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GALLERY 2
2022. 7. 7 – 8. 6
전현선
갤러리2에서는 전현선 개인전 < Meet Me in the Middle >을 개최한다. 서로 다른 두 대상 사이의 ‘중간’을 탐구한다. 작가는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와 타자 사이의 ‘중간’지점을 고민하고, 중간을 찾는 과정을 그림으로 묘사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도형은 인물, 사물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회화, 드로잉, 입체를 포함해 총 54점의 신작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8월 6일까지 진행된다.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전현선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즉, 서로 조금씩 타협한 중간 지점에서 타자와 만나야 한다. 이번 개인전 《 Meet Me in the Middle 》은 서로 다른 두 대상 사이의 ʻ중간’을 탐구한다. 물리적으로 이것은 어느 쪽도 무리하지 않고 만나는 장소를 의미한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둘 사이의 평등한 지점으로만 ʻ중간’을 사유하지 않는다. 두 대상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의 시각과 입장을 가져보는 일, 상대방의 상황과 신체 조건을 상상해 보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 발짝 물러난 지점.
그림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와 거기서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한다. 더 나아가 그는 그림의 ʻ중간’을 꾀한다. 여러 번 겹쳐서 색을 칠하고 형태를 견고하게 다듬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즉흥적으로 형태를 결정하고 과감한 큰 붓질로 채색했다. 이는 이번 작업이 드로잉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캔버스를 지지체로 하는 회화가 화가의 최종 목적지라면 드로잉은 중간 그 어디쯤일 것이다. 그곳은 균일한 붓질, 안정적인 구도, 정갈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아닌 거친 붓질, 여백, 즉흥적인 형태, 동적인 분위기의 자리이다. 그리고 그 자리가 바로 작가도 중간까지 가고 형태도 중간까지 와준 자리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도형들은 작가가 경험하고 이해한 인간관계, 사물, 상황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형태이자 작업의 원동력이다. 자신에게 도형은 무색무취의 배우와 같다고 말한다. 다양한 성대모사와 분장이 가능한 큰 특징이 없고 까다롭지 않은 배우 말이다. 그는 2020년 개인전부터 의인화된 도형들이 한 화면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그들은 다름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을 체현하기도 하고 둘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기도 한다. 도형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여러 상황은 자연스럽게 그림의 서사를 만들어 냈다.
그림은 4개의 챕터로 나눠진다. 첫 번째 챕터인 ʻ두 개의 사물’에서는 다양한 관계를 상징하는 두 개의 개체가 등장하는데 서로에게 융화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나 상황을 보여준다. 두 번째 ʻ창문’은 나와 타자와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감을 묘사한다. 전현선은 ʻ타자란 창문을 통해 본 풍경’ 같다고 말한다.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나와 상대방이 서 있는 곳은 결국 다른 장소이며 프레임을 통해서 상대방의 일부만 볼 수 있다. 세 번째 ʻ거울’은 팔각형의 도형들이 거울이 되어 타자를 그대로 반영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고 해도 ʻ나’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반영되는 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ʻ조각상’에 서는 기념비 같은 조각상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둘 사이에 세워진 임시적인 해결책을 의미한다. 그 해결책(조각상)은 안정적이지도 견고하지도 않다.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불완전한 합의점이다.
<두 개의 실내>(챕터 ʻ창문’)에서 두 대상은 바닥의 검은 옷을 밟는 상황을 통해 조우한다. 그리고 뒤에는 창문이 있다. 이것은 서로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이미지다. <아직 거기에 계속 서 있다면>(챕터 ʻ거울’)에서 팔각형의 거울들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과거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타자의 제스처나 말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착오와 둔함을 깨달은 현재의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해보지만,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도형들은 건널 수 없는 강을 바라본다. 그런데 도형들이 비추고 있는 것은 강이 아니라 각자의 과거다. <중간에서 그리는 그림>은 두 대상 사이의 중간에서 그린 그림이다. 중간의 합의점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서로가 만족할 만한 그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캔버스는 아직 비워진 상태이다.
이번 작업은 전현선의 반려견인 ʻ아놀드’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인간이 실제로 개가 되거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인간은 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한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유한 그 시간과 공간이 그들의 중간 지점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 그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 작가는 이 점이 그림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림은 정답을 찾거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 질문을 던져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는 그런 믿음을 갖고 있다.
두 대상 사이의 중간은 어디인가. 그곳이 인간관계의 최종 목표 지점인가. 둘이 동일한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만나는 지점만이 중간은 아닐 것이다. 한쪽이 아홉 걸음을 다가가도 혹은 그저 한 걸음만 다가가도 결국 모두 ʻ중간’일 뿐이다. 또한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관계 역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상대방을 더 알고 싶지만, 온전히 그럴 수 없어 머무르거나 물러난 지점. 그 중간에 머무는 것 자체가 서글프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전현선은 둘 사이의 명확한 중간은 없고 또 그 중간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다고 그림으로 말한다. 이 또한 서글프고 아름다운 일이다.
갤러리2
서울시 종로구 평창길 204
02-3448-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