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정의 도자, 만들지 않고 태어난

[ON-SITE] PARKRYUSOOK GALLERY

2020.12.8 – 2021.1.28
이헌정 Lee Hun-Chung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020년 꾸준하고 쉼 없이 미술동네를 지켜온 박여숙화랑은 거침이 없으나 섬세하고,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이헌정(53세)의 도자, 만들지 않고 태어난’ 개인전으로 2020년의 대미를 장식한다.
조선도자의 여백과 자연스러움이 검소함과 어루러져서 독창적인 미감을 드러내는 조선백자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옛 법에 머물지 않고 새롭고, 생명력 넘치는 도자 설치, 도조, 도자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면서 자신의 미학을 펼쳐내 온 이헌정은 이번전시에서 도조 (陶彫)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도조 (陶彫)작품은 작품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mass)로 다가오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사람이 만든 바위처럼 육중하고 무덤덤하지만, 그 태(態)는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처럼 고아(高雅)하면서도 생명의 힘이 표면 위로 밀고 올라오는 마치 봄이 되어 싹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듯한 힘을 느끼게 한다.
그의 도조 (陶彫)의 특징은 ‘면’들이 모여 ‘각’을 이루면서 ‘덩어리’가 되지만 그럼에도 ‘모’가 나지 않은 중성적인 모양이 특징이다. 물질적이지만 그 크기와 서정적이면서도 표현주의적인 표면은 공간에 놓이면 그 공간을 초 물질적인 환상의 세계로 만들어 낸다. 마치 거대한 연적 같은 등받이도 팔걸이도 없는 가장 오래된 의자의 모양인 스툴처럼 보이지만 그 모서리는 어느덧 세월 아님, 영겁의 시간을 우주를 헤치며 지구에 떨어진 유성처럼 마모되고 문질러진 채이다.
크기는 자신을 드러내며 존재를 뽐내는 듯하지만 만나는 각이 모나지 않아 부드럽고 푸근하게 다가온다. 또 그 존재가 공예적인 완벽함이나 장식적인 면과는 거리를 두고있어 보는 이를 긴장시키지 않고 편안하고 평안하게 해준다. 직관적인 표현과 완벽함을 넘어선 서툶의 노경(老境)이 어우러져 어느 곳에 있어도 부담 없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그의 각이 있지만 모가 나지 않은 도조 (陶彫)작품은 그 자리에 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앉아 은은하게 스스로를 드러낼 뿐이다.
커다란 흙덩어리가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 생노병사를 끌어안고 1300도가 넘는 불 구덩이로 걸어 들어가 모든 것을 녹이고 태워 하나의 덩어리를 환생한 듯 그의 도조 작품은 스스스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격체인 동시에 생명체로 태어난다. 그리고 육신을 태우고 남은 사리처럼 영롱하면서도 촉촉하다.
도에를 전공한 그는 어느 덧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 더욱 발전하고 변용되어 도자의 영역을 넘어 새로운 실험적인 작품을 낳고 있는데 이번에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도조는 침묵의 언어를 통해,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감추듯 드러낸다.
그에게 ‘흙’과 ‘불’은 자료인 동시에 미학의 원류이다. 그리고 흙이 불을 만나 화학적으로 하나의 몸으로 일체가 되면서 ‘도자’라는 새로운 질료로 다시 태어난다. 그에게 도자의 근간인 흙, 물, 불, 공기라는 우주의 4원소들은 새로운 화학적 융합을 통해 새생명을 얻어 환생한다. 그의 불 속을 거쳐나온 도조의 표면은 마치 수억 광년동안 우주를 유영해 지구에 떨어진 유성처럼 거칠지만 투명하고, 응결된 듯 머금은 유약들의 변조를 통해 시공간을 머금으며 이를 초월한다.

그의 공간을 넘나드는 거대한 도조 (陶彫)작품은 실용성 즉 ‘쓰임’을 전제로 한 도자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조형으로, 생명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제 그는 쓰임이라는 작은 도자의 목표가 아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인식하고 드러내려는 포부를 보여준다.
원래 도조 (陶彫)는 195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자 공예가들이 당시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와 도자를 결합시켜 새로운 조형적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유럽의 도자의 기능주의적인 ‘쓰임’이라는 한계를 넘어 새로운 조형적 수단으로 선택한 이들의 영향을 받아 1948년 결성되어 1998년 해산한 일본의 쇼데이샤그룹(走泥社)의 활동과 쓰임이라는 도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현대’라는 시대정신을 접목시켜 새로운 도자의 영역을 개척하고자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도자작가들이 도조를 시도하면서 도자에 시간성을 부여하며 현대로 영역을 넓혀갔다. 하지만 이헌정의 도조 (陶彫)는 도자 작가가 영역을 넓혀 시도하는 도조 (陶彫)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추상표현주의 도조의 원류라 할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SAFI, 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서 조각을 공부했을 뿐 만 아니라, 건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할 만큼 열정적인 수련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우연과 부드러움 그리고 인위적인 손길이 최소한으로 드러나는 절제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도의 학문적 성찰과 철학적 탐구의 성과물이라는 점은 우리가 이헌정의 도조 (陶彫) 작품을 만나면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전통적인 역사의 흐름과 풍토와 연결되어있는 우리의 동양화나 공예 같은 다소 위축되어 보이는 장르가 새롭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전통에 매몰되지 않고 동서양의 미학적, 질료적 특성을 서로 뒤섞어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헌정의 태도와 행위는 남다르다.

이러한 그의 남다름과 속깊음은 이미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아왔는데 1999년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1935~ ),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1943~ ), 스스로 도자작업을 하기도 하는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Brad Pitt, 1963~ ), 미국의 프로듀서겸 랩퍼, 사업가 겸 디자이너인 퍼프 대디(Puff Daddy, 본명Sean John Combs,1969~ )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유명인사(Celebrity)들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또 이헌정은 청계천의 도자 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와 같은 공공미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박여숙화랑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38길 30-34
02 549 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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