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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원: 공기와 꿈

2022. 9. 30 – 10. 29

윤정원

전시전경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꽉 차 있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동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합리와 지성을 추구하는 현대 문명화 과정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환상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인간 본연의 욕망과 판타지를 시각화하는데 있어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온 윤정원의 전시가 갤러리JJ에서 다시 열린다. 2020년 《윤정원: 정령의 노래》 전시가 회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2년 만에 같은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윤정원: 공기와 꿈》은 최근 새롭게 제작한 영상 작업을 선보이며 다수의 샹들리에 및 오브제 작업과 함께 공간을 아우르는 구성으로써 우리를 다채로운 조형의 세계로 초대한다.

윤정원의 작업은 삶에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간다. 그것은 설치부터 평면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자유로운 구성력과 판타지가 돋보이는 회화는 물론 기발한 상상력으로 다채로운 소품들을 조합하여 예술의 영역으로 엮어내는데, 특히 ‘바비’와 샹들리에 작업은 잘 알려져 있다. 더 이상 쓸모 없어진 놀잇감, 인형이 새로운 조형성을 내보이고, 각종 자잘하고 하찮은 플라스틱 소품들은 아름다운 샹들리에로 변신한다. 또한 실제 성인의 키만큼 훌쩍 커버린 ‘바비’의 채색되고 콜라주된 초상사진 작업은 가히 초현실적이다. 한편 이러한 사물들이 평면으로 들어가면, 세상 만물이 위계 없이 어우러지고 공존하는 파라다이스를 구현한 밀도 높은 회화 작품이 된다. 자연이 예술과 더불어 회복과 구원의 이미지로 나타나며 그것은 신화적이면서 또한 사랑으로 하나되는 종교적 이미지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평면과 입체작업은 서로 모습을 바꾸면서 생활 속 즐거운 상상력을 불어넣으며 예술과 사물,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의 작업은 우리의 잃어버린 상상력, 아름다운 꿈의 기억을 되돌려준다.

작가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쾰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국제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활동해왔다. 그는 2007년 ‘스마일플래닛’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전시공간과 작업실, 가게의 기능을 동시에 하는 새롭고 실험적인 복합공간을 제시했고, 이 같은 행보는 이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의 ‘동대문 Spirit!’ 공간으로 이어졌다. 이는 디자인과 일상용품, 예술품 사이를 오가며 예술과 산업과의 연결을 꾀하고 일상에서 예술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 본격적으로 ‘우주의 꽃’, ‘최고의 사치’ 시리즈와 회화를 발표하는 등 그의 끝없는 예술적 역량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어왔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벽면을 가득 에워싼 400개의 ‘바비’ 오브제들이 스펙터클한 광경을 연출하는 등, 경쾌하고 독창성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 미술관은 물론 호텔과 백화점, 기업 체험관 등 다양한 곳에 소장되어 있다.

전시전경

이제 작업은 다시금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독일과 서울에서만 거주했던 작가가 1년 전부터 도시가 아닌 낯선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에 머물게 되었고, 이번 전시는 이렇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자연’ 환경에서 작업한 신작들로 구성된다. 자연의 밝은 기운과 눈부신 대기에 힘입어 명랑하고 화려한 색채를 쓰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아침 별 내음을 느끼고 무지개, 딸기와 오렌지, 염소와 오리 등 구체적인 자연과 교감하면서 <구름 한 스푼>, <나뭇잎 우산>처럼 시적 감성이 드러나는 내용과 제목들이 눈에 띈다. 과거 ‘최고의 사치’와 ‘우주의 꽃’이었던 샹들리에는 <비바체>의 역동적 리듬이 되고, 작품에는 파란 접시 구름과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등장한다.
시야가 온통 하늘로 가득한 장소에서 그의 이미지들은 소비사회와 끝없는 물질적 욕망에 대한 비판적 시각보다 드넓은 대기, 그 공기적 가벼움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공기와 꿈’은 바슐라르의 저서 제목에서 가져왔다. 예술이 늘 그러하듯 전시는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깨우고 꿈을 꾸도록 안내한다.

