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LEE & BAE
2022. 4. 29 – 5. 29
이인현, 이승희, 장승택
갤러리이배는 2022년 4월 29일부터 5월 29일까지 ‘침묵의 파장’展을 개최한다. 아름다운 수영강변을 마주한 예술 공간에서 갤러리이배의 재개관을 기념하며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10여년에 걸친 갤러리이배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전시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적 철학과 작가적 정신으로 한국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장승택, 이인현, 이승희 작가와 갤러리이배의 만남은 순수미술공간이 추구해야 할 수준 높은 전시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 L’episteme of Painting‘, 장승택의 ’겹회화 Layered Painting’, 이승희의 ‘공시성synchronicity’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에 천착하는 방법을 통해 전개한 침묵의 울림과 그 파장들이다. 예술이 미적, 철학적 공감과 공유로 다른 이의 삶에 고귀한 자리를 허락해야 한다면 세 작가의 작품은 그 가치로 인해 이미 그 역할을 충실히 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인과적인 우연성의 전개는 침묵이라는 정신을 수반한 물리적인 행위와 결합하여 그로 인해 파생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을 초래하고 예술적 승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측면이 세 작가의 작품이 관객과 공유되는 공통된 지점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가공하지 않은 캔버스에 단색 유채물감을 사용하여 극히 간결한 화면을 완성하는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 L’episteme of Painting’ 시리즈는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어 번져 나오는 양태와 서서히 옅어지거나 진해지는 색의 계조를 보여준다. 작가가 그의 회화작업 전반을 ‘회화의 지층’으로 통칭하는 것은 자신의 회화가 단순 감상의 대상으로서 하나의 예술작품이기 보다는 이 시대 모든 회화를 아우르는 기본 원리, 즉 현대회화의 ‘에피스테메’를 탐구하는 일련의 시도로서 읽혀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지 표현인 것이다. 그는 물감을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에서 회화의 상징과도 같은 붓의 사용을 자제한다. 그에게 회화의 화면은 작가의 노동을 통해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두 물질이 조우하는 장소일 뿐, 작가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그의 회화에는 작가의 붓 자국도 지문도 사인도 없다. 오직 물질과 그것이 만들어 낸 자발적인 일루전이 존재할 뿐이다.
회화적 본질을 파고드는 장승택의 작업은 작품의 내적 완결성과 형식적 독창성으로 동시대 회화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의 ‘겹회화 Layered Painting’ 시리즈는 상이한 색채의 붓질들로 중첩된 깊고 어두운 면과 가장자리에서 미세하게 겹쳐져 있는 물감들의 잔존물로 드러난 회화성을 보여준다. 대상의 본질이 부지불식간에 남겨놓은, 의식과 응시를 벗어나 가장자리로 밀려난 희미하고 부수적인 잔존물이듯이 그의 작품은 ‘회화적 본질이 그것의 잔재에 있다’ 는 회화적 수사(rhetoric)를 여실히 드러낸다. 작가는 여러 개의 평 붓을 일자로 이은 대형 붓으로 물감을 단번에 내리 그어 반투명 막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각기 다른 색으로 동일한 행위를 반복한다. 레이어의 중첩을 통해 구축한 깊이를 알 수 없는 투명하거나 반영적인 화면은 회화의 본질과 구조적 특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전통적인 도자의 개념을 해체하고 매체의 새로운 해석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이승희 작가는 사유의 도구로서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도자회화(평면도자)’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였다. 기존의 ‘Clayzen’ 이나 ‘TAO’ 시리즈를 통해 입체적인 도자기를 자신이 고안해낸 독창적인 평면(부조)방식으로 도자 판에 조형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공시성 synchronicity’ 시리즈는 자연채광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공간의 특수성을 반영한 신작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그려내며 풍부한 색의 향연을 선사한다. 이 작품들을 통해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도자회화의 본질에 충실했던 그의 작업이 공간과 시간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극히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두께 0.8cm의 편평한 흙 판 위에 전개된 색면 도자회화는 디지털의 시공간을 뛰어 넘는 초현대적메타포와 정신적 충만감을 선사한다.
이인현 작가는 195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경예술대학 대학원 미술연구과를 졸업했다. 1985년 토오노화랑(동경)을 비롯하여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였으며 공간국제판화대상전(우수상)과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대상)에서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장승택 작가는 1959년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84년 동아미술대전 수상을 시작으로, 수 십 여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국내외에서 활발히 작품을 선보여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승희 작가는 1958년생으로 청주대학교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했다. 2008년 이후 중국 징더전(景德鎭)에서 작업하고 있으며 서울, 베이징, 교토, 뉴욕, LA, 파리, 런던, 밀라노 등 세계 주요도시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갤러리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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