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8 – 12. 28
허문희

갈등과 탐욕이 제거된 허문희 작가의 풍경, < Little Forest >

보름 전 땅값 상승을 노리고 제주 애월읍 소재의 곶자왈을 서울월드컵경기장 크기와 맞먹는 크기만큼 훼손한 70대 A씨가 법정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곶자왈의 나무를 무단 벌목하고 암석지대를 깎아 황무지로 만든 A씨는 곶자왈을 임야로 바꾸면 땅값이 몇 배로 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수천년의 시간과 생명을 품은 생태계를 삽시간에 훼손시키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숲의 그림자 안에 자라는 나무의 새순과 여리게 줄기를 세워 뿌리내리는 식물들, 그 빛의 조각을 그늘 삼아 숨어 잠자는 고양이, 나무 위에 앉아 평화롭게 지저귀는 새들. 허문희 작가의 그림 속 풍경은 인간의 탐욕이나 이기심은 묻어나지 않는다. 그저 평화롭고 아름다워 때로는 동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허문희 작가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경쟁적으로 앞을 다투고 고민과 갈등으로 지쳐있는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고요와 평화만이 존재하는 초록의 울창한 풍경 속으로 시공간이 옮겨지는 듯한 위로의 순간을 경험한다.

제주 토박이인 허문희 작가는 그녀가 나고 자란 ‘섬의 숲’에 주목한다. 작가는 누적된 시공간이 쌓여 있는 숲을 통해 현실과 현실 너머의 것들을 차단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과 마주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숲의 시간 속에 숨겨진 생명력이다. 그림에서 재현되는 숲은 섬의 숲에서 보았던 식물과 풍경을 단초로 재구성된 시간 밖의 세계이다. 인간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있거나, 버려지고 죽어가는 동물들, 현실에서 안전함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좀 더 안전하고 평온한 그림 속 현실 너머의 사라지지 않는 생명력 있는 공간에 숨겨 놓는다. 그 안에서 본래의 숲의 시간을 회복하고, 숲의 생명력을 통해 원시적 감수성을 되찾는다. 어느 개체건 어느 종이건 생명의 다른 이름은 죽음이고, 진화의 끝과 시작은 멸종이라고 했다. 인간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아니 인간보다 더 이전의 주인이었던 동물과 식물, 나무와 숲, 그 관계 안에 자리 잡은 이들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순환되고 이어진다. ‘아무도 숲을 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모든 생명이 나고 자라나는 삶. 허문희 작가는 섬의 숲이 끊임없이 보여주는 생명력의 가치를 붓으로 담아낸다.

맥화랑에서 진행되는 허문희 작가의 열여섯번째 개인전 <리틀 포레스트>는 2018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메이크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제목을 빌렸다. 겨울의 풍경에서 시작된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순환되는 사계절의 풍경과 자연에서 얻은 먹거리, 그 시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숲을 찾아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천천히,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큰 갈등이나 위기, 극적인 반전같은 영화적 요소는 제거된 채 흘러가는 시간과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연 풍경 그리고 정갈한 음식만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곱씹으며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만끽한다. 갈등 없는 서사 속에서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다 보면 일상이 소중해지고 잊고 있던 보통의 삶이 눈에 들어온다. 허문희 작가의 작품과 닮아있는 이 영화의 시작부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잠시 잊고 있던 자연의 울림을, 그 속에 숨겨진 생명의 온기를 선사하고자 한다. 위기와 갈등,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제거된 허문희 작가의 온전한 숲 속에서 잠시나마 휴식과 위로의 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맥화랑 큐레이터 김정원

맥화랑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117번나길 162, 2층
051-722-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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