윤정원, 비바체, 2022, Mixed media and lightbulb, ø60 x 55(h)cm

/가벼움
전시장의 공중에는 형형색색 신기한 샹들리에들이 별처럼 반짝인다. 플라스틱 꽃들이 만발하고 줄이 허공에서 드로잉을 하는 한편, ‘바비’ 오브제들이 벽면과 영상 속을 넘나든다. 작품 제목 가운데 <나처럼 한번 날아봐>가 있듯이, 그림 속 모든 존재자 역시 마치 무중력의 공간에 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역동적 장면은 판타지 행성이나 원더랜드를 떠오르게 한다. 화면에는 날개 달린 천사와 새는 물론 발레리나와 악기 연주자, 프로펠러를 단 접시, 자동차가 무지개를 싣고 날아다닌다. 허공에 내려진 줄을 잡고 비행하거나 심지어 역기를 든 사람조차 거뜬히 공중부양을 할 기세다.
윤정원의 작업을 들여다 보면, 늘 춤과 음악이 배경에 있어왔으며 특히 이처럼 전반적으로 비행의 요소들이 가득한 점은 특이하다. 작가는 지금까지 나름의 방식대로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고 책을 읽는 등 혼자의 시간과 공간에 스스로를 놓아두곤 한다. 그렇게 자신과 오롯이 대면하면서 오랫동안 작업에 경이로울 만큼의 몰입도와 집중력을 보이며 독창적인 작품들을 쏟아낸다.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상상력을 더하면서, 현란한 색채의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음악이나 푸치니의 오페라를 즐기고 조지 발란신의 발레를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이 공감각적 감성으로 작업에 그대로 묻어난다. 잘 알다시피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봄의 제전>은 원시주의적 색채감과 혁신적인 리듬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인류학자 앙드레 쉐프너(André Schaeffner)는 땅을 박차는 발의 리듬의 제식적인 행위를 무용의 기원과 연결하면서, 밟기와 되솟구치는 도약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곧 인간존재에게 비행, 도약은 원초적 환희이다. 그것은 ‘가볍고 자유로움’을 동반한다.

윤정원, 샤갈의 밤, 2022, Acrylic on canvas, 65.1 x 53cm

비행에 있어서 가벼이 떠오를 수 있는 날개의 초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개인전에서 ‘새’가 중심 소재였던 만큼 지금도 윤정원의 작업에는 유난히 새가 많이 등장한다. 춤을 추는 듯한 구애의 행동으로 사랑꾼 캐릭터가 된 파란 발의 부비새, 특히 나뭇가지에 올라 않은 사람과 새가 서로 책을 읽어주고 듣고 먹이를 나눈다. ‘꼭대기의 새 둥지’ 이미지는 또 어떠한가. 바슐라르는 둥지의 이미지와 함께 나무 위에 높이 올라앉아 몸을 기대고 책을 읽거나 몽상에 젖은 사람, ‘이상적인 거주자’를 제시하면서, 나무꼭대기에 관한 상상력에서 흔들거리는 운동의 상상력으로 전이한다. 공기와 대지를 연결하는 나무의 원초적 운동, 곧 요람의 흔들림은 나뭇가지와 새와 꿈꾸는 인간에게 행복을 준다. 푸른 하늘로, 비상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흔히 새는 메신저인 동시에 또한 가장 가벼운 동물로 여겨진다. 독일어에서는 “공기 속의 새처럼 자유롭다”라는 비유를 쓰듯이 새를 최대한의 자유 속에 위치시킨다. 가벼움의 궁극에는 자유가 있다. 가볍고 자유로운 것은 동일하게 비상을 지향한다. 우리가 날기 위해서 반드시 이카로스의 거대한 날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행자 헤르메스의 조그만 날개 달린 신발이 상징하듯, 우리가 지상에서 내딛는 가벼운 한걸음의 추진력만으로도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다. 공기적 상상력, 날개 달린 가벼움으로 미래를 세우는 일, 곧 미래의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인간의 희망이기도 하다. 윤정원의 작업에는 그것이 시각화되어 있다. 작업에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의 리듬과 춤의 세계, 세상의 무게에서 자유로운 무중력의 세상은 곧 작가에게는 심미적 현실이며, 그것은 한 켠에 놓여진 우리의 꿈을 소환한다. 그의 시적 이미지들은 우리를 가볍게 하고, 들어올리고, 부양시킨다. 작가에게서 전령, 바람처럼 삶을 여행하는 자유, 하프와 피리의 음색에 물든 양치기 헤르메스의 모습을 본다.

