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S] Gallery Jung
2022. 5. 22 – 6. 21
민연식
현대회화의 속성에 일치하는 흑백의 조형공간
신항섭(미술평론가)
최초로 세상이 열린 날에는 빛과 어둠이 있었다. 어둠이 깨어나면서 빛이 세상 한가운데로 왔다. 빛이 형상을 찾아내면서 비로소 세상이 만들어졌다. 빛과 어둠은 서로를 뱉기도 하고 삼키기도 한다. 이 둘의 관계, 즉 음과 양의 작용에 따라 세상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처럼 빛과 어둠, 즉 명암이 갈리는 자리에 형상이 들어서게 된다. 빛과 어둠은 흑백이라고 명명되었다. 이로써 색채의 개념이 생긴 셈이다.
민연식의 사진은 흑백이라는 색채의 개념, 그 시발점에 놓인다. 흑백 이외의 그 어떤 유채색도 존재하지 않는 명암, 즉 밝음과 어둠의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밝히고자 한다. 따라서 흑백이라는 색채의 개념조차 모호해지는 빛과 어둠의 관계를 주시한다. 빛과 어둠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찾아낸 형상을 인화지에 고착시킴으로써 한 작품이 탄생한다. 이는 순전히 빛과 어둠의 문제이자 흑과 백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이다. 빛이 있음으로써 검정이라는 색채가 존재하게 되고, 어둠이 있음으로써 하양이라는 색채가 존재케 된다. 이 둘의 상호작용을 주시하면서 그 틈새에 형성되는 형상성을 찾아 나선다. 이들 사진은 모두 필름에 의한 암실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흑백사진의 순결성을 혈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의 작업은 소재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겨울 풍경이고, 둘은 나무, 셋은 폭포, 넷은 산이다. 소재에 따른 구분이지만 흑백사진이라는 점에서는 한통속이다. 검정과 하양의 극단적인 대비로 함축되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형태미의 일정 부분이 감춰짐으로써 단지 실루엣처럼 보일 따름이다. 실루엣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형태가 은닉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아무런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실재하는 사실이 단지 흑백이라는 색채이미지로 덮어 씌워질 뿐이다.
일반적으로 흑백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했을 때 형태는 검정이 차지한다. 특히 실루엣으로 처리될 경우, 형태는 전적으로 검정의 몫이다. 그런데 그의 작업은 이와 같은 일반성을 배반하듯 하양에도 형태를 부여했다. 이는 폭포를 소재로 한 작업에서 볼 수 있는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서 하얀색을 찾아낸 것이다. 따라서 검정은 물론 하양의 이미지도 형태를 드러내는 데 관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로써 ‘흑과 백의 이중주’라는 문학적인 표현이 곁들이게 된다. 흑색만이 형태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 하얀색도 형태에 직접적으로 관여함을 역설한다. 흑백은 서로 간에 역할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흑백의 대비 또는 흑백의 조화라는 단순한 조형 개념을 뛰어넘는 미학적인 해석을 불러들인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함축하며 요약해 내는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은닉된 이미지를 통해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허용한다. 사진의 개념으로 몰아가기에는 문학적인 정취가 짙을뿐더러, 철학적인 사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보이는 것을 뛰어넘는, 또는 보이는 것 그 이면에 자리하는 사색 및 사유의 공간을 열어두는 까닭이다.
그의 사진은 어둠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님을 부단히 상기시킨다. 오히려 형태미, 즉 실루엣 이미지가 단순할수록 상상의 여지는 커진다. 특히 만년설을 배경으로 한 히말라야 작품이 그렇다. 극단적으로 짙은 검정의 단순한 실루엣과 윤곽선만으로 장중한 산맥의 이미지를 요약해 냈다. 검정과 하양이 만나는 윤곽선에 깃들이는 예리함은 시각적인 쾌감을 불러온다. 이를 구태여 모노크롬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는 흑색의 개념조차 배제된 지극히 단순한 평면적인 이미지로 머물기를 바랄 뿐이기에 그렇다.
산을 소재로 한 일련의 사진에서 검은색은 색깔이기도 하고 색깔이 아니기도 하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싶은 순정의 검정에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없어도 많은 것이 내포한다. 우리의 경험치에 비례하여 검정에는 많은 이야기가 채워진다. 다시 말해 검정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싶은 검은 평면이 가지는 그 순수함 또는 순결함, 그리고 순정함은 만년설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사유의 창고가 된다. 만년설의 하양은 검은 산맥의 상대적인 색깔이자 원시적인 순수함의 상징이다. 검은 산맥으로 인해 그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는 만년설의 존재는 신비성을 증폭시킨다.
이밖에 나무들 연작이나 흑백대비가 명쾌한 겨울 풍경에서도 흑과 백의 상호작용을 표현적인 가치로 제시한다. 단지 실루엣으로 처리될 따름이지만 그로부터 실상을 능히 유추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 그가 던져놓는 흑백의 이미지에 풍부한 내용을 덧붙이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그는 단지 그 어떤 상상도 가능한 사색 및 사유의 공간을 열어놓을 뿐, 나머지는 감상자에게 돌린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현대회화의 한 속성, 즉 단색주의의 방법론에 성큼 들어서고 있는 게 아닐까. 수묵화 또는 단색화로 보아도 무방한 그런 회화적인 이미지를 충족시키는 까닭이다.
갤러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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