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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DERNIÈRES PEINTURES

2022. 6. 8 – 7. 15
베르나르 프리츠

View of the exhibition “Les dernières peintures” at Perrotin Seoul, 2022 Photo: Andy H. Ju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시각, 촉각, 청각의 앙상블: 베르나르 프리츠의 45년 추상화

프랑스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미술가 베르나르 프리츠. 그는 45년 동안 자신만의 개념적 추상회화를 전개해왔고, 이제 진정으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장이다. 2019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베르나르 프리츠: 후회 없이(Bernard Frize: Sans Repentir)>가 그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프리츠의 1977년 초기작부터 2019년 근작까지 총 60여 점을 선별해 기획한 그 전시는 한 명의 예술가가 창작한 동시대 시각예술의 스펙트럼과 페인팅의 감각이 얼마나 풍요로운 고원을 이뤘는지 보여주었다. 당시 전시장에서 그림과 마주한 감상자들은 ‘추상(Abstraction)’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관념이 철학의 언어가 아닌, 눈부신 색채와 역동적인 붓질이 가득한 화면으로 제시된 데 감탄했을 것이다. 또한 ‘추상화(abstract painting)’라는 현대미술의 익숙한 장르 안에서 어떻게 그처럼 다채로운 스타일이, 섬세하면서도 다이내믹한 표현 기법이, 변주되고 발전할 수 있는지 새삼 놀랐을 것이다.

Bernard FRIZE, Ader, 2022 Acrylic and resin on canvas 160 x 175 cm | 63 x 61 13/16 in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경험이 2022년의 우리 앞에 준비되어 있다. 70대에 접어든 원숙한 대가 프리츠의 신작들에서 이전의 그가 구현한 회화예술과는 또 다른 미학, 새로운 조형, 낯선 표현의 모드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인생의 절반이상을 창작 실험과 탐구의 여정에 헌신한 프리츠가 이번에는 더욱 ‘복합적인 감각의 회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우리 감상자는 오히려 매우 젊고 매력적인 프리츠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분명 프리츠이지만 프리츠가 아니다. 전자의 프리츠는 “규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작업 프로토콜 아래 일부러 화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기계적인 그리기 과정을 반복한 화가다. 그렇게 해서 수직과 수평의 교차, 일정한 붓질의 궤적 그 자체가 그림의 형식이자 내용이 되는 고유한 추상화를 완성한 원로의 프리츠다. 그런데 후자, 즉 2022년 신작의 프리츠는 마치 수십 년 동안 쌓아올린 자신만의 회화 표징(signa-ture)과 예술적 성취조차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벗어던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아니, 더 극적으로 서술하자면, 그 그림들은 캔버스 평면 위로 뛰어올라 에너지를 터뜨리고 대기 중의 입자가 되어 춤추는 어느 젊고 자유로운 영혼의 창작물로 보인다. 그만큼 프리츠가 창조적인 추상화를 새로 선보였다는 의미다.

Bernard FRIZE Iseg, 2022 Acrylic and resin on canvas 160 x 140 cm | 63 x 55 1/8 in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들이기에 나는 이토록 흥분해서 글을 쓰고 있는가? 사람들이 비평가의 과장이라고 비웃을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다. 일단 프리츠 추상화의 시그니처인 ‘직선의 붓질을 기계적으로 반복한 패턴’ 위로 ‘랜덤액세스의 비정형이고 유기적인 이미지들’이 나타났다.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맑은 색채의 아크릴물감띠/붓질이 수직의 배경을 이루는 위에서 블루, 레드, 그린, 옐로우 칼라들이 미디움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독특한 우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프리츠의 < Silus >와 < Apa >(2022)는 마치 오색찬란한 폭죽이 큰 소리를 내며 터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처럼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즐겁게 한다. 분명 눈으로 보는데도, 수직의 줄무늬 위에 뜬 원색 덩어리들이 ‘팡-’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또 안료의 크고 작은 입자들과 레진이 융합하면서 캔버스 사방으로 ‘촤아 -’ 퍼져나가는 상황을 소리로 듣는 것만 같다.

< Ader >, < Sabo >, < Kova >(2022) 를 감상할 때 우리의 지각은 또 어떤가? 마치 화려한 지느러미를 한껏 펼치며 맑고 차가운 물속을 느릿하게 유영하는 금붕어를 볼 때처럼 우리는 촉각적이 된다. 물의 온도와 물고기의 매끈한 몸의 살랑거림이 내 살에 닿아 피부로 느끼듯이 말이다.

그래서 요컨대 프리츠의 최근 회화는 ‘시각, 청각, 촉각이 앙상블을 이루는 추상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나아가 그가 자신의 회화를 떠받쳐온 그리드 구조와 선형적 질서를 해체하는 대신 거기에 우연과 즉흥이 만든 유기적 형상을 더함으로써 자신의 추상화 미학을 한 뼘 더 확장시켰다고 말하고 싶다. 이 원숙하지만 동시에 매우 젊은 화가의 화면 위에서 아름다운 유기체의 운동과 기하학 이전의 자연 질서가 그렇게 새로 주조되고 있었다.

Bernard FRIZE Kova, 2022 Acrylic and resin on canvas 110 x 85 cm | 43 5/16 x 33 7/16 in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나는 2014년, 2017년에 이어 세 번째 프리츠의 회화에 관한 평론을 쓰고 있다. 그런데 매번 그의 신작들에 감각적으로 놀라고 지적으로 흥분한다.

프리츠의 추상화와 조응하는 미학의 언어를 생각하고 서술하는 매 순간이 즐겁다. 특히 이번 신작을 마주했을 때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고 후두엽(occipital lobe)이 각성된 듯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프리츠만의 새로운 회화 실험은 추상에서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과 청각이 동시에 자극받을 가능성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의미에 서 곧 프리츠의 추상화를 감상할 당신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다. ‘그림을 본다’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질 것을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더 큰그림의 세계, 당신의 감각이 벌떡벌떡 숨 쉬고 더 깊고 풍부하게 숨을 뱉어낼 수있는 미의 고원을 만날 것이다. 물론쉬운 일이 아니다. 고정관념이란 단지 사고의 경직만이 아니라 취향과 감각이 특정 경향으로 편향된 결과니 말이다. ‘보는 대로 믿기’ 와 그 역인 ‘믿는 대로 보기’가 (Seeing is Believ-ing, Believing is Seeing) 둘 다 맞는 말인 이유다. 그런데 예술은 그렇게 벗어나기 어려운 고정 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다. 무려 4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 동안 프리츠가 추상화를 그려온 근본 동력, 하지만 매번 새로운 창작의 들판을 거닐어온 메커니즘이 또한 그렇다.

– 강수미 (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Bernard FRIZE Silus, 2022 Acrylic and resin on canvas 91 x 73 cm | 35 13/16 x 28 3/4 in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View of the exhibition “Les dernières peintures” at Perrotin Seoul, 2022 Photo: Andy H. Ju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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