윤정원, 뭐 없나, 2022, Mixed media on photography, mounted on aluminum, 210 x 137.5cm

/유희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의 나는 ‘행복’으로 할래.”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일견 화려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샹들리에는 가까이 들여다보면, 플라스틱 목걸이와 인형, 유리구슬, 주사위 등 조그만 장난감이나 단추나 지퍼 같은 의류 부자재 등 기존 사물의 부속품으로써 주로 놀이용이나 장식으로 사용되던 것들의 조합이다. 그렇다면 인형이나 쓰지 않는 가방, 샹들리에에 형형색색의 옷을 입히거나 장식하는 일, 생활필수품보다는 재미있게 생긴 조그만 놀이용품을 모으고 집적하는 이 일련의 일들이 획득하는 예술적 실천은 무엇인가? 이러한 일들이 윤정원에게는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노스탤지어적 행위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그만의 여정이며 자신이 가진 특유의 순수한 본성과 감각을 따라가는 일이다. 작가의 눈에 처음 들어온 바비인형은 장난감이기 전에 그가 상상하는 갖가지 색의 조합을 실험하고 입혀보기에 좋은 재료였다. 장난감 소품들은 유희적이고 재미있는 형태와 함께 자연 재료로는 구현할 수 없는 플라스틱 고유의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선택된다. 아이들의 놀이 도구들은 이렇게 또 다른 의미에서 작가의 놀이 상대가 되어 주었다. 예술에서의 표현의욕이나 전달성 등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주술이나 제례 속에서 밀접하게 결합되었던 놀이와 예술은 자기목적적이며 현실이탈이란 측면에서 일정부분 공통점이 있다.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인간의 정신은 놀이하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고 무한한 수의 새롭고 신기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마냥 쉽지만은 않을 텐데, 작가는 놀랍도록 몰입하여 그 과정을 재미있고 신나게 해내면서 ‘놀이’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서 진정한 놀이 세계에서의 자유로움에 빠지듯 즐겁게 매혹당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때 작가는 상상력과 이성을 통합하여 조화로운 사물의 언어를 빚어내는 창조자이자 놀이하는 사람이다. 기능과 노동이 중시되는 현실에서도 우리는 이를테면 인터넷과 디지털 세계의 놀이라는 화려한 환상의 세계에 자발적으로 빠져든다. 어쩌면 비현실적인 것의 박탈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 아닐까. 인간은 의례나 신화, 축제의 문화처럼 상상력을 통해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미래의 지배자는 호모 루덴스일 수 있다. 또한 실러(Friedrich Von Schiller)가 꿈꾼 아름다운 국가 역시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서 열망의 대상이 되는 놀이 충동을 회복하고 그러한 놀이가 사회의 원리가 되는 미래의 유토피아다. 곧 놀이와 상상력이 가닿으려는 최종의 목표는 아름다움이다.

윤정원, 요정의 생일 파티, 2014-2022, Acrylic on canvas, 193.9 x 259.1cm

/아름다움
이렇게 윤정원의 작업은 유희적이고 미적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제도화되고 규정된 틀을 벗어나는 기발한 상상의 놀이는 그의 작업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그로 인한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에의 추구는 작업의 특성이 된다. 우리는 ‘호접지몽’ 곧 나비의 꿈처럼 현실과 꿈의 문턱에서 여유로움과 진정한 자유를 향한 세계와 마주한다. 타자를 배려하며 서로 다르지만 모든 자연이 조화로운 행복한 세상, 그것은 고대의 에우다이모니아(good spirit)가 가리키는 ‘잘 사는 것’, 곧 최고의 선, 아름다움 자체를 향해 있다.
작가의 오브제 작업은 관람자의 관심을 도구적 사용에서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돌려놓는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돌이켜보면, 일찍이 현대의 미는 철과 유리, 일상용품과 같은 재료에서 미학적 상상력을 발견하였고, 미디어와 대중소비사회의 발달에 따라 아방가르드의 도발의 미학과 키치와 같은 상업적인 소비 미학까지 더해졌다. 이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 물품들은 무한한 변화의 아이콘이자 산업시대가 만든 현대의 또 다른 자연일 수 있다. 윤정원의 조형작업은 재료와 방법, 개념의 역동적 조합으로 다양하고 절충적 현대미술의 틀에서, 고급미술과 대중문화의 경계에 도전하며 예술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동시대예술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작가의 자연과 예술을 긍정하는 이미지는 바꾸어 말하면, 현대사회에서의 이기심과 획일화에 대한 항거를 내포하며 소비사회의 욕망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한 성찰, 혹은 ‘바비’를 통한 페미니즘적 사고를 독려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이 또한 관람자의 관점에 달려있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 호접지몽과 마찬가지로, 대지적 삶이 현실이 아니라 공기적 삶이 오히려 실재적인 삶이라면, 바슐라르의 말처럼 삶의 진정한 고향은 푸른 하늘이며, 세계의 양식은 바람결과 향기임에 공감한다.

상상만큼 즐거운 놀이도 없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낯선 판타지 세상을 경험하는 일은 설렘을 준다. 우리의 정신 심리 속에서 상상 작용은 열림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새로움의 경험이기도 하다. “상상력은 어떤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실존 그 자체”(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일 수 있음을 윤정원의 작업에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갤러리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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