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ient Drama 아주 오래된 드라마

[ARTICLE] GALLERY SEIN

2021. 12. 1 – 12. 17
이준원

춤추는 사람들, Dancing people, Acrylic and paint on canvas, 90.9×72.7cm, 2021

Q: 전시주제 ‘토템(totem)’은 어디에서 시작이 되었고 어떤 의미인가요?
A: ‘인간다움’의 정수는 믿음. 무언가를 원하고 믿고 행동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템은 그런 의미에서 나라는 한 개체가 생을 해쳐나갈 영성의 힘을 주는 존재입니다. 토템시리즈는 그런 존재들이 만드는 어떤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주제입니다. 그림이라는 원시적 행위의 원천은 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기원전 동굴벽화, 성스러운 신전 벽화, 2차 세계대전 폭격기 노즈아트(Nose art), 투사의 워페인트(War paint).. 제가 ‘그림’이라는 얼룩을 남기는 행위의 원천도 동일합니다.

Q: 불안하고 혼돈의 현대사회 속 우리들이 위로 받고 자유로움을 얻기를 바라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요?
A:제 그림에서는 항상 무엇인지 모를 존재들이 뭐 하는지 모를 것들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작품 속 열띤 현장을 바라보며 영성적인 힘을 느끼고 자신의 삶 속 현장으로 다시 뛰어들 의지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그러하다. 지금뿐만 아니라 항상 그래왔다.. 라는 엄중함과 당연함이 어떨 때는 담담한 위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Q: 분리된 인체들은 그로데스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도덕적 세계와 합리적 사회 질서에 대한 인간적 믿음의 상실 등 에서 초래된 비극과 희극의 혼합물로 잔인하게, 또는 화려하게 다가옵니다.
A: 유기체적 객체를 분리하여 도식화하는 이유는 특정 존재, 특정 현상을 작품에서 지우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좀 더 적나라하게 와르르 펴서 더 강렬한 현장을 만들기 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표현하는 존재나 풍경이 특정한 무언가를 담기보다는 보편성과 절대성에 근접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해체 장면은 어떤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믿음, 배신, 진실, 거짓, 비극, 희극 등이 뒤섞여 엉키며 만들어내는 격한 이야기로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작가특유의 자동기술법은 마치 독일의 초현실주의의 작가들 작품이 떠오르게 합니다. 연관성이 있나요?
A: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뉴욕 추상표현주의 사조도 좋아합니다. 독일 특유의 이성 중시, 추상표현주의 순수한 즉흥성을 예술의 주요한 가치로 생각하다 보니 직간접적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이성적인 작업관을 갖고, 표현은 원시적으로 하길 선호합니다.

푸른 토템 Blue Totems, Acrylic and paint on canvas, 40×20cm, 2021

Q: 작품 앞에 서면 강한 힘과 에너지가 느껴지고, 분리된 인체들이 강렬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제 그림에서 자주 나타나는 객체들은 손과 발, 장기, 근육, 그리고 눈입니다. 그것들은 해체되고 새롭게 조합되며 새로운 의지와 방향성, 창조성을 표현합니다. 손과 발은 부여되어 끊을 수 없는 인간 특유의 의지(will)를 뜻합니다. 장기와 근육 줄기는 작가가 인체 내부의 구조물들을 인식하며 처음 죽음을 인식했던 자전적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것들은 일종의 물리적 시스템으로서의 인간에게 부여된 방향성 또한 내포합니다. 마지막으로 눈은 의지와 방향성을 부여받은 존재(Existence)들을 상징합니다.

Q: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는 듯한 팔의 이미지가 작품 전반에서 등장하는데, 토템의 일부인 것인지, 상징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도구는 인간의 의지 와 원(願)이 더욱 구체화됨을 상징합니다. 다만 역시 특정 도구가 생각나지 않도록 해체화하거나 더 뭉뚱그려 표현합니다. 이러한 원시적 도구들과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종(種)의 긴 드라마를 느낄 수 있게 만듭니다.

