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Hakgojae Gallery
2021.1.6 – 1.31
Various Artists
학고재는 2021년 1월 6일(수)부터 1월 31일(일)까지 학고재 본관에서 《38˚C》를 연다. 팬데믹 시대를 계기 삼아 인류와 세상의 관계를 고민하고자 마련한 전시다. 학고재 소장품을 중심으로 동시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몸, 정신, 물질, 자연 등 4개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함께 진행된다. 지난 12월 1일(화), 학고재 오룸에서 온라인 전시를 먼저 개막했다. 4가지 소주제에 따라 총 9개의 방으로 구성한 가상 전시장에서 국내외 작가 14인의 작품 37점을 주제별로 선보인다.
그중 선별한 작가 10인의 작품 16점을 오프라인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범주에 따라 분류한 작품들을 학고재 본관에 조화롭게 재배치했다. 실제 삶에서 몸과 정신, 물질과 자연은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 맺는다.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의 화면도 독립된 주제에 머무르지 않으며, 4가지 범주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몸의 형상에 내적 고민을 투영하고, 물질과 자연의 상호 작용을 고심한다. 주위의 환경을 탐구하는 일을 통해 정서적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사전 개막한 온라인 전시에서 큰 호응을 얻은 안드레아스 에릭슨( b. 1975, 스웨덴 비외르세터 ), 이우성( b. 1983, 서울 ), 허수영( b. 1984, 서울 ) 등의 작품을 학고재 본관에서 선보인다. 지난해 대구미술관 전시로 화제가 된 팀 아이텔( b. 1971, 독일 레온베르크 )의 소형 회화도 여럿 포함한다. 아니쉬 카푸어( b. 1954, 인도 뭄바이 ), 주세페 페노네( b. 1947, 이탈리아 가레시오 )와 박광수( b. 1983, 강원도 철원 )의 회화가 한 데 어우러진다. 최근 학고재에서 개인젂을 연 장재민( b. 1984, 경상남도 진해 )의 회화도 살펴볼 수 있다. 이안 다벤포트( b. 1966, 영국 켄트 )의 대형 회화와 판화 연작은 각각 2008년, 2007년 이후 처음 전시에 선보이는 것이라 반갑다. 중국 동시대 작가 천원지( b. 1954, 상하이 )의 명상적 화면도 8년 만에 수장고에서 나온다.
38℃
박미란 큐레이터, 학고재 기획실장
인류가 아프다. 불현듯 등장한 전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며 이번 세기 초유의 팬데믹을 야기했다. 2020 년의 디스토피아는 외계 생명체나 로봇, 어떠한 신화적 존재가 아닌 현실 세계의 작은 균으로부터 시작됐다.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이미 이 불청객이 우리가 겪어낼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이다. 질병 앞에서는 특권이 없다. 사람의 몸은 연약하여 낯선 균의 침투에 쉽게 달아오른다. 그래서 체온이 감염의 지표가 됐다. 고열의 기준점은 약 38℃, 이를 넘기면 공공장소의 출입이 제한된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몸에 주목한다. 지키기 위해 격리하고, 징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리적 활동이 제한되니 가상 현실이 팽창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각기 다른 가치를 바쁘게 좇던 우리는 모두 함께 멈추었다. 비로소 주위를 돌아본다. 위험한 체온 38℃는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목욕물의 온도이기도 하다. 커다란 세상 속 작은 생명으로서 문득 겸손해진다. 도달할 수 없는 한도와 깊이로 인간의 몸을 품어온 환경을 떠올려본다. 이번 전시는 팬데믹 시대를 계기 삼아 인류와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고민해 보기 위해서 마련한 자리다. 학고재 소장품을 중심으로 국내외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몸, 정신, 물질, 자연이라는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1. 몸
이우성( b. 1983, 서울 )은 자신이 몸담은 세대의 초상을 그린다. 화면 속 실체는 관점의 설정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범주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진솔할 듯 은유적이고, 무던한 듯 집요하다.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2017)에 등장하는 불은 이우성의 초기 회화에서 주로 불안과 무력감을 드러내던 소재다.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가 손바닥 안에 타오른다. 팀 아이텔( b. 1971, 독일 레온베르크 )의 화면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투영한다. 기하학적 구조와 정제된 색채의 배경 속 이름 모를 인물들이 거닌다. 〈스타디온 (아레나)〉(2001)는 열두 개 캔버스로 구성한 작품이다. 각각의 화면이 빈 경기장을 비춘다. 양측 가장자리에 두 인물이 등장한다. 인물의 뒷짐진 손이 경기에 참여하려는 의지의 부재를 암시한다. 두려움일 수도, 혹은 방관일 수도 있다. 관객은 화면에 스스로의 서사를 비추어 본다. 여백이 사색의 여지를 연다.
