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명

podo20210718, 200x100cm, wood frame with pigment print on matte paper. 2021
우리는 사물을 하나의 의미로 이해하려는 습관에 익숙하다. 그러나 고려명의 작품 앞에서 그 습관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의 이미지 속 포도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포도는 더 이상 과일이 아니며 그것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생성과 소멸을 동시에 품은 채 열려 있는 존재의 형상이다.
podo20240315, 200x100cm, wood frame with pigment print on matte paper. 2024
카메라 앞에 놓인 포도는 하나의 형상이지만, 그 형상 안에는 서로 다른 상태가 동시에 깃들어 있다.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물과, 그 사물 안에 잠재된 또 다른 차원의 실재.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살아 있음과 사라져 감, 감각과 사유는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표면 위에서 겹쳐진다.
podo20240630, 200x100cm, wood frame with pigment print on matte paper. 2024
이번 전시 〈DUAL〉에서 그 이중성은 형식적으로 더욱 선명 해진다. 블랙과 멀티컬러. 같은 포도, 같은 응시에서 출발하지만 화면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태로 갈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분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두 개의 방식이다. 블랙에서는 시선이 멈추고, 멀티컬러에서는 시선이 흔들린다.
podo20240814, 200x100cm, wood frame with pigment print on matte paper. 2024
작가는 포도를 극도로 근접해 촬영하고, 대형 인화로 확대함으로써 대상의 물질성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나 그 집요한 사실성은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선명해진 표면은 사물을 이해하게 하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주름진 껍질, 분가루의 입자, 얼어붙은 흔적들은 대상을 이해하게 하기보다, 바라보는 행위를 다시 의식하게 만든다.
podo20240907, 200x100cm, wood frame with pigment print on matte paper. 2024
고려명의 포도는 풍요를 상징하지도, 소멸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규정된 의미 이전의 상태로 놓여 있으며, 보는 이가 스스로의 시선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그 시간 속에서 관객은 사물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podo20241014, 200x100cm, wood frame with pigment print on matte paper. 2024
〈DUAL〉은 둘로 나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 가진 두 개의 얼굴을 끝까지 지켜보는 응시의 기록이다. 우리에게 어떠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다만 조용히, 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둘 뿐이다.
-갤러리나우 송지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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