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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the Walls

김래현

Between the Walls 포스터

바야흐로 역병의 시대, 세상의 모든 이들이 역병이라는 담 안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를 경험하며 몇 년이 흘렸다. 인간관계의 시작이 집 앞에 놓이는 택배와 배달음식으로 끝나는 경험은 모든 단어 앞에 ‘집’을 붙여 재택근무와 홈 스쿨링, 홈 카페 등등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시대가 도래했다. 혼자 지내는 이들은 더더욱 다른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는 것이 어색해졌고 가족을 볼 시간 없이 외부활동을 이어가던 현대인들은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강제대면 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오랜 시간 머물기 시작한 사람들은 옷과 신발로 표현하던 자신의 개성을 실내건축과 인테리어를 통해 표출하였고 그 어느 때보다 인테리어 시장은 이례적인 호황이었다.

나에게 안식을 주는 우리들의 요람은 세상과 나를 분리시키는 담벼락이 되어 개인화된 현대인에게 고립과 연대해체의 최소 단위로 변해버린 것이다. 과연 이러한 현상 속에서 우리에게 ‘집’은 단순히 주거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집’은 단순한 주거의 공간을 넘어 자아를 표현하기에 가장 ‘관계 함축적’인 공간이다. 인간의 첫 번째 연대인 1차 가족,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사건 등을 지내며 사랑과 충만함, 결핍과 외로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성장하고 고취되는 감정적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공간 안에서 켜켜이 쌓아 올린 ‘나’는 뿌리 내리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고 나아가 개인화된 현대인의 초상으로 확장한다.작품은 인터뷰를 통해 타인의 집을 감정적 공간으로 해석한 ‘집 구경’ 시리즈, 오려서 조립하면 나만의 작은 집을 만들 수 있는 종이접기 도면의 형태를 가진 ‘내 집 마련 프로젝트’, SNS로 안식처를 피신한 이들의 ‘놀러오세요, 우리집에’ 시리즈로 구성된다.

김래현, 계절이 지나는 소리, 린넨에 흑연과 동양채색, 130.3 x 97 cm, 2025

1) 집 구경
작품은 감정적인 공간으로 해석된 여러 모델의 집에서 공통적으로 해체된 얇은 건물 벽과 인물의 부재, 모노톤의 가구, 부유하는 땅과 자연, 무성하게 자라난 식물들이 나타난다. 각기의 집은 인터뷰를 통해 실제 이야기들을 통해 꾸려지는데, 무작위로 선정된 대상들은 짧은 설문 이후에 유년시절 살던 집이나 가족과의 이야기, 유년시절 사건들과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실제 살던 집을 방문하거나 사진 또는 기억 속의 집을 그려내기도 하고 일기를 읊기도 하는 자유로운 형태로 진행한다.
이야기는 작가의 시선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분리된 공간 안에서 흑백조의 가구와 울창하게 자라난 식물들로 이미지화되는데, 사람 대신에 뿌리내린 식물들과 그 안에서 온기를 잃은 가족들의 물건들이 대비되며 우리는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맺고 있는 관계의 깊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해체되고 개인화된 현대 가족의 ‘누군가에게 쉬이 이야기할 수 없었던 집안 사정’이 은유적으로 관람자들에게 전시되는 과정에서 작품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래현, 낭만의 온도, 린넨에 흑연과 동양채색, 112 x 112 cm, 2025

2) 내 집 마련 프로젝트
‘내 집 마련 프로젝트’는 집이라는 공간을 물질적,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감정적인 안식과 안전한 요람으로의 감정적 공간으로 표현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으로 가득 채운 안전한 요람은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을 넘어 관계를 위한 공간으로의 가이드를 제안한다. 나아가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하는 안식은 오직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동물 그리고 식물 나아가 자연과 함께하는 ‘쉼’이다.
부드럽고 단단한 나무 의자, 내 공간에서 함께할 이들을 위한 디저트나 꽃다발, 반려동물과 반려 식물들까지, 나를 위한 선택들은 점차 내가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이들을 위한 선택으로 연장한다.
집은 오려서 붙이면 건물이 되는 도안의 이미지로, 주변에 집을 만드는 방법과 집에 함께 하는 가구, 동물, 식물들이 종이 인형 놀이처럼 배치되어있다. 관람객들은 도안을 따라 만들어질 이상향의 공간을 상상하며 공감을 나누는 장을 마련하길 바란다.

3) 놀러오세요, 우리집에 (이모지 시리즈)
〈놀러 오세요, 우리 집에>는 팬데믹 이후 생긴 인류의 공통적인 주거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전 세계 인류는 역병을 피해 집에 자의적 감금을 경험하며 SNS와 가상 세계로 주거지를 옮겼다. 핸드폰 속의 삶을 꾸미고 가꾸며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국경의 경계를 넘은 가상 세계의 언어는 이모지로 통일되었다.

<놀러 오세요, 우리 집에>는 이모지의 ‘집’ 이미지를 가지고 현대인의 가상 안식처의 성격을 대변하려 한다. 소유하지만 실존하지 않고,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어디에도 있고 어디든 없어질 수 있다. 전통적으로 통용되는 집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거주할 수 없다. SNS와 대화 창의 이모지 성격처럼 이 집은 원하는 곳에 설치하고 이동할 수 있으며 해체하여 보관했다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가상 공간의 안식처는 그 성격을 가지며 실제로 존재하며 휴대용 안식처의 기능을 한다. 팬데믹 이후 현실 세계보다 가상의 공간이 친숙해진 인류의 ‘내 집’은 가상의 안식처에서 사용하는 이모지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내 집’을 분양하기로 한다.

갤러리일호
03049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27-2
82 2 6014 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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