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 미술관 열 돌 기념전 《깍지》

[CULTURAL ISSUE] OCI MUSEUM

2020.10.22-12.19
강서경 권인경 김수연 라오미 박경종 배윤환 신민 지희킴 최수진 홍승혜

Sharing Painting, 박경종, 지희킴, mixed media on birch plywood, 540x360cm, 2020

전시장에 들어서자 막대기에 꿰어 공중에 떠 있는 그림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네모진 그림도, 원통형으로 둥근 그림도 함께 꿰어 도는 게 딱 내가 좋아하는 양꼬치 굽는 모양새이다. 그 사이로 선명한 원색이 천장까지 뻗은 큼직한 벽화가 시원하다. 오페라색 갈비뼈와 사람 키만 한 우주 소용돌이가 시야를 가득 메운다. 자세히 보니 반짝이는 자작나무 패널을 이어 바둑판처럼 깔고 그 위에 그렸다. “My Shadow is Yours” 형형색색 글귀와 고양이가 그려진 나무 상자 속에,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고 있다. 응? ‘추첨을 통해 그림을 드린다’고??

작가는 그 자체로 보배로운 이야기를 한가득 쥔 존재이다. 그런데, 기왕이면 더욱 크고 선명하게 그들을 드러내 보일 방법은 없을까?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들도 마주치면 더 크게 진동하지 않을까? 작가들이 둘씩 짝을 지어 서로의 색다른 모습을 들추는 전시가 열려 절로 발길을 끈다.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10월 22일 막을 올린 개관 10주년 기획전 《깍지》.

작가는 각자 왼손 혹은 오른손이 되어, 깍지 끼듯 짝과 둘씩 마주 어우러진다. 깍지 끼는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팽팽하게 맞서다 때론 기대어 서고, 꼬치에 꿰어 도는가 하면, 거미줄로 두루 얽는다. 넌지시 이어지는 시각적 박자 속에 저마다 무언가 확장하고 뛰어넘는 ‘초월 얼개’를 심지처럼 품는다. 영 딴판이면서도 어딘가 자못 통하는 다섯 쌍의 작가들. 의기투합 깍지 끼고 쭉 뻗어 서로 밀어주는 왼손 오른손, OCI미술관을 빛낸 열 명의 ‘금손’들이 출동한다.

1층 로비에서 시작한 전시는 3층 전시장까지 총 다섯 쌍의 ‘깍지’가 꾸민다. 전시장 도입부에 들어서자마자 큼직한 꼬챙이에 그림들이 꿰어 빙글빙글 돌고 있다. 박경종은 창작 과정에 오가는, 그림과의 투닥임을 영상과 페인팅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같이 꿰여 도는 지희킴의 작품은 원통 모양이다. 다양한 형상과 원색이 여과 없이, 그리고 위화감 없이 흰 여백에 착륙하는 과감함이 돋보인다. 두 작가가 합심해 꾸민 높이 6m의 대형 벽화는 본 전시의 백미이다. 벽화를 썰어 관객에게 나눠주는, 이미지 공유/소비 생태 실험으로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깍지 하나 : 이미지 조합 공유 소비 실험 – 박경종 지희킴 (1F)

벽 뒤쪽 홀에는 배윤환의 바다가 넘실댄다. 372×240㎝의 시원한 크기에도 섬세한 화면 구성이 빛난다. 창작은 사실 ‘작품으로 세상을 더럽히는 짓’이 아닐는지, 거북이와 등대지기의 일침 속에 작가의 의구심과 다짐을 엿볼 수 있다. 맞은편에는 신민 작가가 폭 10m의 벽화 드로잉으로 응수한다. 단정한 옷차림과 올림머리, 마스크 너머로 내놓은 건 이글대는 두 눈뿐이지만 성난 목소리가 공간 가득 울리는 듯하다. 거친 스트로크로 부르짖듯 쏟아내는 우툴두툴한 생존 투쟁을 들어보자.

깍지 둘 : 이글이글 넘실넘실 소리 없이 부르짖기 – 배윤환 신민 (1F)

전시장 2층에는 농장과 정원이 열렸다. 창작 농장 주인 최수진은 숨을 캐고 색을 거둔다. 아이디어를 익히고 수확하는 창작 메커니즘을 생기 넘치는 화면으로 형상화했다. 김수연의 정원엔 화장을 지운 꽃이 폈다. 꽃을 꽃답게 하는 건 색깔일까 향기일까. 직접 땅을 일궈, 꿈꾸던 색과 향을 키우고 그려낸 모네. 모네의 정원 옆에, 무채색의 꽃으로 수놓은 수연의 정원을 꾸린다.

깍지 셋 : 창작 농장과 정원 – 김수연 최수진 (2F)

개념에도 초상이 있다. 홍승혜가 벽면에 떨군 픽셀은 둥글게 맞잡고 가지런히 늘어서며 사람과 사연을 닮는다. 점차 공간으로 돌출하여 그림자를 얻고, ‘만질 수 있는 관념’으로 자라난다. 비로소 픽셀은 현실 세상과 회로를 잇는다. 강서경은 ‘큼’, ‘짧음’, ‘우뚝’, ‘대롱대롱’을 걸고 세운다. 격자로 공간을 오리고, 허공의 색깔로 구멍을 채운다. 평면의 질감과 색상은 어느새 입체의 그것으로 자란다. 회화는 몸무게를 얻고 기하학은 체온을 품는다.

깍지 넷 : 기하학은 체온을, 회화는 몸무게를 품다 – 강서경 홍승혜 (2F)

나무 바닥이 도드라지는 전시장 3층 한복판에 책가도 장식장처럼 얼기설기 짠 방은 고작 두 평 남짓. 그러나 권인경이 걸어 둔 산자락과 화분의 뒤태, 그리고 동네 조각은 세월을 바르고 기억을 둘러 그 방을 끝없이 넓힌다. 라오미는 방문을 열고 바닷가로 나선다. 인천, 단둥, 압록, 두만, 요코하마에 이르기까지, 물과 뭍이 만나는 곳곳에 스민 이야기를 더듬어 그 시절의 눈, 코, 입, 귀를 소환하고, 풍경을 재구성한다.

깍지 다섯 : 방 너머 창 너머 풍경 너머 – 권인경 라오미 (3F)

《깍지》는 지난 10년간 OCI미술관과 인연이 있던 작가들 가운데, 남녀노소를 불문, 오로지 협업 전시를 위해 열 명의 작가를 골랐다. 작가들의 ego가 난무하는 미술계에서 서로 합심해 시너지를 부각하는 보기 드문 시도이다.

11월 11일(수) 19:00 / 12월 5일(토) 15:00 각각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깍지’들과 다과를 곁들여 정담을 나눈다.

작가와의 대화 : 사전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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