킨다. 전시장에 놓인 유니바디에 체결되거나 벽에 걸린 거울에 인쇄된 나체의 형상은 이 기능을 적용해 만든 이미지로, 동일한 형상에 미세하게 다른 세 단계의 값을 입력해 도출한 결과를 보여준다. 한편 그는 유니바디의 프레임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강철이 아닌 스테인리스를 사용했다. 두 재료 모두 건축이나 산업용 기계에 주로 쓰인다는 점에서 산업화, 공장의 이미지를 은유하지만, 특히 한국에서 강철보다 더 많이 소비되는 스테인리스는 이곳만의 산업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Installation view of ‘We have the same dawn and night’ at GALLERY2

전시장에 자리한 신체들, 즉 실리콘 손과 외곽이 변형된 인체들은 산업화된 사회가 인간의 삶 위에 덧씌운 비극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여기서 비극은 얇은 선 하나 정도의 미묘한 차이로 희극적인 장면으로 전환될지도 모른다. 하나로 연결된 기계들, 그것이 순환됨을 나타내는 화살표, 그리고 변형된 인체 앞에 선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은 멀리 떨어져서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둘러싼 시스템의 전체적인 모습을 목도하라 말하는 듯하다. 그런 반면 허무맹랑하게 움직이는 옷들, 돌고 돌다 때가 타고 닳기도 하는 말랑한 손은 짧은 유머를 발생시킨다. 코미디처럼 마냥 웃기지는 않은, 찰나의 웃음만을 남기는 순간들. 달리 말해 냉소가 어느 순간 이곳에 자리하게 된다. 그것이 냉소라는 점은 결국 또 메커니즘, 시스템이라는 전체적인 구조를 지닌 오늘날 산업과 사회의 모습을 한 번 더 직시하게 만든다.

Installation view of ‘We have the same dawn and night’ at GALLERY2

갤러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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