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1 – 3. 25 | [GALLERIES] GalleryMEME
나카바야시 아리사, 에노모토 마리코, 최나무, 이은경, 정수정

전시 전경 (1)
작가들의 세상이 궁금합니다. 그들의 계절은 어떻게 순환하는지, 어떤 모양으로 흔들리는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캔버스 속 풍경을 통해 그들 세상을 들여다 봅니다. 다정함도 있고 기이함, 욕망 같은 것들도 보입니다. 그 어느 것과도 닮지 않으려는 의지로 세상과 불화하면서 자신만의 전쟁을 치러내는 과정을 만나기도 합니다.

전시 전경 (2)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고통을 기리는 행위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은 자신의 비참성에 대해 참으로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만 위대성의 계기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예술가는 어떨까 싶습니다. 자기 분열과 해체의 과정에 동반되는 불안과 고통을 원동력 삼아 더 높은 정신의 이끌림으로 나아가기를 열망하는 존재들이니 말입니다. 자신의 원형을 찾아나서는 그들의 도전은 때론 불편하고 가혹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전시 전경 (3)
그런데 희한하게도 뒤틀림, 불쾌와 반란 같은 불온한 질감들이 더없이 매혹적인 풍경을 직조해내기도 합니다. 슬픔을 외면하면 사랑도 외면하게 될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은 그것들이 눈부신 유희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고통과 쾌락이 맞닿아 있는 경계 어디쯤에서 두렵지만 아름다워서, 외면하고 싶어도 끈질기게 마주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Lee Eunkyong 이은경, pose 1, Acrylic on cotton, 156x91cm, 2025
이은경은 불안의 시선을 다룹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력은 배제나 차별의 시선과 어떻게 마주했을지 가늠해 보게 합니다. 캔버스 속 인물들은 극한의 공포와 마주한 작은 동물처럼 몸을 한껏 부풀려 두려움에 맞섭니다. “나는 어떤 것도 외면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것을 그린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거울을 마주하고 기록하듯 이어오고 있는 자화상 시리즈는 억압된 본질적 자아와 외연적 자아의 만남을, 그 분열의 지점을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직면하는 고통을 통해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찾아가는 여정일듯 합니다.

Nakabayashi Arisa 나카바야시 아리사, Untitled_Area to Area 2025-01, Acrylic, oil pastel on paper, 72.7x91cm, 2025
나카바야시 아리사의 시선은 자연을 향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인간의 모습을 얹어냅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나뭇잎이 되어 위태롭게 흘러가기도 하고 세상 기준에 의해 함부로 규정된 누군가의 현실은 무참히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가 되기도 합니다. 뿌리 내린 자리에서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는 식물의 몸을 빌려 작가는 그 아픔에 가닿으려 합니다.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에선 보랏빛 밤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기둥처럼 솟구쳐 오르는 불꽃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아와 타자, 이쪽과 저쪽, 중심과 주변, 포용과 배제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Choi Namu 최나무, Camouflaged Portrait 위장된 초상, Oil on canvas, 116.8×182.2cm, 2025
안으로 무너지는 내면의 균열과 붕괴를 자연 이미지로 치환하는 최나무의 풍경은 뜨겁습니다. 레이저 모양으로 뿜어져 나오는 눈물, 얼굴을 뒤덮은 뾰족한 산봉우리들과 가시덤불, 피흘리는 심장에서 싹을 틔우는 식물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 때문입니다. 불안과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 작가는 그것을 견뎌내기 위해 더욱 강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한다고 설명합니다. 천적의 부릅뜬 눈을 제 날개에 새긴 나방의 보호색 전략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최나무의 심리적 풍경 속의 뜨거움과 격정은 파괴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길로 흐르는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생존을 위해 진화를 향해가는 확장의 몸짓이기도 합니다.

Enomoto Mariko 에노모토 마리코, Women I, Oil on canvas, 91x72cm, 2025
에노모토 마리코의 인물화는 시선 자체를 차단합니다. 존재의 의미와 내부로부터의 충동을 드러내기 마련인 눈의 자리에 꽃과 동물 등 불가능한 이종조합의 사물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구도와 배경, 의상, 얼굴의 각도까지 전형적인 방식을 따른 인물화지만 어느 누구의 초상도 아닌 점이 흥미롭습니다. 자아의 내경을 첨예하게 비춰주는 눈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누구나의 초상이 될 수 있기도 합니다. 낯설고 부조화스럽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관객을 자신과 마주하는 내면의 공간으로, 그리고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자화상의 캔버스로 이끌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Jung Soojung 정수정, Crowned cranes, Oil on canvas, 165x95cm, 2021
자연과 문학, 신화 속 존재들의 세계를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펼쳐내는 정수정의 풍경은 꿈 속의 생생한 경험과도 같은 기묘한 감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작가는 자연과 문명의 위계, 상상과 현실의 경계, 욕망과 관습의 한계에 도전하는 내러티브를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번안해 오고 있습니다. 생경한 도상, 과감한 색감과 빛을 시도한 여인 초상 시리즈는 오랫동안 관습처럼 지켜져 오던 인물화의 전형을 의도적으로 비껴가는 실험입니다. 얼굴 전체가 낯선 사물로 가려지고, 물감으로 거칠게 뒤덮히고, 어두운 그림자로 물든 초상들은 화면 가득 넘쳐나는 강렬한 생명력으로 세상의 관습과 구속을, 그 불온한 기운을 상쇄해 냅니다.

전시 전경 (4)
작가들은 치열하게 자신의 세계를 일궈 나갑니다. 내면 안에 깊이 자리한 거대한 불안과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화해하면서 말입니다. 처음으로 한국 전시에 참여하는 에노모토 마리코는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지구 끝에서 지옥 너머로 (중략) 내 안의 불온한 그것들을 삼켜낼 수 있는, 한없이 크고 묵직한 어떤 것을 그린다.” 이들의 의연하지만 쓸쓸한 여정이 유희의 순간과 종종 마주치기를 바라봅니다.
– 김현진 (갤러리밈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