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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존재와 시간

이은주

24절기: 존재와 시간 전시 전경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24개로 나누어 정한 날들을 말한다. 농경사회였던 동아시아권에서 농사를 위해 계절의 변화를 잘 알 수 있도록 절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즉 24절기는 계절을 대략 15일 간격으로 세분한 달력이라 할 수 있다.

전시 제목을 24절기로 정한 이유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절기에 해당하는 날에 주로 경기도 양평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아 절기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기록하고 그 변화를 관찰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에도 24절기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 태어난 날짜와 시간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절기가 다르며, 운명처럼 만난 계절에 맞추어 자신의 인생이 펼쳐져 나간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 내용이다

2019 곡우, 45.5 x 45.5 cm, 캔버스에 혼합재료 Mixed Media on Canvas, 2023

오랫동안 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특히 나의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 왔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인생의 24절기와 관련된 이론이었고, 거기서 내 존재 의미와 삶의 흐름에 대한 일말의 대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대답이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나의 존재 의미는 아마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그 의미를 모를지도 모른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시간에 대한 독특한 생각을 표명했다. 본래 시간이란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하는 시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시간, 무언가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2019 우수 The Melting and Raining Season in 2019, 26 x 19.5 cm, 종이에 시아노타입 Cyanotype on paper, 2023

그리고 우리 인간은 현재 완벽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넘어 바깥으로 나가서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실현하면서 존재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외부의 대상(타인들과 사물들)이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들(타인들과 사물들)과 관계를 맺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간다고 한다. 결국 하이데거는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와 존재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시간이라는 지평에서 찾아진다고 주장한 것이다.

24절기론에서 우리 인간은 태어난 절기에 따라 관계를 맺게 되는 타인들과 사물들이 다르고, 이로인해 개별 인간은 고유성과 개별성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개별 인간은 태어난 절기에 따라 계절, 자연 그리고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의미를 구축한다는 24절기론의 논리는, 일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1 상강, 80 x 80 cm, 캔버스에 혼합재료 Mixed Media on Canvas, 2023

어쨌든 동아시아의 24절기론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가고 구축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비록 세상이 다할 때까지 명료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24절기 풍경들을 통해서 관람객들은 자신이 태어난 절기 속 계절을 알아보고, 그 절기가 여러분의 삶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또한 여러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 동지 The Day of Winter Solstice in 2022, 40 x 30 cm 종이에 시아노타입 Cyanotype on pap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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