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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카일리 매닝

스페이스K 서울, 카일리 매닝 전시전경, 2024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강서구 마곡동 소재)은 오는 8월 9일부터 11월 10일까지 미국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카일리 매닝 (b.1983, Kylie Manning)’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작가의 작품은 광활한 자연 풍경 속 인물을 등장시켜 추상과 구상이 혼재된 화면을 구성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황해’에 주목하고 ‘넘치는 잔해와 소음, 흔적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에 무엇이 걸러지고 농축되는가?’에 대한 회화적 사유를 전시 제목 《황해(Yellow Sea)》로 은유한다. 이번 전시는 스페이스K의 공간적 특성을 고려해 전시장 중간에 7미터 크기 대형 회화 3점을 매다는 등 총 20여 점이 소개된다.

스페이스K 서울, 카일리 매닝 전시전경, 2024

미국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카일리 매닝은 매사추세츠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 (Mount Holyoke College)에서 철학과 시각예술을 전공하고 뉴욕 아카데미 오브 아트 (New York Academy of Art)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현재 미국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중국 엑스 미술관 (X Museum), 2015년 멕시코 하이메 사비네스 현대미술관(Jaime Sabin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등 개인전을 열었고 2023년 미국 오하이오 콜럼버스 미술관(Columbus Museum of Art)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과 중국 유즈 미술관(Yuz Museum)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항구 Harbor, 2024, Oil on linen, 203.2 × 243.8 cm`      

카일리 매닝은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며 작품 속 형상들을 통합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모습이 강조되기도 하고 반대로 축소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화면 안에서의 밀고 당기기로 설명하며 서로 다른 주체들을 조율한다. 작가는 네덜란드 바로크 회화 기법을 차용해, 엷게 채색한 층을 여러 겹 쌓고 각 층의 유분으로 빛을 굴절시켜 작품 스스로 발광하는 효과를 노린다. 때문에 작가의 화면은 윤택한 질감과 섬세한 색채의 균형이 돋보인다.

우리 곁에 남은 것과 멀어지는 것 What stays with us and what falls behind, 2022, Oil on linen, 203.2 × 299.7 cm

카일리 매닝은 뛰어난 회화 실력과 특유의 표현 방식으로 바다와 인물을 묘사한다. 작가는 미술 교사이자 히피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알래스카와 멕시코 해안을 오가며 자랐다. 또한 학비를 벌기 위해 선원으로 일하며 500톤급 선박의 항해사 면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작가가 바다를 주제로 작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석사학위 취득 과정에서 독일 라이프치히 슈피너라이(Spinnerei) 레지던시에 참여하여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회화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 라이프치히에서 활동은 자신만의 회화관을 심도 있게 다듬는 기회가 되었다.

작가의 화면에는 특정한 자세나 움직임을 취한 상태로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별은 불분명하다. 작가는 ‘인물의 성별 구분을 보류함으로써 해석에 제한을 두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자연 안에서 인간을 강조하며 ‘우리는 산과 나무 사이에서 주변 환경에 통합되고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가의 인물들은 오히려 관객들로 하여금 화면 안에서 다양한 관계로 읽히도록 하여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머들(돌무더기) Mudle, 2024, Oil on linen, 91.4 × 101.6 cm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특별히 스페이스K의 공간을 고려해 대형 회화 3점을 전시장 가운데 매다는 신작을 선보인다. 얇은 실크에 그려진 7미터 크기의 회화는 전시장 중앙 3곳에 설치되어 마치 극의 무대처럼 연출되었다. 작품은 몰아치는 파도의 이미지가 필름처럼 나뉘어 색이 전하는 시간성을 더해 관객의 기억 속 풍경을 소환한다. 또한 관객은 흩날리는 천 사이를 오가며 마치 주인공처럼 ‘카일리 매닝’의 작품세계에 깊이 다가선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에 주목하고 이 바다의 국제적인 명칭인 ‘황해’를 전시 제목으로 내세운다. 황해는 민물의 토사 유입으로 바다에서 색의 경계가 뚜렷하다. 다만 만조와 간조의 차가 최대 9미터에 달해 시간에 따라 색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작가는 황해의 조석 작용이 작가의 화면 안에서 구상과 추상의 밀고 당김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캔버스 위 빠른 붓질의 추상적 요소가 구상의 내러티브를 위협하기도 하고 움직이는 인체의 형상으로부터 추상성이 확장되기도 한다. 작품들에는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위태롭고 섬세한 순간들이 유동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격변 Sea Change, 2023, Oil on linen, 243.8 x 375.9 cm

자연의 자연〉(2024)은 카일리 매닝의 첫 세폭화 작품이다. 거침없는 붓 터치로 쌓아 올린 풍경과 인물로 가득 찬 세 개의 화면 구성은 다양하게 변주되며 통합된 하나의 화면을 이룬다. 특히, 밀도 높은 색채와 여유롭고 자유로운 색채가 리듬감있게 자리한다. 〈머들(돌무더기)〉(2024)은 고동색과 푸른색의 대비가 제주도의 겨울 풍경을 닮았다. 작가는 황해와 맞닿아 있는 제주의 지리적 환경과 문화를 탐구하며 그곳의 돌 문화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영감으로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색채를 구현한다. 제목에도 이를 반영하여 제주 방언인 ‘머들’로 표기했다. ‘머들’은 밭을 경작하면서 나온 돌들을 모아 쌓은 돌무더기를 뜻한다. 〈격변〉(2023)에서는 조수가 완전히 뒤바뀐 순간을 포착했다. 이는 사회적 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작가 작품은 파도와 인물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처리하면서 풍부한 유동성과 격렬한 내면을 암시한다. 또한 몰아치는 흐름 안에서 인물들은 서정적으로 묘사해 여유로움이 공존한다.

자연의 자연 The Nature of Nature, 2024, Oil on linen, 243.8 x 609.6 cm

카일리 매닝은 다채로운 색채의 바다 풍경, 인물의 물결로 전시장을 채운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지역성을 면밀히 탐구해 이번 전시에 반영한다. 결국 작가의 회화는 지역성을 참조하며 보편언어로 회화를 실험하고자 한다. 바다와 자연, 인간과 존재는 작가의 화면 속 구상과 추상 회화 사이 어딘가 부유하며 몰아치고 잦아든다. 이와 같은 밀고 당기기에 대한 작가의 회화적 사유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의 기억에 무엇이 잔류하고 정제되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카일리 매닝이 전하는 바다 풍광 서사로 장엄한 회화의 면면을 관찰하는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스페이스K서울
서울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02 3665 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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