2. 정신
아니쉬 카푸어( b. 1954, 인도 뭄바이 ) 의 〈쿠비 시리즈〉 (2006) 가 뿜어낸 유려한 붉은 선이 미지의 어둠을 향해 뻗어 나간다. 카푸어는 붉은색이 사람 내면의 핵심을 상징한다고 본다. ‘쿠비’는 티베트 남서부 히말라야산맥 브라마푸트라 강의 원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 강은 발원지로부터 인도 아삼 지방을 지난 후 갠지스 강에 합류한다 . 인간 사회 및 정신의 상호 연결성을 지형적 개념에 빗대어 추상화한 회화다. 주세페 페노네( b. 1947, 이탈리아 가레시오 )는 이탈리아의 전위적 미술 운동 ‘아르테 포베라’의 중심인물이다. 나무와 숲 등을 매개체 삼아 내면세계를 탐구한다. 〈번식〉(1994)의 화면에 세 개의 지문이 보인다. 지문을 중심으로 그려 넣은 동심원의 형상이 생명의 파동을 은유한다.
박광수( b. 1984, 강원도 철원 )의 화면은 풍경과 인물의 형상을 누그러뜨리며 공상의 세계로 나아간다. 〈깊이 – 골짜기〉(2019)에서 얕고도 명확한 시선의 층위가 드러난다. 흐트러진 선들이 모호한 장면을 이루고, 뿌연 안개가 깊이를 확장한다.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같다. 천원지( b. 1954, 상하이 )는 세상에 대한 관조와 사색을 주제 삼아 기하학적 화면을 구현한다. 〈들숨, 날숨〉(2007)은 여섯 개의 원형 캔버스를 푸른 물감으로 채색한 회화다. 서로 다른 높낮이로 하강하고 상승하는 화면이 마치 숨 쉬는 듯하다.
3. 물질
이안 다벤포트( b. 1966, 영국 켄트 )의 〈무제〉(1995)는 주사기에 담은 페인트를 화면에 흘려 보내는 기법으로 제작한 회화다. 다벤포트는 가장 단순한 도구가 가장 복잡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 매료되었다. 계획한 방향과 순서에 따라 흘러내리도록 한 색들이 때로 엇갈리거나 흐트러진다. 화면은 물질을 완벽히 통제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우연한 효과를 수용한다. 김현식( b.1965, 경상남도 산청 )은 공업용 소재인 에폭시 레진을 회화에 접목한다. 재료의 표면을 촘촘히 긋고 굳히는 작업을 반복하여 조각적인 평면을 연출한다. 화면 속 빛과 그림자가 평면 속 깊이를 구축하며 명상적인 정취를 이끌어낸다.
4. 자연
안드레아스 에릭슨( b. 1975, 스웨덴 비외르세터 )은 스웨덴 북부 시네쿨러 산에 머물며 작업한다. 자연 속에서 마주하는 다채로운 서사가 작업의 소재가 된다. 에릭슨의 작품세계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자라난다. 회화에서 출발하여 조각, 판화, 직조 등의 매체로 나아간다. 〈세마포어 지리산〉(2019)은 추상적이고도 견고한 구성이 두드러지는 회화다. 하나의 드로잉을 소재로 제작한 연작에 ‘세마포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선박과 육지 사이 통신에 사용하는 국제 수기신호를 가리키는 용어다. 자연의 색채와 질감을 참조하지만 실제의 모습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방문한 적 없는 한국의 지리산을 스웨덴 숲 속 자연에 투영하여 그린 그림이다.
허수영( b. 1984, 서울 )도 자연을 그린다. 회화적 표현을 가장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해서다. 자연은 단편적인 장면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리는 이의 자율성을 두루 포괄할 수 있다. 〈숲 10〉(2016)은 500 호 두 폭으로 이룬 대형 회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풍경의 변화를 하나의 화면에 중첩한 결과물이다. 장재민( b. 1984, 경상남도 진해 )의 〈뜻밖의 바위〉(2015)는 보다 직관적인 표현을 선보인다. 장면 속에 머물며 경험을 수집하고, 순간적 선택에 따라 화면을 찾아 나간다. 풍경의 고정된 의미를 지우고 오직 감각에 집중한다.
새삼 돌아본다. 생명에 대한 불안이 본질을 일깨운다. 자연에서 태어난 몸이 정신을 지니고, 물질을 개발하여 스스로 지켜냈기에 여기까지 왔다. 나은 삶에 대한 바람으로부터 예술도 탄생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낯선 삶에 적응하여 또 다른 창작을 시도할 테다. 이전과는 다른 화면이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이 의미 있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1863-1952, 스페인)가 말했듯 “예술가는 현실에 대해 꿈꾸기로 한 몽상가다.” 오늘을 사유하는 내일의 예술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되새긴다. 견딜 수 있는 체온은 겨우 38℃. 열꽃 너머 뜨거운 예술은 우리를 품어 안은 세상으로부터 온다.
학고재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0
02 720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