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f.org는 Internet Explorer 브라우저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습니다. Edge, Chrome 등의 최신 브라우저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한 발짝 더 가까이

김지원

김지원, 한발 짝 더 가까이One Step Forward Please – Study of OCI Museum of Art, pen, watercolor, collage on paper, 43×51㎝, 2025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은 10월 23일부터 12월 20일까지, 뒤돌아보지 않으리란 마음가짐으로 30여 년에 걸쳐 회화와 씨름 중인 중견작가 김지원의 대규모 개인전 《한 발짝 더 가까이》를 개최한다.
 
맨드라미, 분수, 불꽃, 비행기…김지원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이번 전시는 그것 빼고 다 나온다. 터뜨릴 기회를 기다리며 하나둘 쌓아 온, 그래서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한 색다른 작품이 200평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특히 최신작과 초기작, 닮은 꼴 그림 짝꿍 사이의 30년 세월을 더듬는 파격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김지원, 사적인 공간 Private Space, oil on canvas, 40×50㎝, 1998
 
아련한 기억 저편에서부터, 우리가 사는 현실 풍경, 그 안에 사는 작가의 머릿속까지, 전시는 마치 멀리서부터 김지원 작가를 줌인하듯, 층별로 ‘기억→현실→내면’의 흐름이다.
 
김지원, 사적인 공간 Private Space, oil on canvas, 40×50㎝, 1998
 
1층 ‘기억’의 공간에서는 작가의 사적 서사를 수십 년 시간차로 담아낸 ‘아버지의 옥상’ 연작을 선보인다. 낮은 난간 너머로 몇 개의 건물과 하늘을 등지고, 낡은 화분과 닭장이 듬성듬성 자리를 채운, 그리운 아버지의 옥상을 마주한다. 전시장 한복판에 놓인 나지막한 평상에 앉는 순간, 관객은 타인의 시선을 빌려 빛바랜 시공간을 유영하는 특별한 체험을 한다.
 
김지원, 비슷한 벽, 똑같은 벽 Similar Wall, Same Wall, oil, urethan paint on linen, 40×50㎝, 1998
 
그 위층엔 ‘가장 현실적인 풍경, 한국적인 비주얼’이 펼쳐진다. 아파트 단지나 도로변에서 무심코 스쳤던 회백색 콘크리트 옹벽을 그린 〈비슷한 벽, 똑같은 벽〉 연작이 전시장을 점령했다. 일상의 가장 평범한 사물이자 배경이 주인공이 되는 앞에서 관객은 ‘이목의 전복’을 경험한다.
김지원, 인물화 FIgure Painting, oil on linen, 162×130㎝, 2020
 
마지막 3층은 그대로 작가의 머릿속이다. 진정 효과 충만한 오이 그림으로 머리를 식힌다. 민트색 벽면을 가득 채운 100점의 드로잉은 ‘그림은 곧 태도’라는 작가의 믿음을 드러낸다. 작가적 유희가 돋보이는 ‘날것 그대로의 발상’으로, 과열된 미술계의 긴장을 이완하는 유쾌한 처방을 내린다.
 
김지원, 무제 Untitled, ballpoint pen, gouache on paper, 45×40㎝, 2012
 
이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김지원의 태도와 실천은 다음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 담백(Simplicity) : 메커니즘에 집착하지도 층위를 과시하지도 않음 – 메모하듯 그리는 그의 페인팅은 때때로 마치 대상과 필담을 나눈 종이처럼 보인다 

* 당당(Confidence) : 의도와 계산을 압도하는 기대와 의지 – 보여줄 생각에 부푼 ‘작가적 천진난만’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개별 작품은 물론, 출품작을 고르고 보여주는 방식, 전시 제목 등 전시 전반에 줄곧 내비친다

* 중용(Moderation) : 나아가기 위해 뒤돌아보는 꾸준함 – 전시장 한복판에 걸린 〈뒤돌아보지 않기〉를 뒤로한 채, 자신을 뒤돌아보며 그림을 정리하고 화법을 다듬길 거듭한다

김지원, 사적인 공간과 3개의 공공건물 Private Space and 3 Public Buliding, oil on linen, 97×356㎝, 2024
 
관객은 물질과 이미지의 줄타기와 같은 회화적 즐거움을 체험하는 가운데, 창작이 주는 메시지는 형식보다 태도와 실천에서 비롯함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좀 더 다가와 회화의 매력을 한껏 쬐어 달란 어감으로 명명했다.
 
김지원, 무제 Untitled, ballpoint pen, gouache on paper, 30×30㎝, 2009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은 “김지원의 그림은 방사성 물질을 닮았다. 가까이 쬐면 그만이다. 헤치고 캘 것 없이 알아서 온다”라며, “해석의 피로에 지친 관객에게, 설명 없이, 보는 즉시, 알아서 날아와 박히는 회화 본연의 맛과 향을 실감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발짝 더 가까이》는 신나는 회화 파티로 관객을 이끄는, 작가의 상냥하고 자신감 넘치는 초대장이다. 올가을, OCI미술관에서 당신의 망막과 뇌리를 강렬하게 파고들 ‘방사능 파티’에 출석하길 권한다.
 
OCI 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45-14
02-734-0440

 

Share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