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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경의를

김정명

12월 6일(토)부터 12월 27일(토)까지 부산 해운대구 맥화랑에서 김정명 작가의 개인전 《그들에게 경의를 (To Them, With Honor)》이 개최됩니다.
《그들에게 경의를》 전시 전경 (1)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정명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계명대학에서 미술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82년부터 2008년까지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에 재직하였습니다. 반세기 넘게 회화, 조각, 오브제, 설치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적 흐름을 개척해온 작가입니다. 〈스크랩〉, 〈책〉, 〈손가락〉, 〈말풍선〉 등 다양한 연작을 통해 인간의 자의식과 문명, 이미지의 과잉과 공허를 탐구해온 그는, 최근 작업인 〈예술인자〉와 〈그들에게 경의를〉 시리즈를 중심으로 폭넓은 작업 세계를 이번 전시에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예술사의 계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사유하며, 파편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입니다.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 사고가 교차하는 지점’을 강조해온 그는, 오랜 시간 구축해온 조형 언어와 예술 거장들의 흔적을 결합해 새로운 입체 회화로 확장합니다. 《그들에게 경의를》는 과거에 대한 헌사이자 미래를 향한 질문이며, 우리가 어떤 예술적 DNA를 계승하고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안합니다.
 
《그들에게 경의를》 전시 전경 (2)
 
그들에게 경의를 – 파편으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예술의 계보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정명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한국 현대미술의 한 축을 형성해왔다. 회화와 조각, 오브제와 설치를 넘나드는 경계적 실험을 일찍이 자신의 조형 언어로 삼았으며, 1970년대 중반의 〈스크랩〉과 〈빨〉 시리즈를 시작으로, 〈프레임과 캔버스〉, 〈카렌다〉, 〈책〉, 〈손가락〉, 〈공룡〉, 〈혀〉, 〈뼈〉, 〈포켓〉, 〈말풍선〉, 〈큰머리〉에 이르는 연작을 통해 일상의 사물과 만화적 기호, 역사와 신화, 교육과 놀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말하며 기억하는가’라는 질문을 은근하면서도 날카롭게 환기시킨다.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계명대학교에서 미술교육학을 공부한 뒤 1982년부터 2008년까지 부산대학교 예술대학에서 교육자로 활약한 그는, 작가이자 연구자로 살아온 세월만큼 폭넓은 층위를 작품 안에 켜켜이 축적해 왔다. 이번 개인전 《그들에게 경의를》는 그의 궤적의 가장 최근 지점인 〈예술인자〉(2021– )와 〈그들에게 경의를〉(2023– ) 시리즈를 중심으로 회화·입체·설치 작업을 한 자리에서 조망한다. 오랜 세월 “그림은 결국 그 시대의 정신”이라 믿으며 “남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실천해 온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예술사의 더욱 넓은 맥락 속에 다시 위치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에게 경의를》 전시 전경 (3)
 
파손된 물감에서 발견한 ‘예술인자’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의외로 ‘사고’에 가까운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대형 아크릴 작업이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을 때, 작가는 그 파편 속에서 칸딘스키, 폴록, 마티스, 피카소, 모네 등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흔적을 떠올렸다. 작은 물감 조각들 속에서 그는 “작가들의 DNA”를 보았다고 말한다. 단순한 물질적 잔해가 아니라, 예술의 역사와 미감, 실험과 실패의 흔적이 응축된 “정신의 보석”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예술인자〉 시리즈(2021– )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버려질 법한 물감 파편에 머리와 꼬리를 부여해 유리판 위에 유영하는 생명체처럼 배치하는 행위는, 재료를 조형적 요소로 다루는 차원을 넘어 ‘예술이 또 다른 삶으로 환생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물감은 더 이상 그림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형상을 갖고 말을 건네는 존재가 된다. 작가가 말하듯, 이 물감 부스러기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정신의 값진 보석”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태도는 김정명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문명 비판적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책〉, 〈손가락〉, 〈말풍선〉, 〈큰머리〉 시리즈에서 작가는 지식과 정보,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발생하는 공허와 긴장을 드러낸 바 있다. 〈예술인자〉에서는 그 비판적 시선이 ‘파편’이라는 형태로 응축되며, 그 속에서 다시 생성의 에너지가 솟아난다. 이는 “비판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원적 대답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경의를》 전시 전경 (4)
 
명화와의 교감, 그리고 ‘그들에게 경의’
2021년부터 이어진 〈에너지 교감〉 연작에서 김정명은 명화 인쇄물을 구겨 요철을 만들고, 그 위를 유리판으로 덮은 뒤 물감을 안팎으로 유동시키며 옛 작품과의 교차점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원작의 재현이나 패러디가 아니라, 이미지와 재료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긴장과 교감이다.
〈그들에게 경의를〉 시리즈(2023– )는 이러한 교감의 방식을 한층 직접적으로 확장한 작업이다. 워홀, 바스키아, 피카소, 모네, 마네 등의 초상과 작품, 상징적 요소는 작가의 색채와 조형 감각, 그리고 물감 파편에서 비롯된 에너지와 만나 입체 회화로 재탄생한다. 
어릴 적 집안에 걸려 있던 성인·현인들의 초상과, 학창 시절 방에 붙였던 음악가·문학가의 사진을 떠올리며 작가는 자문한다. “정작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미술가들의 사진은 왜 붙이지 못했을까?” 독창성에 대한 집착, 아류와 답습에 대한 알레르기로 인해 “미술가의 사진”을 방에 걸지 못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 그는 그들과의 거리두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빚’과 ‘감사’를 ‘경의’라는 형태로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나 역시 그 계보의 한 끝에 서 있다”는 자기 인식의 선언이자, 예술이 궁극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이다.
 
김정명, 그들에게 경의를(시리즈 중 일부), 2023-2025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자리
김정명은 학생들에게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 사고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대를 보는 눈이 생긴다”고 강조해왔다. 수평적 사고가 동시대 시각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의미한다면, 수직적 사고는 예술사·정신사·철학과 같은 시간의 깊이를 말한다. 이번 전시는 이 두 축이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드문 현장을 포착한다.
파편과 명화, 물감과 인쇄물, 역사적 인물과 관람자, 평면과 입체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작가는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매개자로서 예술의 에너지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질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회고적이면서도 현재적이고, 동시에 미래를 향해 열린 구조를 갖는다. 여기서 ‘경의’는 단지 과거를 향한 헌사에 머물지 않고, 파편을 다시 들어 올려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창작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선언이다.
 
《그들에게 경의를》 전시 전경 (5)
 
마무리하며
부산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온 김정명은, 그 언어를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계보와 선배·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사적인 ‘경의’를 이번 전시에서 드러낸다. 《그들에게 경의를》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인사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질문이다. 예술이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롭게 생성해야 하는가. 작가가 물감 파편 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소한 잔해에도 누군가의 예술적 DNA가 잠복해 있을지 모른다. 이번 전시는 그 잠복한 유전자를 깨우는 하나의 계기이자, 우리 각자가 어떤 ‘그들’에게 경의를 바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이다. 
/ 김정원 (맥화랑 큐레이터, 2025)
 
맥화랑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117번 나길 162, 2층
051-722-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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