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KUKJE GALLERY
2023. 3. 17 – 4. 23
바이런 킴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나는 내 몸과 새로운 관계 형성을 할 수 있었다. 보통 나는 신체보다 상상과 정신의 공간을 우위에 둔다, 추상화에 대한 나의 성향과 맞닿아 있으니. 움직이는 수단으로서의 몸에 의지하는 것은 나를 추상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았는데, 묘하게도 이는 나의 작업을 현실 기반인 재현으로 이끌어줬다.” – 바이런 킴
국제갤러리는 2023년 3월 17일부터 4월 23일까지 부산점에서 바이런 킴의 개인전 《 Marine Layer 》를 개최한다. 서울점에서 선보인 《 Sky 》전 이후 5년 만의 전시이자 부산점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바이런 킴의 회화는 형식적 독창성과 개념적 정밀성 간의 균형을 능숙하게 잡아간다. 평범하되 심오한 일상 속 세부 사항들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연구하고, 이로써 언뜻 평범하기만 할 법한 요소에서 깊은 의미를 추출해낸다. 작가는 연속성과 친밀한 집중력에 기대어 오랜 시간 진행해온 연작들을 통해 정체성과 장소성에 대한 다층의 현상학적 분석을 포착하고자 한다.
특히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이며 그의 작업세계에서 돌파구적 지위를 갖게 된 〈제유법(Synecdoche)〉(1991-진행 중) 연작은 이러한 그의 접근법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동일한 사이즈의 패널 400여 개로 구성된 본 작업에서 단색조의 화면들은 각기 한 인물의 고유한 피부색을 재현한다. 이 같은 파편화된 신체의 미니멀한 표현 안에서 초상화의 역사뿐 아니라 인종, 재현, 정체성 등의 문제가 감각적으로 서술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선데이 페인팅(Sunday Paintings)〉은 작가가 2001년부터 매주 일요일에 제작해온 연작이다. 일상에서 비롯되는 본 회화 연작에서는 각 캔버스 안에 하늘 그림과 함께 일기 몇 줄이 기재되는데, 이로써 그의 작품은 개인적 기록임과 동시에 하늘을 경험하는 일이 광활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라는 사실에 대한 명상적 고찰이기도 하다. 바이런 킴이 생산하는 이미지는 다소 추상적인 어휘로 환원되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분명 구상적인 차원에 남아 개념주의와 관찰, 그리고 추상 간의 긴장감을 구현하는 회화적 도구로 기능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바이런 킴의 신작 역시 장소와 신체적 현존의 접합점을 탐구한다. 〈B.Q.O.〉라는 연작 제목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유명 소설의 세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알파벳으로 구성된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주인공 버튼(Berton)에서 B,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중 퀴케그(Queequeg)에서 Q, 호머의 『오디세우스』에서 오디세우스(Odysseus)의 O를 가져온 것이다. 각 서사에서 바다와 씨름하는 이 세 명의 영웅적 인물들은 작가가 2020년 1월 라우센버그 레지던시를 위해 캡티바 섬(Captiva Island)에 머물며 이 소설들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한다. 플로리다 남부의 외딴섬에서 작가는 카약을 타고, 수영을 하고, 패들보드를 타며 한 달을 보냈다. 이러한 수중 환경에 놓인 작가에게 있어 소설 속 세 인물은 바다가 인간의 고군분투를 은유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상기시켰던 것이다.
각 〈B.Q.O.〉 작품은 수직으로 쌓아 올린 세 개의 캔버스 패널로 구성된다. 가장 위의 화면은 바다에서 바라본 하늘을, 가운데 화면은 물의 표면과 그에 반사되는 모습을, 그리고 가장 아래의 화면은 물속의 모습을 포착한다. 색조의 부드러운 변화와 섬세한 붓질은 추상화의 감각뿐만 아니라 물질적 특정성과 물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 이로써 회화라는 매체 자체를 은유하며 독해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의 문턱에서 회화가 점유하는 고유한 지위를 암시한다.
초창기 〈B.Q.O.〉 작품들이 바다에 대적하는 인간의 신화적 판타지에 집중했다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선보이는 최신 작품들은 물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탐구에 기인한다. 이는 팬데믹 봉쇄 기간 중 수영이라는 단순하고도 구체적인 활동에 집중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코로나 기간 중 일 년의 시간 동안 작가와 그의 가족은 샌디에이고에서 생활했는데, 샌디에이고는 그가 어린아이로서 바다를 처음 만났던 곳이자 그의 노부모가 아직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곳으로 돌아간 작가는 다시 물과 조금씩 가까워지며 그 광활한 바다에서 위안을 찾게 되었다. 그 이후로 작가는 태평양 연안의 라호야(La Jolla) 해변에서 코네티컷주의 토비 연못, 뉴욕의 실내 수영장들에 이르기까지, 물에 이끌려 오며 물의 표면을 관찰하는 행위와 잠수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물에 대한 스스로의 친근감을 고찰해왔다. 이렇게 작가는 자신의 새로운 관심사를 인식의 과정에 대한 오랜 고민과 접목시켜 자연세계와 신체를 주요 소재로 작업하게 된 것이다.
물의 힘에 대한 반응을 세 폭의 캔버스에 펼쳐 놓는 이 회화 연작을 통해 바이런 킴은 잠수라는 행위를 매개로 몰입적이고도 본능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같은 연작 내의 작품들을 한 데 소개함으로써 본 전시는 근본적인 자연력 안에,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하는 강력한 감각을 소개한다. 그의 〈제유법〉과 〈선데이 페인팅〉 작품들이 그러하듯 〈B.Q.O.〉 역시 결말 없이 진행되는 연작이 된다. 이러한 작업 틀에 대해 작가는 “나의 작업은 대부분의 경우 전체에 대한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이 세상 속 나머지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보다 거대한 전체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라 소회한 바 있다. 본 작품군은 (제목의 문학적 참조점이 암시하듯)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부터 인류와 자연 간의 광활한 연결에 이르기까지 양 극단을 아우르며 명상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자연과 우리가 맺는 관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국제갤러리 부산
부산시 수영구 구락로 123번길 20 F1963
051 758 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