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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exible Boundaries

2022. 1. 12 – 2. 12
배윤환, 노은주, 강철규, 이의성, 이채은, 최수정

갤러리바톤은 2022년 1월 12일부터 2월 12일까지 한남동 전시 공간에서 한국 작가 6명이 참여하는 단체전, 유연한 경계들 (The Flexible Boundaries)을 개최한다.

순수미술이라고 번역되는 “Fine Art”의 정의는 아주 느슨한 경계만을 제시한다. ‘미술’과 그 행위의 귀결인 ‘작품’에 있어, 그 자체의 추구와 완성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평 및 감상의 단계에선 다양한 접근과 그 의미하는 바가 자유로이 사회적 정치적 함의와 결합할 수 있지만, 이는 해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작가의 창작 의지와 아이디어가 시각적 경험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미디엄, 재료 등 물질적인 요소와의 결합이 필수적인데, 이 경우 물리적 한계라는 허들 또한 존재한다. “Visual Art”라는 프레임은 많은 경우 미술에서 “적절함”을 요구하는데, 인체의 크기와 기능하는 바를 기준으로 무게, 길이, 높이 등 작품이 지녀야 하는 도량 단위의 제약을 제시하기에 또 다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배윤환, 노은주, 강철규, 이의성, 이채은, 최수정 여섯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작업을 통해 이러한 한계들에 도전하고 우회하며 침범해 온 결과물에 대한 한 편의 옴니버스(Omnibus)이다. 특정 미디엄이 본성적으로 지닌 한계와 물성에 대한 확장과 변용(최수정, 이의성), 순수미술과 특정한 메시지 간의 동거 가능성에 대한 탐구(배윤환, 강철규, 이채은), 회화의 수행적 프로세스에 대한 새로운 대안(노은주) 등 다양한 주제로부터 이끌어낸 결과물들이 과연 어떠한 리좀적(rhizomatic) 하모니를 보일 것인가는 이 전시가 줄 수 있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일 것이다.

배윤환, 2021, 얼음 위의 일광욕, 캔버스에 유채, 112×145 cm, 갤러리바톤 제공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을 창의적으로 재조합하여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필치로 표현하는 방식이 “배윤환 b.1983)의 회화”를 규정해 왔다면, 근작은 의인화된 동물을 등장시켜 위트와 기묘한 분위기를 공존시키며 실체적 진실을 은밀하게 드러내는 방식에 집중한다. 파란색 보트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곰들의 시끌벅적한 한때를 묘사하고 있는 <얼음 위의 일광욕(Sunbathing on the Ice)>(2021)은 상하를 양분하는 구도와 역동적인 필치로 표현된 주변 유체의 움직임으로 인해 당면한 긴박감 또한 자아낸다.

강철규, 2021, 관통, 캔버스에 유채, 227×181cm, 갤러리바톤 제공

등단 소설가이기도 한 강철규(b.1990)가 작품의 모티브와 서사를 캔버스에 이식하는 과정은 하나의 이야기가 문자라는 체계 안에서 문학 작품으로 정착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회화를 매개로 언어가 가진 묘사의 한계 너머를 전유하게 된 등장인물들과 주변부는 활자화 된 스토리가 줄 수 있는 서사보다 더욱 풍부한 뉘앙스와 미묘한 계층 구도를 형성한다. 총 네 개의 장면이 수직으로 배열된 <관통(Penetration)>(2021)은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숲의 생성과 파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섬세한 필치로 다루고 있는데, 마치 하나의 장편 소설이 압축된 듯 정교하게 배치된 개별 플롯의 상호 작용과 클라이맥스의 고저가 돋보인다.

