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_empty morph

[GALLERIES] THE PAGE GALLERY

2021. 2. 25 – 4. 17
김춘수, 신수혁, 천광엽

더페이지갤러리는 김춘수, 신수혁, 천광엽 세 작가의 그룹전 < 素_empty morph >를 개최한다. 세 작가의 작업은 비목적성∙몸의 드림을 통하여 하나의 근원素으로 회귀하려는 공통의 과정을 추구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용대 전 대구시립미술관장은 “’과정에의 주목’이라는 측면에서, ‘삶을 기록하는 몸의 드림’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작업은) 동양미학의 수행성과 친밀하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지금껏 단색화라는 큰 범위 내에서 세대로 분류되어왔던 이들의 작업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뿜어내는 팽팽한 긴장을 엮은 것이 이번 전시이다.

김춘수( b. 1957 )는 30여년 동안 캔버스 위에 변함없이 ‘푸른 기운’만을 제공하고 있다. 작업에 보이는 것은 그저 손가락으로 찍은 푸른 점들이며 가끔씩 캔버스의 흰 바탕이 살짝 드러날 뿐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작업을 마칠 때까지 숨쉬는 것처럼, 길을 걷는 것처럼, 그의 몸의 흐름을 느끼면서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가고 있다. 몸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퍼포먼스나 해프닝을 연상할 수 있으나 그의 작업의 본질은 중성적으로 몸을 사용하면서 손에 묻힌 물감이 캔버스에 닿을 때 느끼는 그 촉감에 주목하는 것이다. 미묘한 차이의 푸른 점들은 그의 호흡으로 잠시 머물러 있다가 사라진다. 그 흔적의 쌓임이 바로 김춘수의 푸른 회화이다.

신수혁( b. 1967 )의 작업은 구조적 평면과 같다. 평면처럼 보이면서 그 안에는 많은 레이어를 가진 추상적 공간이다. 그는 평면위에 세필로 수직∙수평의 교차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뉴트럴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타탄의 구조처럼 원근도 그라데이션도 없는 평면을 창조한다. 짧게 끊어치는 경쾌한 스트록의 무한 반복은 그의 예민함을 담아내며 순간의 움직임을 머금고 있다. 이처럼 푸른∙흰 물감의 교차는 “물질을,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구조적 평면”으로 압축시키고 있다. 반복 속에서 늘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그의 지향이 드러난다.

천광엽( b. 1958 )의 작업은 물감의 층위가 만들어 낸 무위의 과정이다. 그는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일정한 간격과 크기의 도트dots 위에 평필로 물감을 칠한다.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 이 행위는 무심한 물감의 층위만을 남긴다. 몇 번을 칠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이 행위와 함께 깨어나는 그의 잠재의식은 다시 물감의 지층 사이에 묻히면서 우리 시야에는 오직 모노톤의 표면만이 보일 뿐이다. 그 과정과 노동에 비해 결실없는 듯한 물감의 도트, 그 무한 반복의 사막에서 천광엽은 ‘살아내는’ 중이다.
천광엽의 9cm x 9cm x 6cm의 직육면체 입체 작업은 평면 작업의 진행 중 사포질을 해서 생기는 유화가루를 모아서 물로 침전시킨 “회화적 지층”으로, 물성을 존중하고 시간의 힘을 빌려서 완성한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다. 물질을 물성으로, 물성을 다시 물질로 환원시킨 기다림의 미학이 작업에 응축되어 있다.

“empty morph”는 허형태(虛形態)로,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전후 환경에서 그 출현을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서 어떤 형태소(素)에도 속하지 않는 형태”를 가리킨다. 김춘수, 신수혁, 천광엽의 화면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작가의 사유가 쌓인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보는 이는 그 온전한 과정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면서 어떤 연상만 할 뿐이다. 김용대 전 관장은 “그 추상성이 만나는 곳이 바로 작업의 핵심이며 기저”라고 이야기한다. 세 작가의 반복되는 노동과 작업 과정은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아무것도 없는 본디素로 돌아가려는 무위의 방법론인 것이다.

더페이지갤러리는 < 素_empty morph > 전시를 통해 수십 년간 각자의 방식으로 회화를 반복∙수행해온 세 동시대 작가의 치열함이 조명되기를 기대한다. 전시는 4월 17일까지이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여 네이버 예약을 통한 사전 예약제로만 진행된다.


Curated by 김용대 YD Kim
1987년부터 2003년 삼성미술관 리움Leeum에서 수석 큐레이터로서 ‘한국미학에 근거한 현대미술전시’를 기획하였다. 부산시립미술관장(2004-2006)과 대구시립미술관 초대관장(2010-2012)을 역임하고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전시’를 독립적으로 큐레이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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