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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살아있는 현재

2023. 2. 7 – 3. 2
윤형근, 최인수

윤형근, Umber-blue, 1995, oil on linen, 227 x 181.1 cm

우리들의 생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소멸된다. 존재의 흔적만이 남겨질 뿐이다. 생성과 소멸의 흐름 안에서 윤형근의 회화와 최인수의 조각은 함축된 자연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의미를 지시하기 보다 존재의 형태로, 생성의 흔적으로, 침묵의 현전으로 우리가 서 있는 공간에서 공명한다.

여기서 침묵은 말이 없는 침묵이 아니다. 윤형근의 회화는 ‘말을 안으로 확산시키는 힘이 있어서 그 힘이 말까지도 감싸버리고 마는’(나카하라 유스케) 그런 맥락의 침묵이다.
깊이와 밀도를 마주했을 때, 말은 말을 잃고 침묵하게 된다. 검은 평면의 회화와 손의 기억이 남겨진 나무 조각이 한 전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조우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숨결을 지니기 때문이다. 대지와 나무가 자연스럽듯이, 죽음과 삶을 덮은 대지처럼 윤형근의 회화는 먹먹하게 깊이를 향해 가고, 최인수의 조각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을 헤아린 흔적으로 물질의 서사를 드러내며 주위 공간을 포합(抱合)한다.
본질적으로는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질감과 색을 두고자 하였다. 긴 시간을 두고 응시하면서, 무위(無爲)로, 일의 흔적이 더해지고, 덜어지며 절제된 작품으로 일관하였다.

최인수 장소가 되다-3 Becoming a Place-3, 2020, zelkova, 180 x 12 x 11 cm

“… 굵은 막대기처럼 죽 내려 긋는다. 그러나 한 번에 그려지지는 않는다. 몇 차례 되풀이해야만 밀도가 생긴다. 그리는 시간은 짧지만 물감이 마르는 시간이 걸려서 며칠을 두고 또는 몇 달을 두고 보아 가며 그린다. 어느 것은 작년 것을 올해 다시 꺼내서 되풀이해서 그리기도 한다.”
윤형근

“… 나무를 쌓아놓고 여러 날 나무에 경청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가 나를 관찰하는 듯하다. 잘린 나무둥치는 내부로부터 작용하는 원심력에 의해 방사형으로 갈라짐(crack)을 보이는데 이를 따라 나무를 길게 가르고, 건조 상태를 보며 나이테를 세어 톱질하고 끌로 깎아낸다. … 나무를 깎아 들어가는 이 미시적 여정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과정이다.”
최인수

시간이 흐를수록, 윤형근의 검은 색면은 점점 간결해지고, 색 또한 짙은 검은 색으로 수렴되고 있다. 모든 것이 나오고 돌아가는 색으로 가며, 소리도 멈춘다. 정신적 수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스밈과 번짐도 역시 절제된다. 거대한 화면에 겹쳐 칠해진 농도가 다른 검은 색면은 숭고를 불러일으킨다.
최인수의 조각은 고요 속에서 빛과 음영, 생생함과 두려움으로 멀어져 가는 듯 다가오는 듯이 정관(靜觀)의 여지를 준다.

여기서, 우리는 말을 안으로 머금게 되고, 침묵 안에서 살아있는 현재가 된다.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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