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S] UM GALLERY
2022. 11. 9 – 11. 30
김해민
김해민의 ‘반색(伴色)’과 ‘난색(難色)’ 사이
미술평론가 류병학
“나는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35년간 미디어를 매체로 하여 작품을 발표해온 한국의 초기 미디어 작가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90년대 초반기에 작업하던 시절로 되돌아가 그 시기에 시도하지 못한 채로 남겨졌던 작업 구상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지금으로 소환해서 작업하는 것이다. ‘시도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 작업 구상 안이 30년이 지난 지금 시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나는 그렇지 않고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초기의 순수했던 작품 아이디어들을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옷을 입히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이테크(high tech) 보다 로우테크(low tech) 작업을 더 선호한다. 그 당시는 로우테크 형식의 단순한 아이디어도 작품으로 구현해 내기 어려웠지만 지금 와서야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지금 하려는 작품들 역시 그러한 작업 아이디어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과거의 생각들이 시간을 지나 현재 이르러 새로운 작품으로 귀결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시간 매체의 예술인 미디어아트가 나아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가장 잘 부합되는 작품일 것이다.”
– 김해민의 작가노트 ‘반색(伴色), 또는 그런 기색’ 중에서
올해 11월 김해민 작가는 UM 갤러리에서 개인전 『반색(伴色), 또는 그런 기색』을 개최한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 신작 5점을 출품할 예정이다. 그의 < TV 망치 2022(TV Hammer 2022 >(2022)와 < RGB 칵테일 – 5개의 변이 >(2022) 그리고 < 빨강 그림자 파랑 그림자 대면 비대면 >(2021)와 < 한시적 노출 >(2022) 또한 < 반색, 난색 >(2022)이 그것이다.
김해민의 신작 < 한시적 노출 >과 < 반색, 난색 >은 90년대 시도하지 못한 채로 남겨졌던 작업 구상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지금으로 소환해서 작업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신작들은 구작들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의 < TV 망치 2022 >는 1992년 제작된 그의 < TV 망치 >를 떠올리게 하고, < RGB 칵테일 – 5개의 변이 >는 2001년 작업한 < R.G.B 칵테일 >를 소환하고, < 빨강 그림자 파랑 그림자 대면 비대면 >는 2014년 작품인 < 빨강 그림자 파랑 그림자(Red shadow Blue shadow) >를 상기시킨다고 말이다.
김해민은 이번 개인전에 출품하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가상과 실재’로 든다. 그런데 ‘가상과 실재’는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작가가 어떤 작품을 구상하는 것을 ‘가상’이라고 한다면, 작가의 구상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실재’라고 말이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을 머리 속에서 구상한 것과 물질로 제작된 작품 사이에 ‘틈(gap)’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생각(가상)과 작품(실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따라서 김해민은 작가가 작품을 제작해 놓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점에서 ‘과학실험과 닮아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자는 미디어아트를 ‘주로 컴퓨터 기술을 사용하여 미디어 본연의 자세를 찾는 예술 표현’으로 간주한다. 지난 동안 이 ‘기술’은 변화(진화)했고, 나의 작업도 변화했다. 과거의 아이디어를 소환해 시도해봄으로써 발상은 어떻게 작품이 되고, 이 과정은 어떻게 실험으로서 의미를 갖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실험의 결과인 작품들이 지금까지 해온 나의 작업들을 관통하고 있는 ‘가상과 실재’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미디어아트는 한 마디로 ‘매체(Media)+아트(Art)’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미디어아트에서 ‘매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매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말하자면 이전에 대량생산된 매체는 사라지고 새로운 매체로 대체된다고 말이다. 그런 까닭에 미디어아트에서 구작은 작동하는 데 문제에 봉착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크고 작은 (5~25인치) CRT 모니터 1003개를 마치 거대한 탑처럼 쌓아 올린 일종의 ‘미디어-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모니터는 한국의 경복궁과 부채춤․고려청자․한복 등과 프랑스의 개선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등 각국의 문화적 상징물과 샬럿 무어맨의 연주 모습 등을 담은 ‘다다익선 Ⅰ’ 등 모두 8점의 영상작품을 상영한다.
