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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laying Time

허명욱

가나아트는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평면에 옮겨내는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가는 허명욱(Huh Myoungwook, b.1966-)의 개인전 《Overlaying Time》을 개최한다. 그는 전통적인 옻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순수예술과 실용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이다. 허명욱의 작업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선보여진 바 있으며, 이타미 미술관(이타미), 모네 갤러리(오사카), 헬렌 제이 갤러리(LA)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등 한국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그 외연을 확장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허명욱의 회화나 조각 외에도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자연의 시간을 담은 작업의 일부를 영상으로 공개한다. 이로써 그의 작업을 총망라하여 보여줄 뿐 아니라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어 가는 그의 예술적 궤도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허명욱, Untitled, 2023, Ottchil on fabric, 51 x 43 cm

‘작품에 시간을 담을 수 있을까’, 허명욱의 작품은 이와 같은 질문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 속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색들은 작가가 날마다의 감정과 기운을 담아 만든 그날만의 색이다. 허명욱은 색이 그의 삶과 작가 자신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추구하는 색을 완벽히 구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 끝에 이를 표현해낼 수 있는 매체로 옻을 선택하였다. 옻칠의 특성은 표면에 칠해지고 난 색들이 본래의 색을 바로 보여주지 않고 여러 번의 반복적인 칠과 건조를 통해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 특성을 활용하여 매일 새로운 색을 배합하고 칠하며, 그것이 건조되기를 기다리는 시간들을 작품 안에 녹여낸다. 태생적으로 시간성을 지닌 매체인 옻칠을 통해 시간을 시각화해낸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 옻칠은 단순한 기법이 아닌 작가의 삶을 표현해내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허명욱, Untitled, 2023, Ottchil on fabric, 61 x 64 cm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행자의 고행을 방불케할 정도로 반복적인 칠 작업과 긴 시간을 요구하는 허명욱의 작업은 시간의 축적물이다. 옻은 오롯이 색을 내는 데까지 수십 번의 칠과 장시간의 건조 과정을 거친다. 또한 온도와 습도가 적절히 유지되어야만 비로소 본래의 색을 낼 수 있다. 예컨대, 강판을 베이스로 한 작업에서 옻칠을 하고, 고온에 굽는 반복적인 칠하기를 거쳐 고유의 색이 나타나기까지 두세달의 시간이 소요된다. 캔버스 작업의 경우에도 천을 덧대고 그 위에 또다시 칠을 올리는 중첩 과정이 지난할 만큼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천을 붙였다가 뜯어내어 흔적을 남기기도 하며 허명욱은 작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작품에 쌓아 올린다. 또한 매일 아침 다른 색을 배합해 만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긴 자작나무 판자 위에 색을 칠하고 색과 날짜를 기록한다. 이는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조차도 기록하고 수집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처럼 작가의 삶과 시간이 녹아들어 중첩된 작업물은 오랜 수행의 결과물이 대개 그러하듯 숭고함마저 담아내게 된다.

허명욱, Untitled, 2023, Mixed media (Ottchil), 141 x 121 cm

반복적 행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의 반영, 그리고 꾸준한 기록으로 설명되는 허명욱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가시화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그의 손을 거침으로써 형태를 지닌 조형체가 되어 흔적을 남기고, 그마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마모되고 변모하여 결국 소멸한다. 탄생과 존재, 소멸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한 사유의 시간이 우리의 삶 속에서 꼭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작품 앞에서 삶의 유한함을, 그리고 그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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