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f.org는 Internet Explorer 브라우저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습니다. Edge, Chrome 등의 최신 브라우저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

서용선

전시 전경 (1)

’그리기’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자 태도죠, 이것은 작가의 정신과 연결되는 가장 긴밀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서용선, 2016년

갤러리JJ는 ‘그리기’를 중심으로 ‘인간’ 탐구를 실천해오고 있는 작가 서용선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은 갤러리JJ에서 열리는 서용선의 여섯 번째 전시로, 역사 연작 가운데 단종 주제의 드로잉 작업을 조명한다. 본 전시는 서울의 네 개 갤러리와 영월의 전시관에서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동시에 진행되는 《서용선의 단종 그림》 연합전시 중 하나로, 작가가 1986년부터 현재까지 40여 년을 이어 온 단종 작업의 흐름을 드로잉을 통해 살펴본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의 표현성이 짙은 회화였다.

서용선, 계유년 Year of the Fowl, Acrylic on paper, 50 × 66cmm, 2006

이와 관련되었지만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거나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단종 드로잉들을 마주하는 일은 무척 새롭고 재미가 있다. 지금까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수많은 고찰이 있어 왔음에도,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드로잉이라는 방식과 서용선 예술 화두의 정점인 ‘역사’ 작업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을 탐색해온 단종 주제의 특성상, 그의 작업 근원에서의 깊은 소통이 기대된다. 전시는 익숙하고도 낯선 단종 역사,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들은 어떻게 그림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으며, 지금도 어떤 예술적 화두로서 새로운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서용선, 단종부부 King Danjong and Queen Jeongsun, Charcoal water-tinned glue on paper, 24 × 33cm, 1999

서용선은 일찍이 1980년대 초 작업 활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한반도를 포함하여 지구촌 곳곳을 끊임없이 다니고 세상을 관찰하면서 작업을 펼쳐왔다. 서울, 뉴욕, 베를린과 같은 현대 도시 공간에서부터 철암(2001-), 독도(2003-), 양평 가루개마을(2020-2021), 암태도(2022-2023) 등 공동체 현장과 공공미술프로젝트, 영월의 청령포와 같은 역사ㆍ문화적 기억이 깃든 장소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조건을 마주하는 그의 곁에는 늘 스케치북이 있었다. 그는 역사와 신화를 문헌으로 고찰하고 현장을 방문하여 실제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람들과의 진솔한 만남과 이야기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체화해 드로잉으로 남겨왔다. 스치는 순간이나 인상을 재빠르게 드로잉으로 생생하게 포착하고 기억하며, 현장에서의 광고 전단지나 포장지조차도 적극 활용하는 등 순간의 사고와 활동의 흔적들을 남기고 치밀한 생각 전개의 자취를 남긴다.

서용선, 상황 The State of Affairs, Pencil, Acrylic on paper, 50 × 66cm, 2006

곧 작가는 자신이 속한 도시의 분위기를 기록하고, 역사의 기록과 이야기로부터 생각을 끌어오고 기억하는 행위로서 드로잉을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실천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궁금해하는 그의 관심사가 결국 삶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목격하고 몸으로 체험해야 가능한 일이기에, 신체 행위가 적극 반영되는 날것 그대로의 드로잉 표현 기법이야말로 그의 작업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일 수 있다. 시각예술 자체가 드로잉을 품고 있겠지만, 역동적인 ‘선’들의 터치가 특징적인 서용선의 작업은 선의 기본인 드로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서용선, 소년왕, Acrylic on paper, 64.5 × 49cm, 2006

이처럼 작가가 늘 자기 자신에서 시작하여 세상을 알아가고 기록하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이후 지금껏 일관되게 이어온 작업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그의 작업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의 회화적 관심이 가져온 독특한 조형세계의 흔적이다. 이미 그의 1986년까지의 초기 드로잉을 모은 두 권의 책이 출간되어 있다. 또한 작가가 직접 저술한 소책자 『유럽미술의 변화ㆍ소묘』(1986)를 통해서 동서양의 전통회화 이론과 함께 드로잉, ‘그린다는 것’에 관해 깊은 관심과 이해를 보임으로써 드로잉이 그의 시각 언어에서 주요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06년에 국내에서 최초의 드로잉센터인 소마드로잉센터(SOMA Drawing Center)가 개관할 당시 뉴욕의 드로잉센터를 방문하는 등 그가 초기 준비위원으로서 역할을 한 바 있다. 그의 드로잉 개인전은 1995년 뉴욕에서의 《자화상 드로잉》을 시작으로 2016년 아르코미술관에서는 대표작가전시로 방대한 규모의 서용선 드로잉을 택했다.

서용선, 오세암 Oseam Hermitage, Graphite, watercolor on tracing paper, 27 × 17.8cm, 2025

이번 ‘단종’ 주제의 연합전시는 2014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의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 전시 이후에 이 주제를 가장 폭넓게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일 것이다. 1993년 신세계갤러리의 개인전 《서용선 1987-93 노산군(단종)일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전시를 통해 잊을 만하면 우리는 단종 역사 그림을 다시 마주하곤 했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단종 연작은 ‘역사’를 화두로 서용선 작업세계의 중추를 이루며, 우리의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 속 흔적 같은 독특한 위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당시 우리가 시각예술에서 흔히 접할 수 없었던 한국 역사의 기억을 형상화하여 시선을 사로잡았고 현대 역사화에 관한 논의를 한국 화단에 불러올 수 있었다.

서용선, 음모 Plot, Acrylic on paper, 50 × 66cm, 2006

소나무 그림으로 화단에 데뷔한 이후 서용선의 ‘역사’ 작업은 자화상, 당시 변화무쌍하게 현대화되어 가는 도시 서울의 모습을 지나서 지구촌 도시 공간을 향한 작업, 신화 작업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저마다의 군락으로 오늘날 삶의 현실과 조건에 본질적으로 연결된다. 작가는 “현실의 모습은 역사화된 것”이며, “그림 그리기는 현실의 겉모습을, 사실의 흔적들을 헤쳐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나 현재나 어김없이 작동하는 부조리한 삶의 현장에 내재한 메커니즘이나 보이지 않는 힘은 특유의 표현성으로 왜곡된 비현실적인 평면을 가로지르는 불가사의한 에너지로 나타나 우리 앞에 리얼한 기록으로 다가선다. 노산군일기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철암그리기 등 대부분의 연작들은 각각 십수 년 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그에 관련된 이야기, 역사의 기억들을 소환하면서 긴 궤적을 남기는데, 이는 서용선 예술의 특별한 점이다. 단종의 비극적 삶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는 그중 작가가 가장 오래도록 천착하고 있는 소재다. 누구에게는 아니 대부분에게는 구태의연하거나 이미 잊힌 작은 역사, 혹은 역사가 되지 못한 한 조각 이야기일 수 있으나, 작가에게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

서용선, 청령포 Cheongnyeongpo, Acrylic on paper, 30 × 40cm, 2026

단종 역사 드로잉은 작가가 치밀한 인문학적 연구와 함께 역사와 그 기억이 새겨진 온갖 현장을 누비며 몸 체험으로 엮어내는 지난한 예술 노정의 최전선에서 맞닥뜨린 생각과 감각의 뭉치이다. 본 전시는 드로잉이라는 근원적 방식으로 서용선 예술 세계의 핵심을 만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

갤러리JJ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30길 63
02-322-3979

WEB  INSTAGRAM  FACEBOOK  YOUTUBE  ARTSY

Share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