이채은, 2021, Rainbow Wings, 린넨에 유채, 45.5 x 100cm, 갤러리바톤 제공

이채은(b.1979)은 작가 자신이 속해 있는 동시대의 사회적 현상과 구성원들 간의 역학 관계를 선별적으로 수집하고 회화적으로 반영하는데 치중해 왔다. 이러한 전작들이 이미지들의 출처에 기인한 ‘르포르타쥬(reportage)’ 성격을 지녔다면, 최근에는 르네상스 화풍에 대한 주관적인 고증과 면밀한 관찰로 전면화 기법과 알레고리적 화면 구성의 유기적인 결합에 집중하고 있다. 얀 판 에이크(Jan van Eyck)의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1434-36) 중 천사 가브리엘의 상반신 모습을 차용한 < Rainbow Wings >(2021)는 원본이 가진 신성의 기법적 묘사에 충실하면서도 크롭핑(cropping)된 듯한 극적 화면 구성과 에어브러시의 사용으로 인해 작품의 동시대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최수정, 2021, 굴절, 캔버스에 아크릴, 자수, 150 x 150cm, 갤러리바톤 제공

최수정(b.1977)은 최근 캔 파운데이션의 레지던시를 기점으로 캔버스에 아크릴로 형상을 표현하고 그 위에 색실로 자수를 놓는 작업 방식을 보다 구체화하였다. 이국적 풍경의 식물이 등장하는 숲의 정경을 차용하여 RGB 컬러 메커니즘에 기반하여 재코딩하는 방식으로 생성된 화면은 원본의 외양은 유지한 채 그 경계가 번진듯한 착시를 일으키며 삼차원적으로 보인다. <굴절(Refraction)>(2021)은 이미지가 삼원색의 필터로 분리된 후 재차 적층된 듯한 효과를 자아내는데, 작가에 의해 배열된 각각의 지배적인 색면들은 부분적인 추상성을 강조하며 부유하듯 자리 잡고 있다.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꽃술에서 가지로 이어지는 부분에 자수된 색실들의 군집이 집적되어 있는데, 돌출된 색선이 광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캔버스 전면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이의성, 2019, Thermo°layer, 알루미늄, 밀랍, 가변크기, Image courtesy Project Space SARUBIA and the Artist

이의성(b.1982)은 우리 각자의 삶이 “노동”을 매개로 어떻게 복잡다단한 사회구조와 연결되어 왔고, 미술이 어떻게 그러한 시스템에 반문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주목해 왔다. 본질적인 속성을 바꾼 채 사물의 외양만 빌어 정교하게 제작된 작업들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데, 다다이즘의 수혜를 엿보이며 작가가 품은 의문들을 관람자에게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도로와 면한 별도의 전시 공간에 설치된 < Thermo°layer >(2019)는 격자 유리 창문이 설치된 일반적인 벽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문은 유리가 아닌 에어캡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왁스 패널임을 알 수 있다. 솔 르윗(Sol LeWitt)이 주창한 “스트럭처(Structure)”의 범주에 속하는 이 작품은 흥미롭게도 “레디메이드(Ready-made)”의 형식을 인용하면서도 그 어원 자체와 대립하는 특수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노은주, 2021, Portrait-Day, 캔버스에 유채, 145.5 x 97 cm, 갤러리바톤 제공

회화라는 매체가 그 속성상 캔버스에 붓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즉흥성과 우연성을 용인한다면, 노은주(b.1988)는 회화의 수행적 프로세스가 가진 보편성의 대안을 꾸준히 고민해 왔다. 디오라마(Diorama) 기법과 유사하게 재현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와 그 배경을 모형화하여 이미지가 점유하는 공간의 개연성과 맥락을 시현한 뒤, 관찰에 근거해 사실적으로 정체성이 모호한 물체들의 총합을 시각화하는 것이 작가의 방식이다. < Portrait-Day >(2021)는 하늘색 배경의 인공적인 공간에서 하부의 철사로 기립해 있는 흰색 덩어리가 화면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는 유화 작품이다. 검은색 패널은 캔버스의 오른쪽 후면에 자리 잡아 공간의 깊이를 확장해 주며 전면에 위치한 핑크색의 테두리는 물체들을 재현된 공간에 잡아두려는 듯 테두리를 따라 두툼하게 채색되어 있다. 견고한 흰색의 꽃과 가지의 존재는 화면에서 사선으로 솟아 오르며 현실성을 담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갤러리바톤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 116
02 597 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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