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 313 ART PROJECT
2021.4.8 – 5.8
Giovanni Ozzola
“그의 캔버스는 나의 영화와 같아요: 정확히 그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대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은 마크 로스코와의 서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안토니오니의 걸작 중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는, 엔딩 크레딧에서 “음, 근데 영화는 언제 시작하는 거지?”라고 물어보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그의 영화들이 (로스코의 작품들처럼) 나레이션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기에 그렇다.
Giovanni Ozzola 의 애티튜드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의 이번 시리즈(사실 그의 모든 작업들이라고 해도 되겠다)에는 야망에 찬 스토리가 없다. 오히려 현재의 일부인 어떤 짧은 순간에 대해 말하는 싱글 시퀀스 샷이다. 그리고 만약 그의 탐험이 단순함이라는 장치 위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의 목적은 극적인 어휘를 찾는데에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극적인 요소는 그가 모험을 끝낸 후에야 여로를 드러내고, 세상을 뒤로 한 채 작품 속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들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며 우리와 동행하는 생명체들의 흐름이다. 사실 인간의 존재는 그곳에 없다. 작품을 보는 우리가 인간의 존재를 대표하며 작품을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릴레이 경기 때 운동선수들은 팀에서 한명씩 번갈아가며 경기를 펼친다. 이 안에 리드미컬하고 협연과 같은 묘미가 있는데, 바로 바톤을 주고 받는 순간들이다. 알아차리기도 어려울 만큼 짧은 이 몇 초 동안, 그 찰나의 모든 감정들이 Ozzola 의 사진에는 늘 담겨있다. 그의 사진 작품들은 단순히 벽에 걸린 이차원 평면이 아니라,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에게 손짓하며 우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조화로운 의식을 시작하려는 주체들이다. 작품 속에서 인간의 형체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 존재를 상기시키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이야기에는 제약이 생겨버리고 우리 각자의 스토리를 쓸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대가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제한된 공간 내에서는 무한에 대한 가능성이 사라져버리기에 작품을 완성시키지 않은 채 손을 떼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Ozzola가 우리에게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를 제시하기 위해 상징성이 강한 도심의 상처들을 차용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여기에 현실 도피에 대한 언급은 없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이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간에 관계없이, 그들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콘크리트 건축물, 이름 모를 아파트의 내부, 혹은 망가진 아스팔트 길과 같은 인간 문명의 흔적이 필요하다. 그들은 서로를 보완하고 대칭적인 느낌을 주어, 관람하는 사람에게 보호막 역할을 해주는 벽들과 달리, 항해를 위한 빛을 제공한다. 이렇게 폐쇄된 공간은 멀리서 풍경을 보는 듯한 시각을 가능케 하며, 여러가지 의미에서의 철저한 고독을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Ozzola 의 작품 앞에서 혼자이고, 그것이 자발적이고 즐거운 은둔인지 혹은 버려진 느낌일지를 정하는 것도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작품 “앞에” 있다고 하는게 맞지 않는 표현일수도 있고, “안에” 있다고 하는 것도 틀린 표현일 것이다. 우리는 작품 그 자체가 된다. 작품 속 건축물들은 우리의 신체이며 사진 속 관점은 우리의 시각이다.
Ozzola가 제공하는 환경은 세상을 관통하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분열, 통로, 경계선을 추적한다. 칼 융은 우리가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한,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은 단순한 실재로써만 존재하는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Ozzola 의 사진 작품 앞에서 우린 생존에 대한 갈망,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인류의 흔적들을 포착할 수 있으며, 그와 함께 자연과 문명의 경계가 흐릿해진 미적 접촉점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것이 절대성과 무관한 마음 속 영역이라고 말하며 우릴 지식의 웅덩이 속에서 해방시키고 작품의 알레고리 속으로 초대한다. 그는 이것을 한순간에만 존재하는 아름다움 및 장소들에 대해 마치 충동적으로 증명하려는 듯 이야기한다. 이 작품들에는(특히 꽃을 담은 사진들) 우화적인 요소가 있다. Giovanni 는 예전에 자신이 카나리 군도, 중국, 쿠바 등을 순례하며 memento mori 를 경험하고, 미의 극치를 느끼며 아주 긴 봄을 지낸적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 있는 이 꽃잎들은 아스팔트와 대조를 이루는 존재들이 아니라, 망가진 길거리가 상징하는 캔버스 위의 물감으로 작용한다. 이 둘은 작가가 대단한 폭발에 앞서 눈부신 순간들을 실제로 목격하고 이 아름다움이 언젠가는 곧 끝난다는 것조차 잊도록 해준다.
이는 곧 미래에 대한 부정이며, 꽃잎들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최면 걸린 흔적과 소리를 따르듯 영원한 현재를 추구한다. 이러한 내적 투영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 어떤 상처의 일부인 동시에 본질이며, 비물질성의 파동이고, 노화하지 않고 점점 익어가는 위태로운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 작품들을 우리만의 전유물로 남기고싶은 욕망 속에서, 작가는 이기심이나 경계 없이 우리를 숨기고 혼란스럽게 하고 정의할 수 없도록 만드는데 성공할 것이다.
Text by Nicolas Ballario
313 아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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