2002년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브라운관 TV 모니터의 노후화로 인해 화재를 일으켰다. 결국 작품 상영이 중지되었고,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모니터 전량을 교체했다. 그런데 1998년 백남준의 <다다익선> 모니터는 검은색이었던 반면, 2003년 교체한 모니터는 은색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검은색 모니터가 단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종종 고장이 나서 모니터를 교체해왔다. 하지만 이전에 사용했던 모니터가 단종되어 대체할 재고가 줄어들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의 모니터 부품 교체뿐만 아니라 모니터 자체를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하지만 2018년 <다다익선>은 결국 전반적인 노후화와 부품 조달의 한계 그리고 ‘계속 가동할 경우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누전상태’라는 안전점검 결과로 인해 작동이 전면 중단됐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백남준의 <다다익선> 복원 방향 및 계획을 발표했다. 미술관 측은 “‘다다익선’의 핵심인 CRT 모니터를 최대한 복원해 작품이 지닌 시대적 의미와 원본성 유지에 노력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다른 모니터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경우 LCD(LED), OLED, Micro LED 등 대체 가능한 최신 기술을 부분적으로 도입, 기존 모니터와 혼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후 전체 모니터와 전원부 정밀진단을 실시했다. 2020~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중고를 구입하여 1003대 중 손상 CRT 모니터 중 735대를 수리․교체했다. 그리고 상단 6인치 및 10인치 총 268대를 평면 디스플레이로 제작․교체했다. 2022년 초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다다익선’의 기본적인 보존․ 복원 과정을 마쳤다”면서 “6개월 동안 시험운전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2022년 말에 재가동 예정인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이전에 대량생산된 매체가 단종되어 일부 새로운 매체로 대체된다고 말이다. 볼록한 볼륨감을 지닌 1003대 브라운관 모니터 중 268대가 평면 디스플레이로 교체되었다. 그런데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735대 모니터도 새 모니터로 교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한 것이 김해민의 개인전 『반색(伴色), 또는 그런 기색』이다.
김해민의 < TV 망치 2022 >는 실재의 모니터에 가상의 이미지를 접목시킨 작품이다. 이를테면 실재 모니터 화면에 등장하는 망치가 모니터 화면을 두드리다가 어느 순간 “꽝!” 하면서 모니터 화면을 깨트리면서 동시에 실재 모니터도 마치 실재 충격을 받은 것처럼 흔들린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의 < TV 망치 2022 >는 마치 가상(이미지)이 실재(모니터)를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착각케 한다.
머시라? 그러면 김해민의 < TV 망치 2022 >는 1992년 제작된 그의 < TV 망치 >와 다를 바 없다고요? 일단 1992년판 모니터는 볼록한 볼륨감을 지닌 브라운관 TV 모니터인 반면, 2022년판 모니터는 LED 평면 모니터이다. 그리고 구작의 모니터 크기는 29인치인 반면, 신작의 모니터 크기는 40인치이다. 또한 1992년판 영상은 하늘을 배경으로 브라운관 화면을 망치로 치는 반면, 2022년판 영상은 나무들과 하늘을 배경으로 브라운관 화면을 망치로 두드린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김해민의 < TV 망치 2022 >가 새로 제작된 것이란 점을 알려준다. 그는 모니터뿐만 아니라 영상도 재제작했다. 그 점에 관해 김해민은 “대형 화면에서 ‘TV 망치’를 보여진다는 점에서 영상을 재제작했다”면서 “화면 크기로 인해 구작에서 느꼈던 것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덧붙여 “LED 모니터는 내구력이 약하기 때문에 제작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혹자는 김해민의 < TV 망치 2022 >에 대해 반색(伴色)하겠지만, 어떤 이는 난색(難色)을 표할지도 모른다. 그 점에 관해 김해민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과거의 생각들이 시간을 지나 현재 이르러 새로운 작품으로 귀결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시간 매체의 예술인 미디어아트가 나아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가장 잘 부합되는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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