Q: 작가 특유의 자동기술법 automatisme을 통해 작가의 무의식에 대한 자유를 표한하기도 하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상상도 무한하게 하기 위한 것인지요?
A: 저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차용한 드로잉으로 반추상적 형상을 구축하며 무의식에 쌓인 것들이 타자화합니다. 이 행위의 기원을 말씀드리면, 에스키스와 스케치하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힘의 손실과 의지의 변질이 일어남을 느끼고 한동안 작업을 멈추고 고민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끝에 우연히 캔버스에 먹물을 쏟아 만들어진 추상적 형상에 제가 즉흥적으로 반추상을 더하여 완성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제 작품은 에너지를 쏟아내어 빚고 응축하는 과정이기에 이런 방식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느꼈고 지금도 제 주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은 특별히 에스퀴스가 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즉흥적으로 그려내가다 보면 언제 하고 있던 작품이 완성이라고 생각되어 마무리하시는 지요?
A: 화면 속에 일정 이상의 힘이 느껴지는 존재가 출연하는 순간, 그리고 그 존재들이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시점에 제 작업은 사실상 완성됩니다. 그 뒤의 과정은 사실 부수적인 것입니다.

Q: 작품 속 인체들은 자유롭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듯 하지만 결국 캔버스 프레임이 갇히게 되어 그 안에서 뒤엉켜 있는 듯한 이미지로도 다가옵니다. 작품 전반에서 사각 프레임을 의식한듯 여백이 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혹시 이것에 대한 의미가 있으신지요?
A: 힘은 발산적인 힘, 수렴적인 힘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자, 수렴적인 힘이 더욱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급 자동차 디자인, 아이폰, 맥북.. 모두 수렴적인 힘을 통하여 강렬한 디자인을 완성하죠. 수렴적인 힘을 담고자 하다 보니 전체 형상이 모두 보이는 작품을 그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좀 더 현장감 위주의 작업에 임할 때는 프레임 바깥까지 형상이 벗어나는 작업도 자주 그립니다.

Q: 입체작품이 인상깊습니다. 입체작품은 먼저 캔버스에 그린 작업을 옮기신 것인가요? 앞으로도 매체를 다양하게 사용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A: 강철이라는 소재에 끌림을 강하여 느껴왔습니다. 그러던 중 제 작업과 잘 어울리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 속에 가장 주요한 소재가 강철이니까요. 그래서 기존의 작업 중 입체화할 형상을 선별하여 시험적으로 몇 점 제작해 봤습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조금씩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거대하게 제작해 보고 싶네요.

Q: 작가님께서 토템시리즈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최초의 시각적(예술적, 미술적)경험을 기억하시는지요? 기억하신다면 어떠한 경험이었는지요?
A: 어릴 적 인체의 내부 존재를 알게 된 후 죽음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뭔가 의도적인듯한 시스템, 정교함, 일사불란한 다채로움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를 접한 건 아니고 평범한 의학 매체를 통해서 본 것 같아요) 그 후에는 2차 세계대전 폭격기에 페인트로 그려지던 노즈아트(nose art), 고대 바바리안들의 워페인트(war paint) 등 죽음과 직면하는 것이 곧 업인 사람들이 남긴 얼룩들에게서 강한 영감을 받곤 했습니다.

토템 Totem, Acrylic and paint on canvas, 90.9×72.7cm, 2021

Q: 작품이 공간에 걸렸을 때 어떠한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지요?
A: 일상성이 지배했던 공간을 삽시간에 그 어디보다 열띤 생의 현장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작품을 바라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존재, 다른 이야기, 다른 메시지를 보는 이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즉흥적으로 작업 하시다보면 색이 다양하게 될 것 같은데, 이에 반해 색상이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용하시는 색은 어떻게 결정되는지요?
A: 컬러는 즉흥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컬러는 고유의 독자적인 에너지를 지닌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하나의 컬러를 새로 적용할 때 고민을 좀 많이 하는 편입니다.

Q: 전시타이틀 이자 작품제목 < Ancient Drama (아주 오래된 드라마) >의 의미와 정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우리 내면 마음의 원리에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기나긴 이야기를 통해 쌓인 드라마가 담겨있습니다. 기원전 신화와 최신 넷플릭스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이미 우리 내면에 켜켜이 쌓여 있던 드라마,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을 느낄 수 있기 바랍니다.

Q: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됩니다. 장기 계획이 있으시나요?
A: 평생 작업을 할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작품 주제는 작가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주제가 아니고 저라는 한 개체, 사상의 부산물입니다. 따라서 쉬 바뀌진 않을 듯합니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나, 배색, 재료의 속성 등에 대한 공부를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페인팅이라는 도구가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도구이지만 언젠가는 페인팅을 벗어날 날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Q: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A: 인류(humankind) 보편적 이야기를 이성적이면서도 원시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또한 대체 불가능한 시각적 엔진을 지닌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준원- Q&A
Q:김연혜(갤러리세인 수석큐레이터)
A:이준원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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