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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근욱

학고재

지근욱은 색연필로 자를 대고 무수한 선을 그어 화면을 채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옮기는 대신, 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시각의 빈틈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는다. 눈에 잡히지 않는 작은 힘들을 상상하며, 언제나 열려 있고 무언가 통과할 수 있는 회화를 만들려 한다.

 

지근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영국 런던예술대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아트&사이언스로 석사 학위를,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회화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과학이 만들어내는 시각 데이터에서 영감을 얻어 지난하게 선을 긋는 추상 회화의 세계를 다져왔다. 학고재와 성곡미술관, 쉐마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런던 유학 시절에는 현지 그룹전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2024년 성곡미술관 오픈콜에, 2026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사업 유망트랙에 선정됐다.

 

지근욱의 작업은 색연필과 자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를 대고 일정한 간격과 압력을 유지하며 색연필로 선을 무수히 그어 화면을 메운다. 이 행위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실제 안료의 층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수없이 겹친 선들은 화면에 미묘한 융기와 질감을 만든다. 최근 그는 여기에 스테인리스 스틸 안료를 더해 금속의 물성을 화면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금속성 표면은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반사와 깊이가 달라져, 관람자가 움직일 때마다 화면의 인상이 바뀐다.

 

지근욱과 색연필의 인연은 우연에 가까웠다. 2015년 영국 유학 초기, 그는 판화 작품에 서명을 넣어볼 생각으로 한국에서 다색 색연필을 챙겨 갔다. 그러다 색연필이 캔버스에 닿아 부서지며 남긴 흔적이 이미지의 가장 작은 단위, 이를테면 하나의 입자처럼 보이면서 지금의 작업이 시작됐다. 작가는 색연필 선이 모이면 “멀리서는 단단하고 올곧아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털실의 보푸라기처럼 연약한” 차이를 만든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그가 색연필과 자를 굳이 함께 쓰는 이유도 분명하다. 자에 기대어 긋는 반듯한 선이 역설적으로 “완벽하게 기계적일 수 없는 사람의 행위”를 강조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 Kiaf에서 지근욱은 ‘스페이스 엔진(Space Engine)’ 연작을 선보인다. 같은 이름의 가상 우주 시뮬레이션 게임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려낸 천체 이미지를 붙잡아 변형해 밑그림으로 삼은 작업이다. 이번에 내놓는 작품은 대부분 색연필 위에 스테인리스 스틸 안료를 얹은 ‘메탈릭’ 연작으로, 겹겹이 층을 이룬 ‘메탈릭 필드’와 대각선 결이 흐르는 ‘메탈릭 윙스’ 등이 있다. 작가는 관객이 특정한 이야기를 좇기보다 선 자체가 주는 시각 정보와 감각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시공간이 어긋나고 투과하는 세계에 잠시 진입했다가 나온 것처럼 다소 사건적인 여운을 남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Artworks

Space Engine - Metallic Field 001-1~012-2, Colored pencil, acrylic and UV print on canvas, Dimensions variable (approx. 290×957 cm), 2026

Space Engine - Metallic Wings 005~008, Colored pencil, acrylic and UV print on canvas, Dimensions variable (approx. 204×194 cm), 2026

Space Engine - Quarter 006~009, Colored pencil, acrylic and UV pint on canvas, Dimensions variable (224.5×220 cm),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